정평불사무총장 공로패를 받고
해가 인왕산을 넘어 갔을 때 정평법회가 끝났다. 그러나 하지를 이틀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날은 대낮같다. 이날 법회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공로패’ 증정에 대한 것이다. 정평불 사무총장으로 일한 것에 대한 일종의 감사패에 해당된다.
공로패를 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무한책임 의식을 가지고 일 했을 뿐임에도 이렇게 공로패를 준비해 준 이도흠상임대포를 비롯한 정평불식구들에 대하여 감사드린다.
정평불 창립이래 공로패를 증정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과연 이런 감사패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처음 정평불 사무총장 제안을 받은 때가 2018년 4월 법회날이다. 그날 임원 모임이 사전에 열렸는데 사무총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박수로서 가결했는데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조건을 달았다. 딱 2년만 하겠다고 했다.
사무총장은 모임에서 총무(總務)와 같은 역할이라고 본다. 총장이나 총무나 한자어 ‘다 총(總)’자가 들어 간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일을 다 한다는 것이다. 작은 법회 모임에서 3년간 총무를 해 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총장이나 총무는 모든 일을 다하고 모든 일에 다 간여한다. 회장이나 대표를 대신하여 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임이나 단체에서 총장이나 총무가 얼마나 뛰어 주느냐에 따라 활성화 되기도 하고 침체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 2년만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대신 2년 동안 ‘완전연소하겠다’고 말했다. 온 몸을 불살라서 일하겠다는 각오를 말한 것이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한번 뱉은 말은 주어 담을 수 없다. 테라가타에서 “토해서 버려진 것을 내가 다시 삼킬 수 없으리.”(Thag.1131)라는 구절이 있다. 완전연소를 말했기 때문에 다시 거두어 들일 수는 없는 말이 된 것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직화하는 것이었다. 그날 당장 법회에 참석한 사람들 명단부터 작성했다. 전화번호 확보가 가장 중요했다. 전화번호만 알면 모든 것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문자메세지, 카톡 등을 날려서 모임에 올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재가불교단체는 생소한 곳이다. 그동안 블로그에 글만 쓰고 살다가 오프라인에 나온 것으 4년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사람들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것 같다. 그것도 10년, 20년, 30년, 또는 그 이상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부터 선후배 관계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종종“형” “아우”하며 지내는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호칭이었다. 요즘 어느 모임이나 단체이든지 나이 든 세대들이 많다. 오륙십대가 주축이다. 학교다닐 때부터 활동해 오던 사람들이 그대로 지금까지 만남이 유지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난 것은 요즘말로 ‘듣보잡’이 될 수 있다. 형 또는 아우 하는 사이에서 낯선 사람은 끼기 어려운 것이다.
호칭을 통일해야 했다. 박경준샘이 제안했다. 모든 호칭을 샘으로 하자고 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호칭이다. 학생들은 ‘쌤’이라고 한다. 선생을 축약해서 애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쌤 보다는 ‘샘’이 더 나을 것 같다. 선생님의 의미도 되고 친구의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샘솟는 물로서 ‘샘’이다.
샘이라고 부르면 ‘님’자를 붙이지 않아서 동등한 관계가 된다.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샘자를 붙이자고 제안한 것이다. 서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나이도 많은 사람에게 ‘샘’이라고 하니 불경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샘님’이라고 했다. 이는 어법에 맞지 않다. 이중 존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수님’ 또는 ‘선배님’ 등으로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난 2년 동안 사무총장 소임을 맡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있다. 그것은 모임을 앞두고 사람을 모으는 것이다. 스마트폰 주소록에 그동안 확보한 전화번호를 등재해 놓았다. 문자메세지와 카톡 등으로 알렸다. 그러나 회신률은 반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다. 날자가 다가올수록 점점 초조해진다. 그 날이 닥치면 긴장이 고조된다. 신경도 날카로워진다.
작년 봄의 일이다. 201년 전반기 눈부처학교를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졌다. 무려 3개월에 걸쳐서 매주 강좌를 열게 계획이 짜졌다. 모두 9강이었는데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상임대표와 고문이 해외여행을 나간 사이에 치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사람을 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남아 있는 임원들이 집행회의에서 6강으로 대폭 줄이는 안이 나왔다. 이를 강력하게 밀어 부쳤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갈등이 시작되었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이든지 갈등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갈등이 없으면 죽은 조직이나 다름없다. 체념적 침묵이 지배하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눈부처학교 9강은 누가 보아도 무리였다. 더구나 봄을 맞이하여 나들이 하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이렇게 본다면 여름이나 겨울 한가할 때 열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번 약속했으면 하늘이 두쪽나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유연성은 있어야 할 것이다. 대안으로서 6강 단축안이 나왔다. 그러나 갈등으로 인하여 결국 무산되었다. 눈부처학교는 다음 철로 연기된 것이다. 그날 카톡에 “우리 모두는 패배자가 되었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날렸다.
모두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운용의 묘를 살린다면 약속한 날에 모임이 열릴 수도 있었다. 일정 정도의 변경은 가능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임의 이념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이념은 헌법 같은 것이어서 함부로 손댈 수 없다. 그러나 일정 정도는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모두 패배자가 되었다고 한 것이다.
사무총장 2년을 맡으면서 완고한 원칙주의자가 된 것 같았다.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특히 음주와 가무에 대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이는 재가불교활동을 본격적으로는 처음 해 보아서 그랬을 것이다. 이전에는 이런 활동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재가불교단체는 어느 단체보다는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종단의 권승들을 적폐세력으로 간주하여 적페청산 운동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재가불교단체는 회계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오계도 철저히 지켜야 한다. 특히 공식적 모임에서 음주하는 것을 삼가자고 제한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경전에 있는 가르침도 영향이 있다.
상윳따니까야에 ‘향기 도둑의 경’이 있다. 경을 보면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네.”(S9.14)라는 게송이 있다. 적폐청산 운동을 하려면 권승들보다는 도덕적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계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늘 음주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재가불교단체에서 음주는 일상화된 것이었다. 마치 고된 노동을 끝내고 난 다음 음주를 하는 것과 같다. 또 시험을 끝낸 학생이 해방감에서 음주를 하는 것과 같다.
재가생활을 하다 보면 음주는 뗄래야 뗄 수 없다. 회사에서 회식을 하면 의례히 음주를 하게 되어 있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 재가의 삶은 음주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재가불교단체에서만큼은 불음주계를 지키자고 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공식적 모임에서 음주는 금지되었다. 그러나 비공식적 모임에서는 허용되었다. 이렇게 이원적으로 운영된 것은 재가불교단체에서는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또 하나는 식사비용에 대한 것이다.
모임을 갖다 보면 식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비용이 문제가 된다. 또 차를 마시면 찻값도 문제가 된다. 이 비용을 모두 회비에서 처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력하게 반대했다. 회원들이 내는 회비는 사업목적에 사용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임원들이 모여서 회의할 때는 각자 돈을 내야 한다. 공평하게 분배한 것이다. 요즘말로 ‘N분의 1’로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임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들었다. 모일 때 마다 찻값과 식사비를 내야 했다. 심지어 포럼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도 각자 먹은 만큼 돈을 걷었다. 이런 노력이 있어서일까 회원들의 회비는 고스란히 보전되었다. 그리고 상당금액이 축적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무실도 갖지 않고 상근자도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정평불에는 아직도 사무실이 없다. 법회 때 가 되면 이법당 저법당 빌어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돈 들어갈 일이 별로 없다. 가장 큰 지출은 강사료이다. 꼭 써야 할 데 돈을 쓰는 것이다.
사무실 없는 단체는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하여 정평불 공동대표 이희선 샘은 기고문에서 “절 운영을 본 딸 필요가 있을까? 절 없이 스님없이 불사없이, 각자 생활하면서 주말에 공간을 빌려서 법회하고 차담하고 헤어지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요? 저는 절 없고 스님 없는 현재의 정평불 법회형태가 좋습니다.”(절 없고 스님없고 불사 없는 불교는 어떨까?, 2018-05-25)라고 말했다.
정평법회는 순수하게 재가불자들로만 이루어진 법회이다. 법회는 종단 적폐청산운동을 하면서 한계를 느끼면서 시작되었다. 종단 바깥에서 변화를 추구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가 먼저 변해 보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정평법회를 창립했고 활성화 하고자 노력했다. 2017년 11월부터 시작되었으니 올해로 3년째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하여 5개월을 제외하고 매월 빠짐없이 열렸다. 이번 6월법회는 계곡에서 열렸다.
사무총장 2년을 맡으면서 한마리 미꾸라지가 되고자 했다. 흙탕물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미꾸라지를 말한다.
이런 말이 있다. 부산에서 물고기를 서울로 운반할 때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럴 때 미꾸라지처럼 생긴 장어를 넣으면 모두 살아 있다고 한다. 장어의 끊임없는 몸부림에 고기들이 긴장해서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때로 대책없는 원칙주의자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교조주의자는 아니다. 한번 결정된 것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모임의 이념이 손상되지 않는 한 일정정도는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불음주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불음주계라 하여 오계로 금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라고 하는 정언명령이 아니다. 불교에서 불음주계는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에 취하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삼가다’와 ‘학습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본래 오계는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계율은 평생 걸려서 완성된다. 승가에서 보름마다 포살일에 구족계를 합송하는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오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기면 참회하고 다시 받아 지니면 된다. 계가 파한 상태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법회에 참석하여 다시 받아 지녀서 계를 복원시켜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평생 걸려서 완성되기 때문에 학습계율(sikkhāpada: 學則)이라고 하는 것이다.
계곡에서 법회가 끝나고 옥인동 시장으로 이동했다. 마치 관광지처럼 잘 단장된 옥인동 시장 거리에서 뒷풀이 했다. 오랜만에 만난 이유도 있고 그냥 헤어지기 서운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막걸리 파티를 했다.
옥인동 시장에서의 막걸리 파티는 비공식적 모임이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들끼리 우의를 다진 것이다. 이런 행위는 재가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출가자라면 불음주계를 철저하게 지켜야 하지만 재가불자에게 까지는 엄격하게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예외없는 법은 없다고 한다. 율장에서도 예외 조항이 있다. 율장에서 불음주계가 있지만 술을 마셔도 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몸이 아팠을 때 약으로서 술은 가능한 것이다. 약으로서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이처럼 율장에는 수많은 예외 조항이 있다. 그러나 율장은 출가자를 위한 것이다.
재가자에는 오계만 적용된다. 세세한 소소계는 없다. 만일 부처님이 재가자를 위한 소소계를 만들었다면 모임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허용했을 것 같다. 또 회사 회식자리에서나 비즈니스할 때 술 마실 것을 허용했을 것이다. 다만 법회에 참석하여 다시 계를 받아 지니라고 했을 것이다. 계를 파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평불 상임대표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내용을 보니 “정의로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며 한국불교 신행의 새지평을 열어가는 한 길에 사무총장으로서 보여주신 애정과 헌신에 정의평화불교연대 회원 모두의 마음을 모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라고 쓰여 있다. 과연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또 다시 의문이 든다. 정평불이 창립 된지 10년 가까이 되었는데 이처럼 공로패를 받은 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소감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처음 수락할 때 완전연소를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 하면 죽을 것 같아서 겁났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한마리 미꾸라지가 되어 끊임없이 긴장과 갈등을 유발했다. 원칙주의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교조주의자가 되는 것은 피했다. 부처님 가르침에 입각하여 원칙주의자가 되고자 한 것이다. 공로패를 만들어 주신 이도흠 상임대표를 비롯하여 정평불 임원들과 정평불 회원들, 그리고 정평불을 지지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2020-06-2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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