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관찰할 뿐, 부처님이 새롭게 해석한 나마-루빠(名色)
A교수가 말했다. 그는 색(rupa)에 대하여 물질로 보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견해라고 했다. 그는 색에 대하여 “불교공부 하신 분들은 색 그러면 물질 그렇게 딱 등식이 돼 버려요. 이게 불교를 이해 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A 교수가 말하는 색의 개념은 무엇일까?
A 교수는 색에 대하여 ‘형태’라고 번역했다. 명(nama)에 대해서는 ‘이름’이라고 번역했다. 그래서 나마-루빠, 즉 명색에 대하여 ‘이름-형태’라고 말한다. 이는 부처님이 말씀 하신 ‘정신-물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왜 A교수는 부처님 가르침과 다르게 해석한 것일까?
A교수는 명색에 대하여 이름-형태라고 한 것에 대하여 우파니샤드철학을 예로 들었다. A교수를 따르는 어떤 이는 명색을 알려면 먼저 우파니샤드 철학을 이해 해야 된다고 말한다.
나마-루빠(名色)라는 말은 불교 이전의 우파니샤드 철학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파니샤드에서는 명색에 대하여 문자그대로 명칭과 형태라고 한다. 이는 브라만교 사상과 관련이 있다. 전재성선생의 니까야 해제에 따르면 “유일자인 하느님[梵天]이 세상에 현현할 때의 그 다양한 현현에 대해 사용한 말이다. 현현된 세계는 다양한 이름과 다양한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설명해 놓았다.
부처님이 새롭게 해석한 나마-루빠(名色)
우파니샤드적 명색은 유일자인 신이 이름과 형상으로 현현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와 같은 명색은 개체의 인식적 측면과 재료적 측면을 구성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불교에 와서는 인식적 측면이 명(名), 즉 정신이 되었고 재료적 측면이 색(色), 즉 물질이 되었다. 이는 부처님이 다음과 같이 명색에 대하여 정의해 놓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명색이란 무엇인가? 그것에는 느낌, 지각, 의도, 접촉, 정신활동이 있으니 이것을 명이라고 부르고, 네 가지 광대한 존재, 또는 네 가지 광대한 존재에서 파생된 물질을 색이라고 한다.”(S12. 2)
부처님은 명에 대하여 느낌, 지각, 의도, 접촉과 같은 정신활동이라고 했다. 또 색에 대해서는 네 가지 광대한 존재(지, 수, 화, 풍), 또는 네 가지 광대한 존재에서 파생된 물질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A교수는 부처님이 새롭게 정의한 나마-루빠에 대하여 우파니샤드적으로 해석하여 이름-형태라고 했다.
나마-루빠에 대하여 이름-형태로 정의하면 논장이 모두 부정된다. 실제로 A교수의 유튜브 강연을 들어 보면 아비담마에 대하여 모두 잘못 되었고 엉터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이론과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아비담마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이론은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논장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마-루빠를 우파니샤드적으로 이름-형태로 해석하면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모든 것을 인식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꿈 깨듯이 개념만 타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나마-루빠에 대하여 정신-물질로 새롭게 해석한 것은 수행적 통찰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나마-루빠에 대하여 정신적-신체적 과정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과정에 대한 것으로서 52가지 마음부수가 있고, 신체적 과정에 대한 것으로서는 28가지 물질이 있다. 28가지 물질 중에서 추상물질 10가지를 제외한 18가지는 관찰이 가능하다. 이는 궁극적 실재의 특성 때문이다.
궁극적 실재가 있다. 이를 실제하는 성품이라고도 한다. 또는 빠알리어로 빠라맛따(paramattha)라고도 한다. 크게 네 가지 궁극적 실재가 있다. 마음과 마음부수와 물질과 열반이다. 이 중에서 마음은 89가지 내지 121가지 유형으로 설명된다. 마음부수는 52가지로 설명된다. 물질은 28가지로 설명된다. 그러나 마음은 한 대상에 대하여 한번만 일어나기 때문에 하나로 본다. 마음부수는 52가지로 설명된다. 물질은 28가지로 설명된다. 그래서 총 마음 1, 마음부수 52, 물질 28, 열반 1이 되어 총 82가지 궁극적 실재가 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과정과 신체적 과정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나마-루빠를 정신-물질로 본다는 것은 궁극적 실재를 본다라는 말과 같다.
식과 명색의 관계는
나마-루빠는 정신적-신체적 과정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의식과는 어떤 관계일까?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니까야에서 정신적인 요소를 의미하는 명(名)에 의식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의식이 물질적인 신체(色)에 접촉하나 정신과 관계된 느낌, 지각, 의도, 접촉, 정신활동에 연결되어 작동하기 때문이다.”(각 니까야 해제에서 용어설명)라고 설명했다. 좌선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좌선할 때 통증을 느꼈다면 느낌이라는 정신활동과 관련 되어 있다. 느낌을 관찰했을 때 이를 아는 마음이 식(viññāṇa)이다. 또 좌선을 하여 배의 일어남과 꺼짐을 관찰했을 때 역시 이를 아는 마음이 식이다. 이렇게 식은 명과 색, 즉 정신적 과정과 신체적 과정을 모두 아는 것이다.
부처님이 나마-루빠에 대하여 정신-물질로 새롭게 해석한 것은 수행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52가지 마음부수라는 정신적 과정과 18가지물질(구체적 물질)이라는 신체적 과정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성품을 관찰해서 그 성품이 생멸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의식은 명색의 조건이 된다. 십이연기에서 명색의 조건으로서 의식이 있는데 이는 재생연결식과도 관계가 있다. 새로운 유기체의 시작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십이연기가 삼세양중인과로 설명된다. 그러나 나마-루빠에 대하여 우파니샤드식으로 이름-형태로 본다면 삼세양중인과는 부정된다. A교수가 삼세양중인과에 대하여 격하게 부정하는 것도 자신이 우파니샤드적으로 해석한 이론과 상충(相衝)되기 때문이다.
정신과 물질은 상호의존적
나마루빠는 정신-물질이라고 번역된다. 이는 정신적-신체적 작용에 대한 것으로 생명체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루빠에 대하여 물질로 번역하지만 붓다아비담마에 따르면 ‘물성(materiality)’이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루빠가 반드시 물질적 특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특성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루빠는 물질적 특성과 에너지 특성도 있다고 했다. 이는 지, 수, 화, 풍이라는 네 가지 근본물질과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24가지 물질에서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물질에 대하여 붓다아비담마에서는 “그러나 물질과 에너지는 창조될 수 없고 파괴될 수 없다는 질량보존법칙과 에너지 보존법칙과는 다르게, 우리는 아비담마에서 물질이 카나(khaṇa)라고 불리는 매우 짧은 간격으로 끊임없이 일어나서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붓다아비담마, 292쪽)라고 써 놓았다.
물질은 생멸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물질은 유기체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네 가지 주된 원천인 업(kamma), 마음(citta), 온도(utu), 음식(āhāra)에서 끊임없이 생겨난다. 그리고 물질은 수명이 매우 짧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오직 17가지 마음순간 동안만 지속된다고 한다. 한번 형성되는 물질은 거의 순간적으로 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정신과 물질은 상호의존적이다. 정신과 물질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만약 몸만 있고 정신이 없으면 시체라 할 것이다. 정신만 있고 몸이 없으면 귀신이라고 할 것이다. 몸과 정신이 모두 다 있으면 살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정신과 물질은 분리 될 수 없는 것이다.
28가지 물질에 대하여
나마-루빠에 대하여 정신-물질로 보는 것은 궁극적 실재를 보기 위함이다. 만약 나마-루빠에 대하여 우파니샤드 식으로 해석하여 이름-형태로 본다면 궁극적 실재를 볼 수 없다. 물질에서 궁극적 실재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지, 수, 화, 풍 사대이다.
사대는 각각 특성이 있다. 지대는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특성이 있고, 수대는 응집과 흐름의 특성이 있고, 화대는 뜨거움과 차가움의 특성이 있고, 풍대는 밂과 지탱의 특성이 있다. 이와 같은 사대는 형태도 없고 질량도 없다. 명상할 때에는 사대의 특성만 관찰한다. 즉 딱딱함과 부드러움(地大), 응집과 흐름(水大), 뜨거움과 차가움(火大), 밂과 지탱(風大)에 대해서만 명상한다는 것이다.
물질에는 28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파생물질은 24가지이다. 물질은 4가지 근본물질과 24파생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필수적인 물질적 속성(4): 지대, 수대, 화대, 풍대
2) 투명한 물질적 속성(5): 눈, 귀, 코, 혀, 몸
3) 감각대상의 물질적 속성(5):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4) 성의 물질적 속성(2): 여성, 남성
5) 토대의 물질적 속성(1): 심장토대
6) 생명의 물질적 속성(1): 생명기능
7) 영양의 물질적 속성(1): 영양소
8) 한정의 물질적 속성(1): 허공
9) 소통의 물질적 속성(2): 몸의 암시, 말의 암시
10) 변화의 물질적 속성(3): 물질의 가벼움, 부드러움, 적합함
11) 특성의 물질적 속성(4): 물질의 생성, 상속, 쇠퇴, 무상
28가지 물질중에서 추상물질 10가지(8번에서 11번까지)는 위빠사나 관찰대상이 되지 않는다. 추상물질을 제외한 18가지 물질만이 통찰 대상이 된다. 이들 물질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갖기 때문에 자성(性品)이 있다고 한다. 또 이들 18가지 물질은 무상, 고, 무아라는 일반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통찰대상이 된다.
오직 관찰할 뿐
나마-루빠를 우파니샤드식으로 이름-형태로 보면 궁극적 실재를 볼 수 없다. 궁극적 실재에 대한 관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열반도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나마-루빠를 정신-물질로 보면 정신적-신체적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살아 있는 유기체에서 정신과 신체적 작용에 대한 것이다. 궁극적 실재를 관찰할 수 있어서 궁극적으로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
부처님은 나마-루빠를 정신-육체적 과정으로 보아서 가르침을 설했다. 우리 몸과 마음을 분석하여 세밀하게 관찰한 것이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는 52가지 마음부수를 관찰하고, 신체적으로는 18가지 물질을 관찰하면 궁극적 실재(성품: paranattha)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들 궁극적 실재는 각자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생멸하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무상, 고, 무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순간에도 물질은 발생하고 있다. 나의 의사와 관계 없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생각은 떠 오르고 있다. 역시 나의 의사와 관계 없는 것이다. 생멸하는 물질과 생멸하는 생각에 대하여 나에게는 통제권이 없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오온에서 수(受)와 상(想)은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지금 괴로운 사람에게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해 보았자 행복하지 않다. 괴로운 느낌은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 이름을 보면 그 사람 이미지가 떠 오른다. 이것 역시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이미지가 좋지 않다며 마음은 불편해진다. 화가 날 수도 있다. 화가 났다는 것은 결과에 해당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몸과 마음에서는 나도 모르게 끊임 없이 법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관찰할 뿐이다. 결과로서 나타난 것에 대하여 주의깊게 관찰하면 이전마음이 되어 버린다. 대상이 일어 났을 때 일어난 줄 알고, 대상이 사라졌을 때 사라진 줄 아는 것이다.
좌선을 할 때 배가 부풀어 오르면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배에서는 부풂과 꺼짐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배가 부풀 때에는 ‘부풂’이라고 관찰하면 그뿐이다. 배가 꺼질 때에는 ‘꺼짐’이라고 관찰하면 그뿐이다. 배가 부푼 것은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를 관찰했을 때 부풂은 신체적 과정으로서 원인이 되고, 부풂이라고 이름 붙여 관찰하는 것은 정신적 과정으로서 결과가 된다. 정신과 신체가 구분되어 있고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과정을 아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몸과 마음에서 궁극적 실재라 불리우는 빠라맛타가 생멸하고 있다. 인식도 할 수 없는 수 많은 빠라맛타 중에 가장 강한 것이 관찰대상이 된다. 그것을 주의깊게 세밀하게 끈질기게 관찰하면 성품을 알 수 있다. 열반을 제외하고 모든 궁극적 실재는 무상, 고, 무아라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결국 궁극적 실재의 생멸을 보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직 관찰할 뿐이다.
2019-06-2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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