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와나선원

빠알리법명 담마다사

담마다사 이병욱 2020. 6. 14. 09:45

 

빠알리법명 담마다사

 

 

빠알리 법명을 사용하고 있다. 빠알리 법명은 담마다사(Dhammadasa)이다. 담마다사는 담마(Dhamma)와 아다사(Adada)의 복합어이다. 담마는 법 또는 가르침, 진리라는 뜻이다. 아다사는 거울을 뜻한다. 그래서 담마다사는 법의 거울, 가르침의 거울, 진리의 거울이라는 뜻이다.

 

담마다사 법명은 2018년에 받았다. 그해 11월 담마와나선원에서 빤냐와로(진용) 삼장법사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때당시 빠알리법명수계법회가 있었는데 아홉 명이서 함께 받았다.

 

 

불교인이라면 한가지 이상 법명이 있을 것이다. 대개 수계법회때 받는다. 한자어 법명이 일반적이다. 남성의 경우 두 자이고, 여성의 세 자인 경우가 보통이다. 어떤 이는 두 개도 있고 세 개도 있다.

 

처음으로 받은 법명은 성공(聖供)이다. 2004년도 수계법회할 때 받았다. 수백명이서 함께 받았는데 계첩을 열어 보고서야 알았다.

 

법명 성공은 성스러울 성(聖)자에 이바지할 공(供)자이다. 성인을 공양하라는 뜻이다. 한글로만 따진다면 ‘성공’이라는 글자가 되어서 성공을 예감하게 된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사용되는 흔한 법명이었고 의미도 그다지 다가오지 않았다. 블로그에서는 스스로 지은 필명 ‘진흙속의연꽃’을 사용했다.

 

2005년 부터 2018년까지 13년동안 필명 진흙속의연꽃을 사용했다. 담마다사를 사용한 것은 아직 만 2년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빠알리법명이 마음에 든다. 흔한 한자 법명 보다는 차별화된 것이 큰 이유이다. 무엇보다 삼장법사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빠알리 법명을 만든 것에 대한 설명까지 들었다.

 

삼장법사는 블로거임을 알고서 그에 맞는 법명을 지어 주었다. 글을 쓸 때 법의 거울이 되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것처럼 전달하라는 의미에서 지어 준 것이다. 그래서 2008년 11월 이후 빠알리법명 담마다사를 사용하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쓸때는 날자와 함께 ‘담마다사 이병욱’이라고 서명한다. 법명과 필명을 함께 쓰는 것이다. 이렇게 서명하는 것은 글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담마다사에 대한 경전적 근거를 발견했다. 네 곳에서 발견된다. 디가니까야 ‘위대한 열반의 경’(D16), 맛지마니까야 ‘다양한 종류의 세계의 경’(M115), 상윳따니까야 ‘긴자까바싸따의 경’(S55.8), 그리고 테라가타 395번 게송(Thag.395) 이렇게 네 곳에서 발견된다.

 

네 곳에서 가장 잘 설명되어 있는 곳은 디가니까야 ‘완전한 열반의 경’(D16)이다. 경에서 부처님은 “진리의 거울이라는 법문은 무엇인가?”라며 아난다에게 설하는 장면이 있다.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믿음을 갖는 것과 계율의 성취에 대한 것이다.

 

진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을 때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지옥도 부서졌고 축생도 부서졌고 아귀도 부서졌고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도 부서졌고 나는 이제 흐름에 든 님이 되어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삶의 길이 정초되어 올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간다.”(D16.38)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장면이 있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에게 번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 오염원이 조금 남아 있는지, 많이 남아 있는지, 소멸 되었는지 자신만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세상 사람을 속여도 자기자신만큼은 속일 수 없다.

 

흐름에 든 자는 세 가지 결박이 풀어진 자이다. 유신견, 의심, 계율과 금계에 대한 집착이 부수어진 것을 스스로 안다. 남아 있는 번뇌가 있기는 하지만 악처에 떨어질 정도의 것이 아님도 스스로 안다. 이는 자신을 가르침의 거울에 비추어 보았기 때문이다.

 

담마다사는 테라가타에서도 발견된다. 꿀라장로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앎과 봄을 얻기 위해

가르침의 거울을 붙잡고

이 몸이 안팍으로

공허한 것을 관찰했다.”(Thag.395)

 

 

가르침의 거울(담마다사)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주석에 따르면, “뭇삶들이 거울로 자신의 몸이나 얼굴에서 장점이나 결점을 보듯이, 이와 같이 수행자는 자신의 존재에서 오염과 정화를 그대로 보는데, 그 통찰에 의한 앎을 여기서 가르침의 거울이라고 한다.”(ThagA.II.168)라고 했다.

 

거울은 우리의 몸과 얼굴을 액면 그대로 비추어 준다. 만일 마음의 거울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을 속속들이 비추어 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거울은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법의 거울은 객관적이다. 더구나 부처님이 설한 것이다. 법과 율을 스승으로 삼아 정진하는 수행자라면 당연히 가르침의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자신을 가르침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지 얼마나 깨끗한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가르침의 거울이라고 한 것이다.

 

담마다사는 가르침의 거울 또는 법의 거울이라는 뜻이다. 자신을 법의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자신에게 남아 있는 오염원을 알 수 있다. 또 사라진 오염원을 알 수 있다. 법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자신의 현재상태를 스스로 알 수 있다.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법명이 있다. 대개 두 자 또는 세 자로 된 한자어법명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이제 빠알리법명도 하나 둘 알려지고 있다. 부처님이 사용하신 언어로 된 빠알리법명 하나쯤 갖는 것은 이제 추세인 것 같다. 빠알리법명 담마다사가 마음에 든다.

 

 

2020-06-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