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와나선원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행복이라는 말을, 2020 한국테라와다불교 안거법회

담마다사 이병욱 2020. 7. 6. 14:09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행복이라는 말을, 2020 한국테라와다불교 안거법회

 

 

테라와다불교 안거가 시작되었다. 75일 담마와나 선원에서 한국테라와다불교 빤냐와로 삼장법사를 모시고 아홉 분의 스님과 함께 안거법회가 있었다.

 

 

이번 안거는 네 달이 될 것

 

삼장법사에 따르면 이번 안거는 네 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왜 네 달인가? 이는 윤달이 끼여 있기 때문이다. 안거가 시작되는 75일은 음력으로 515일이다. 올해는 윤달이 끼여서 한달 후인 84일에 시작될 수도 있다. 윤달로 했을 경우 세 달 안거를 하게 된다. 문제는 까티나법요식이다.

 

까티나법요식은 안거가 끝난 후 한달이내에 하도록 되어 있다. 윤달을 적용했을 경우 까티나법요식도 한달 늦추어 진다. 이런 문제점이 있어서 윤달을 적용할 경우 세 달 안거가 된다.

 

까티나가사법요식을 한날로 하기 위해서는 이번 달 75일에 안거를 들어가면 네 달이 된다. 참고로 네 달 안거를 마치는 날은 1031일이 된다. 한달후인 1129일이 까티나가사법요식날이 된다.

 

삼장법사에 따르면 음력은 나라마다 다르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 사월 보름에 안거를 들어 가지만 테라와다의 경우 유월 보름날이 안거에 들어 가는 날이다. 올해의 경우 75일이 테라와다 안거에 들어 가는 날이다. 1031일은 네 달의 안거가 끝나는 날이다.

 

목욕가사가 왜 중요한가

 

네 달 동안 안거기간 중에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목욕가사이다. 그래서일까 담마와나선원 불자들은 목요가사를 승가에 보시했다. 그렇다면 목욕가사가 왜 필요한 것일까?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사타법을 들었다.

 

테라와다 스님들은 옷이 세 벌 밖에 없다. 하의, 상의, 대가사를 말한다. 이는 목욕을 할 때 문제가 된다. 옷을 입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벗고 할 수도 없다. 모두 사타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사타법은 중죄는 아니다. 소소계에 대한 것으로, 소소계 중에서도 중죄에 해당된다. 그래서 목욕가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청파동 담마와나 선원으로

 

75일 일요일 오전 청파동에 있는 담마와나 선원으로 향했다. 담마와나 선원 창립과정을 지켜 보았고, 특히 지난 2018년에는 삼장법사로부터 담마다사라는 법명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인연으로 이번 안거법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코로나팬데믹시대이다. 지난 5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속의 거리두기로 완하 되기는 했지만 전문가들은 2차 유행을 예고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모임을 자제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럴 경우 종교모임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테라와다불교에는 붓다의 날 행사가 취소되기도 했다. 한국불교에서는 윤달이라 하여 530일 윤사월초파일 행사를 가진 바 있다.

 

오랜 만에 모였다. 한국테라와불교 교단의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작년 까티나 축제 이후 올해 처음 있는 일이다. 안거를 앞두고 한자리에 모인 것은 안거를 알리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도들의 목욕가사 등 안거공양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발바닥에 핀 연꽃처럼

 

삼장법사 빤냐와로 스님을 비롯하여 모두 아홉 분의 스님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번 안거의 경우 법랍 소개 시간이 있었다. 삼장법사 빤냐와로 스님은 33안거를 했다. 율장에 따르면 구족계를 받고 10안거를 하면 장로라고 한다. 30안거를 했다면 마하테라(대장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안거가 많은 스님은 빤냐완따 스님이다. 27안거를 했다고 한다. 빤냐완따 스님은 시인스님 같다. 매년 소책자를 발간하여 무료로 보시하기 때문이다. 이번 안거법회에서도 책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책의 제목은 발바닥에 핀 연꽃이다.

 

 

스님은 책의 서문에서 이번 안거법회에 책을 보시하기 위하여 15일을 밤낮으로 집필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0일을 밤낮으로 편집했다고 한다. 컬러판으로 된 이 책은 135페이지가량의 소책자이지만 스님의 시와 컬럼 등 스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이 실려 있다.

 

스님은 책의 서문에서 통째로라는 말을 했다. 어떤 뜻일까? 스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물질도 정신도 조건도 언젠가는 반드시 혹은 사라지는 법. 예고없이 통째로순식간에 사라지는 법. 부지런히 정진합시다.”라고 했다. 통째로라는 말에 굵은 글씨와 함께 따옴표 처리했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모든 것은 통째로 사라진다. 이는 찰라생찰라멸로 설명할 수 있다. 두 손바닥을 부딪치면 하고 소리가 난다. 소리가 날 때는 조건 발생이다. 그러나 사라질 때는 그냥 사라진다. 소리도 사라지고 아는 마음도 사라진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이렇게 찰라생찰라멸 하기 때문에 무상이다. 잠시도 머물지 않고 즉시 사라지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모든 현상은 무상, , 무아인 것이다.

 

스님은 왜 발바닥에 핀 연꽃이라고 했을까? 이는 책에 실려 있는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시의 제목이 발바닥에 핀 연꽃이기 때문이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걸음을 걸을 때 무심하게 걸으면

온갖 망상에 휩싸이지만, 걸어갈 때

아는 마음이 함께 하면 망상이 사라진다.

번뇌망상이 사라진 자리에 연꽃이 핀다.”(42-43)

 

 

이 시는 상윳따니까야 꽃의 경’(S22.95)를 근거로 한다. 경에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여래는 세상에서 성장했으나 세상을 극복하고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지낸다.”(S22.95)라고 했다. 부처님은 이 진흙탕 같은 세상 속에 살지만 오염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스님은 알아차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걸을 때도 알아차림 하며 걸으라는 것이다.

 

스님은 시에서 알아차림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발을 들 때 들어올림을 알아차리고 발이 나아갈 때 나아감을 알아차리고 발이 내려갈 때 내려감을 알아차리고 발이 땅에 닿을 때 닿는 감각을 알아차리면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발바닥에 연꽃이 핀다.”라고 했다.

 

이밖에 안거법회에 참여한 스님은 다음과 같다. 담마위하리(법주)스님 21안거, 사사나 스님 17안거, 수마나 스님 13안거, 빤냐왐사 스님 11안거, 떼자사미 스님 11안거, 케마짜라 스님 9안거, 악까사또 스님 7안거이다. 담마와나 선원 불자들은 아홉 분의 스님들에게 목욕가사 등 보시물을 공양했다.

 

안거기간 중에 재가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안거기간 중에 재가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본래 스님들의 안거를 위한 법문을 해야 하지만 재가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재가자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삼장법사는 말 했다.

 

안거기간 중에 재가자는 안거에 들어 간 스님들을 잘 보필해야 한다고 말했다. 테라와다에서는 출가자들은 재가자의 보시 등 공양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가자가 안거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재가자도 안거를 할 수 있다. 선원에서 머무는 것이다. 그대신 하루낮하루밤을 머무는 것이다. 이는 여덟 가지 포살계의 내용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재가자에게 포살계는 하루낮하루밤계라고 한다. 재가자가 선원에서 살면 매일 아침 포살계를 받아지니는 이유가 된다.

 

재가자가 선원에서 안거를 난다고 해도 법랍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재가자에게 안거를 지내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마음을 다 잡기 위해서라고 했다. 번잡한 재가의 삶을 떠나 선원에서 매일 새벽 여덟 가지 포살계를 받아 지니며 살면 좀 더 빨리 도와 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가자가 선원에 살면 출가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이는 미얀마 선원에서 사는 것에서도 알 수 있고, 우리나라 선원에서 집중수행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재가자는 출가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

 

삼장법사에 따르면 재가자는 출가자를 따라 갈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 알 수 있다. 자료 명칭은 왜 출가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모두 29페이지로 되어 있다. 본래 출가자들을 위해 설한 것을 자료화 해 놓은 것이다.

 

삼장법사는 법문자료에서 재가자는 아무리 해도 출가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라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출가자는 출가의 일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거기간에 수행에 전념할 수 있어서 재가자가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공작과 독수리 비유를 들었다.

 

삼장법사에 따르면 재가자는 공작새와 같고 출가자는 독수리와 같다고 했다. 공작은 화려한 모습이지만 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독수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높게 오래 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숫따니빠따 성자의 경’(Sn.1.12)에 근거한다. 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백조의 빠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재가자는 멀리 떠나 숲속에서 명상하는 수행승, 그 성자에게 미치지 못한다.”(Stn.221)

 

 

경에서는 공작새(nīlagīva)를 재가자로 비유하고, 백조(hasa)를 출가승에 비유했다. 삼장법사는 pdf자료에서 백조 대신 독수리로 비유했다. 중요한 것은 높이 멀리 나는 것이다.

 

새내기 출가승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 안거 기간에 금방 성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재가자가 재가의 삶에 속박 되어서 도와 과를 이루는 것이 늦음을 비교하여 설명한 것이다.

 

불환자의 재가자는 범부라도 출가자를 공양해야

 

태국에서는 국왕이라도 비구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가사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재가자는 사미에게라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

 

상윳따니까야 젊은이의 경을 보면 어리다고 깔보지 말아야 할 것이 네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왕족, , , 수행승을 말한다. 새내기 수행승이라도 왜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까? 이는 게송으로 알 수 있다.

 

 

계행을 지키는 수행승이

청정으로 불꽃으로 불타오르면

아들과 가축이 없어

그 상속자들은 재산을 알지 못하리.

자손이 없고 상속자가 없으니

그들은 잘린 종려나무처럼 되네.”(S3.1)

 

 

재가자는 새내기 수행승이라도 그 빠름에 있어서는 당해 낼 수 없다. 오로지 수행에 전념에 하여 성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마력으로 설명했다. 재가자는 오계를 지켰을 때 5마력에 불과하지만 출가자는 227계를 지키기 때문에 227마력의 속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무한계율까지 지킨 다면 더욱 더 벌어질 것이다.

 

출가하면 오로지 도와 과의 길로 가게 되어 있다. 마침내 번뇌가 다 소멸된 아라한이 될 것이다. 이런 줄 안다면 사미라도 깔보아서는 안되고 업신여겨서도 안된다. 성자처럼 알고 공양해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자료집에서 여섯 번째 항목을 보면 불환자의 재가자는 범부라도 출가자를 공양, 예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출가자의 모습 아홉 가지

 

삼장법사는 안거에 들어가는 스님들과 이번 안거법회에 참석한 재가자들에게 스님들을 공양할 재가자들에게 아홉 가지를 당부했다. 이는 본래 출가자에게 왜 출가하는가?’라는 제목의 법문이지만, 이번 안거법회에서는 출가자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라 하여 아홉 가지를 말한 것이다. 이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출가사문은 조용하고 평온한 모습이다.

두 번째, 그 모습은 부처님의 소망에 들어맞은 모습이다.

세 번째, 그 모습은 번뇌가 소멸한 자(루진자, 아라한)와 같은 모습이다.

네 번째, 고귀한 사람들, 아라한들의 모임 안에 들어갈 수가 있다.

다섯 번째, 보름과 초하루의 포살일에 계단에서 율을 송출할 경우에 범부인 출가자라도 그 모임에 참여하여 율을 들어야만 한다.

여섯 번째, 범부의 출가자라도 정해진 법납에 이르면 다른 사람을 출가시켜 구족계를 줄 수 있고, 그들에게 부처님(승리자)의 가르침을 교육시킬 수가 있다.

일곱 번째, 출가자는 수많은 학처를 완전하게 갖출 수가 있다.

여덟 번째, 범부라도 출가자들은 불교를 오래도록 수호할 수가 있다.

아홉 번째, 번뇌가 아직 소멸한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으면, 자신이 행복하다고 상상조차 해서는 안 되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이것이 출가자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출가할 것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재가자가 공양할 것이다. 삼장법사는 이 아홉 가지 사항에 대하여 하나씩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것도 프린트물을 보지 않고 설명한 것이다. 모두 암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출가자를 부처님처럼

 

삼장법사의 설명을 들어 보면 출가자가 되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법문만 들으면 누구나 출가자가 되고자 할 것이다.

 

삼장법사는 두 번째 항에 대하여 부처님이 원하는 모습을 닮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이 원하는 모습은 출가자의 모습입니다.”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출가자를 부처님처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출가자에게서 부처님의 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세 번째 항을 보면 출자가는 번뇌를 소멸한 자와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번뇌가 소멸한 아라한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삼장법사는 여러분들이 스님을 볼 때는 아라한이라고 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네 번째 항을 보면 고귀한 사람들 모임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프린트물에서 아라한과도 식사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범부일지라도 출가자가 되면 아라한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1월 미얀마 담마마마까 국제선원에 약 2주가량 있었다. 그때 함께 갔던 슈행자들 중 5명이 단기출가했다. 머리를 깍기 전에는 재가자들과 함께 식사했으나, 머리를 깍고 가사를 걸치고 나서 부터는 대우가 달라졌다. 승가의 스님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었다. 아라한의 모임 안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은 출가자의 특권일 것이다.

 

독살이 보다는 모여서 안거를 해야

 

다섯 번째 항과 관련하여 삼장법사는 한달에 두번 포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안거법회에 참여한 여덟 명의 스님들에게 당부한 말처럼 들렸다.

 

삼장법사는 포살과 관련하여 한국에도 빨리 테라와다상가가 정착해야 합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왜 이렇게 말했을까? 아마도 한국테라와다불교의 현실이 녹녹치 않음을 말한다. 이는 스님들이 많으면 포살을 해야 하고 계율을 돌아볼 수 있어서 요즘 같은 일은 안 일어날 것입니다.”라는 말로 알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안거는 함께 모여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허락하지 않다면 개별처소에서 안거를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달에 두 번 있는 포살일 만큼은 한곳에 모여 합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 같다. 삼장법사는 혼자 안거를 날지라도 한달에 두 번 포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불교에서는 매년 안거철이 되면 이천명가량 되는 스님들이 선방에서 안거를 보낸다. 홀로 토굴에 사는 스님들도 안거철이 되면 선방에 들어가서 한철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하여 원담스님은 출자자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에 대하여 수행과 포교를 동시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원담스님은 안거철에는 수행을 하고 해제철에는 포교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안거철에는 수행하고 해제철에는 포교하는 것, 이것이 내가 찾은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라 했다. 20176월 봉선사에서 들은 것이다. 그때 당시 진주선원 불자들과 함께 봉선사에서 하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에게 대중공양을 한 바 있다.

 

테라와다불교 교단에서도 모든 스님들이 한곳에 모여 안거에 들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보름마다 한번씩 포살을 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담스님 말처럼 안거철에는 함께 모여서 수행하고, 해제철이 되면 각자 처소에 돌아가서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독각승처럼 독살이 하는 것도 좋지만 안거철이 되면 함께 모여 살며 포살도 하는 것이 본래 승가의 모습일 것이다.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행복이라는 말을

 

아홉 번째 항목은 아라한의 행복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번뇌가 소멸되지 않았다면 행복하다고 상상도 하지 말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PDF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번뇌가 아직 멸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행복하다고 상상조차 해서는 안되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출가자는 계를 잘 지키는 것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탁발을 매일 실천하는 것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가르침을 배우는 것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신통력을 얻는 것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조용한 곳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불환과를 얻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아라한이 되고 나서 안심하여야 합니다.”

 

 

아라한이 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다고 했다. 단지 홀로 독살이 하면서 편안함만 추구한다면 이를 행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라한이 되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아라한의 행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불교를 믿는 목적은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해탈과 열반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학을 공부하고 수행해야 한다. 성자가 되어서 마침내 아라한이 되면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치게 된다. 더 이상 배울 것도 없고 더 이상 닦을 것도 없는 무학도의 경지가 되었을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고 했다.

 

테라와다불교를 만난 보람으로

 

지금은 정법시대일까? 테라와다불교에 따르면 지금은 정법시대가 맞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삼장으로 전승되어 오고 있고, 팔정도의 수행이 있고, 더구나 성자가 배출 된다면 정법시대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정법시대에 대하여 삼장법사는 이렇게 말했다.

 

 

윤회하는 세상에서 만나기 지극히 어려운 테라와다 불교를 만났으면서, 명상센터에도 가지 않고, 보시-지계-선정만으로 만족해 멈춰버린다면, 테라와다 불교를 만난 보람이 없습니다. 한편으로 보시, 지계, 선정 등을 실천하면서, 동시에 수행도 해서, 닙바나를 얻어야만, 불교를 만난 보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를 만난 보람에 대하여 테라와다불교를 만난 보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닙바나에 이를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번뇌 다할 때까지, 아라한이 될 때까지 행복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성회관에서 중국음식으로

 

안거법회가 끝났다. 12시 부터는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11시에 끝낸 것이다. 식사는 밖에 나가서 하기로 했다. 철길 건너편에 있는 미성회관이다. 재가불교활동 할 때 종종 와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밖에서 식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스님들도 함께 식사했다. 그러나 칸막이가 쳐져 있다. 스님들은 스님들끼리 먹고 재가자들은 재가자들끼리 먹는 것이다. 스님들과 함께 자리를 하려면 출가해야 할 것이다. 범부 출가자라도 아라한과 합석할 수 있다. 이는 특권이다. 출가하여 성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성자를 닮는 것과 같다.

 

 

짧지만 완벽한 위빠사나 게송

 

삼장법사 빤냐와로 스님의 법회는 가능한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건질 것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프린트물을 철저히 준비 한다. 법문하고자 하는 것이 PDF에 다 담겨 있다. 법문을 듣고 PDF를 보면 정말 건질 것이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PDF 말미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위빠사나 수행하는 방법을 가장 짧고 가장 완벽하게 나타내는 게송이라고 했다.

 

 

몸과 마음이 생긴 순간,

생긴 채로 반드시 안다.

동작, 장소, 위의, 시간을

선택하지 않고 알아차린다.”

 

 

무엇이든지 생긴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몸과 마음에서 생긴 것은 동시에 생겨나서 동시에 소멸한다. 한발 옮길 때 아는 마음이 있다. 또 이를 아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걷고 있을 때는 걷고 있다고 안다.”가 된다. 걷는 것과 아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대상에 붙어 있어야 한다. 마치 송아지를 기둥에 묶어 둔 것과 같다.

 

마음은 제어 하지 않으면 제멋대로이다. 송아지를 기둥에 묶어 두듯이, 마음을 대상에 묶어 두어야 한다. 이때 기둥은 대상이 되고, 송아지를 기둥에 묶은 줄은 사띠와 같은 것이다. 사띠는 대상에 대한 토대이기도 하고 동시에 알아차림이기도 하다. 사띠는 대상과 앎(냐나)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한다.

 

대상에 토대를 둔 사띠에 대하여 사띠빳타나라고 한다. 대상을 관찰했을 때 대상에 대하여무상, , 무아라고 통찰하는 것에 대하여 사띠빳타나위빠사나라고 한다. 이렇게 관찰하면 똥 싸는 것도 수행이 된다. 그래서 삼장법사는 화장실을 가면서도 공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020-07-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