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통증의 느낌을 물거품처럼

담마다사 이병욱 2020. 8. 24. 11:31

통증의 느낌을 물거품처럼

 

 

취근 밴드에 초대받았다. 혜송스님이 운영하는 삿담마마마까이다. 814일 오픈 되었으니 이제 10일 된 신선한 카페이다. 혜송스님과 인연있는 사람들이 초대받았는데 816일 들어갔다.

 

삿담마마마까(saddhammamamaka) 밴드

 

밴드이름 삿담마마마까는 무슨 뜻일까? 삿담마마마까(saddhammamamaka)는 삿담마(saddhamma)와 마마까(mamaka)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삿담마(saddhamma)‘the true doctrine’의 뜻으로 정법(正法)을 뜻한다. 마마까(mamaka)는 무슨 뜻일까? 빠알리사전에 따르면 ‘devoted to; loving’의 뜻이다. 그래서 삿담마마마까(saddhammamamaka)정법에 헌신하는또는 정법을 사랑하는 뜻이 된다.

 

밴드에는 혜송스님의 수행기가 매일 올려지고 있다. 미얀마에서 위빠사나수행에 대한 것이다. 824일 현재 8회가 올려져 있다.

 

스님의 수행기를 보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 같다. 스님은 1996년 미얀마 마하시선원에서 처음으로 수행을 하게 되었다. 같은 해 모비찬몌를 거쳐서 땃땀마란띠선원에 이른다. 이후 땃땀마란띠에서 계속 수행하게 된다.

 

땃땀마란띠는 무슨 뜻일까? 이 말은 빠알리어 삿담마랑시(saddhammarasi)를 미얀마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삿담마랑시는 삿담마(saddhamma)와 랑시(rasi)의 복합어이다. 삿담마는 정법을 뜻한다. 랑시(rasi)는 무슨 뜻일까? 빠알리사전에 따르면 ‘light; a ray’의 뜻이다. 빛 또는 광선의 뜻이다. 그래서 삿담마랑시(saddhammarasi)정법의 빛이 된다.

 

혜송스님은 스님은 땃땀마란띠에서 스승을 만났다고 한다. 우 꾼달라 비왐사를 말한다. 우 꾼달라 비왐사는 책을 통해서 알고 있다. 아마 2009년이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강남 논현동에 있는 한국위빠사나선원(현 한국명상원) 다닐 때 묘원법사로부터 소개받은 책이다. 위빠사나 수행지침서 중에서 가장 정리가 잘 된 책이라고 극찬했다. 지금도 수시로 열어 보는 수행지침서 중의 하나이다.

 

우 꾼달라 비왐사는 멧따가 훌륭했다고 한다. 사야도가 경을 낭송하면 새가 날아들고 우물물이 끓었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스승 밑에서 수행하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죽기살기로수행했다고 한다. 수행을 해서 저 대문을 나가든지, 아니면 죽어서 나가든지하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한 것이다.

 

통증은 아픔이 아니라 생멸현상

 

스님의 수행기를 보면 처절하기 그지없다. 하루 두 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좌선과 행선하는데 올인 한 것이다. 특히 수행중에 다리에 통증이 심했는데 통증관찰까지 겸했다고 한다.

 

수행은 앉아만 있는 것이 수행의 전부는 아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몸관찰, 느낌관찰, 마음관찰, 법관찰, 이렇게 네 가지 관찰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사념처라고 한다. 통증관찰은 느낌관찰에 해당된다.

 

스님은 통증과 관련하여 대단히 인상적인 글을 남겼다. 발목 복숭아뼈 통증과 관련하여 7회 수행기를 보면 지금까지 통증을 아픔으로만 봤는데 생-멸의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했다.

 

위빠사나수행에서 통증은 선물과도 같다. 통증은 수행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통증을 관찰하여 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법은 다름 아닌 일어나고 사라지는 고유성질을 가지는 법이다. 이를 느낌관찰이라고 하는데 사념처에서는 수념처(vedanānupassanā)로 잘 알려져 있다.

 

카니까사마디(khaika samādhi: 瞬間三昧)

 

통증은 아픔이 아니라 왜 생멸현상일까?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상윳따니까야 삼매의 경’(S22.5)을 보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삼매를 닦아라. 수행승들이여, 삼매에 들면 수행승은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무엇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아는가? 물질의 발생과 소멸, 느낌의 발생과 소멸, 지각의 발생과 소멸, 형성의 발생과 소멸, 의식의 발생과 소멸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S22.5)

 

 

부처님은 삼매를 닦으라고 했다. 삼매를 닦으면 오온의 생멸을 분명히 안다고 했다. 여기서 삼매는 반드시 선정삼매만을 말하지 않는다. 삼매에는 순간삼매도 있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오온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수행이다. 그런데 대상은 빠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너무 빨리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한다.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것에 대하여 카니까사마디(khaika samādhi: 瞬間三昧)’라고 한다.

 

카니까사마디는 니까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단지 삼매를 닦아라라고 되어 있을뿐이다. 그러나 경에서 말하는 삼매는 문맥상 카니까사마디이기 쉽다. 왜 그런가? 선정삼매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위빠사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생멸을 관찰하는 것이라면 이는 위빠사나 수행에 해당된다.

 

순간삼매에 대한 근거는 논장과 청정도론에서 발견된다. 청정도론에서는 “행복을 잉태하여 성숙시키면 찰나삼매와 근접삼매와 근본삼매의 세 가지 삼매를 완성시킨다.(Vism.4.99)라고 되어 있다. 찰나삼매, 즉 순간삼매는 근접삼매와 근본삼매와 함께 세 가지 삼매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순간집중은 강력한 사띠로

 

순간집중을 해야 일어나고 사라짐을 볼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띠를 필요로 한다. 대상에서 마음이 떠나지 않아야 한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송아지의 비유를 들었다. 이는 여기 송아지를 제어하고자 사람이 기둥에 묶는 것과 같이, 새김을 확립하여 대상에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묶어야 한다.”(Vism.8.154)라는 게송으로 알 수 있다.

 

사띠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사띠와 빳타나이다. 이는 알아차림과 토대, 이렇게 두 가지 기능이 있음을 말한다. 마음을 호흡에 묶어 놓았다면 마음은 호흡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호흡을 지켜보는 마음이 사띠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통증에 묶어 놓았다면 마음은 역시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통증을 지켜보는 마음이 사띠이기 때문이다. 이때 호흡은 몸관찰에 대한 것이고, 통증은 느낌관찰에 대한 것이다.

 

선원에서 집중수행을 하면 늘 듣는 말이 있다. 그것은 호흡과 관련된 부품과 꺼짐을 관찰하라는 말과 통증과 관련된 느낌의 생멸을 관찰하라는 말이다. 이 두 가지가 가장 관찰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집중수행에 참여했는데

 

집중수행을 많이 하지 못했다.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어쩌면 생활인으로서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직장인이라면 십일코스 집중수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직장에서 불이익당할 각오하고 휴가를 내야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인사업하는 자영업자도 십일코스에 참여하려면 큰 마음을 내야 한다. 거래선이 떨어져 나갈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20181월 초에 두 주간의 미얀마집중수행에 참여했다. 김진태선생의 인솔로 참여한 것이다.

 

김진태 선생은 집중수행의 이점에 대하여 글쓰기와 관련해서 말했다. 수행을 하면 글쓰기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는 수행과 교학이 함께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미얀마행을 권했다. 양곤외곽에 있는 담마마마까 국제선원에서 집중수행했다. 혜송스님의 원력으로 창건된 수행센터이다.

 

미얀마는 준비없이 갔다. 그래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6개월후 7월에 직지사집중수행에 참여했다. 담마마마까 선원장 에인다까 사야도가 한국에 내한하여 직접 지도한 것이다. 통역은 혜송스님이 맡았다. 본래 십일코스 수행인데 56일로 압축해서 진행되었다.

 

직지사에서 56일은 매일매일 강행군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자.” 마음으로 임했다. 첫술에 배부를 리가 없다. 방법만 안 것이다. 사무실에 명상공간을 갖추어 놓고 틈만 나면 좌선과 행선을 하고 있다.

 

칸다상윳따(S22)는 수행지침서

 

수행기를 읽으면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우 조띠까 사야도의 마음의 지도를 읽었다. 청정도론에 기반한 십일코스 수행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혜송스님이 밴드를 새로 만들어서 혜송스님의 수행기를 읽고 있다.

 

혜송스님은 호흡관찰과 통증관찰과 관련하여 매우 세밀하게 묘사했다. 부품과 꺼짐의 호흡관찰에서는 무수한 생멸을 보았고, 통증의 느낌관찰에서는 따갑고 차가움을 느꼈다고 했다. 또 행선시에는 움직임이 단절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수행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수행기를 읽으면서 경전에 문구가 떠오른다. 특히 상윳따니까야에서 칸다상윳따(S22)에 실려 있는 가르침이다. 오온을 주제로 하여 모아진 것이 칸다상윳따이다. 그런데 칸다상윳따를 보면 수행서지침서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수행을 하고 난 다음 칸다상윳따를 본다면 체험한 것이 그대로 실려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접촉으로부터

 

가장 보기 쉬운 것이 느낌이다. 통증을 관찰할 때 느낌을 볼 수 있다. 그런 느낌에 대하여 경에서는 접촉이 생겨나면 느낌이 생겨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한다.”라고 했다. 얼핏보면 당연한 이야기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는 연기법에 대한 것이다. 느낌은 접촉을 조건으로 발생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접촉으로부터 시작된다. 접촉이 없다면 느낌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접촉은 조건지어진 것이다. 느낌도 조건지어진 것이다. 그런 느낌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아난다여, 느낌은 무상하고 조건지어지고 연기된 것으로 부서지고야 마는 것, 무너지고야 마는 것, 사라지고야 마는 것,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이 소멸하면 소멸이라고 말한다.”(S22.21)라고 했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생겨난 것은 무엇이든지 사라지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생겨난 것은 조건에 따라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느낌도 조건지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조건발생한 느낌에 대하여 “1)무상하고, 2)조건지어지고, 3)연기된 것”(S22.21)이라고 했다.

 

발생할 때는 조건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사라질 때도 조건을 필요로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1)부서지고야 마는 것, 2)무너지고야 마는 것, 3)사라지고야 마는 것, 4)소멸하고야 마는 것”(S22.21)이라고 했다. 소멸할 때는 조건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통증의 느낌을 물거품처럼

 

혜송스님의 수행기를 보면서 통증과 관련된 이야기가 마음에 다가왔다. 미얀마로 건너간 첫 해 여름에 발목 복숭아뼈 통증으로 고통받았는데 이를 사띠로 이겨낸 이야기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스님은 딱딱하게 굳은 것이 알갱이가 되어서 툭툭 튀어나가듯이 사라졌다는 말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상윳따니까야에 포말비유의 경’(S22.95)이 있다. 경에서 부처님은 오온에 대하여 포말, 물거품, 아지랑이, 파초, 환술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이 중에서 느낌에 대한 것은 물거품이다. 부처님은 느낌에 대하여 물거품처럼 보라고 했다. 다음과 같은 물거품의 비유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가을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에 물거품이 생겨나고 사라지는데, 눈 있는 자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하면, 비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실로 물거품의 실체일 수 있겠는가?”(S22.95)

 

 

비가 억수같이 내릴 때가 있다. 땅바닥을 보면 비가 바닥을 계속 친다. 그런데 바닥을 치는 것보다 물거품을 내고 사라지는 것이 더 잘 보인다는 것이다. 마냥 바라만 보고 있으면 사라짐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물방울은 허약해서 잡자마자 부서지기 때문에 잡히지 않듯, 느낌도 허약해서 영원하고 안정된 것으로 파악되지 않는다.”(Srp.II.321)라고 했다.

 

느낌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통증이라는 실체가 있어서 통증이 머무는 것이 아니다. 통증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일파(一派)가 밀려와서 사라지면 또 이파(二波)가 밀려와서 사라지는 식이다. 그런데 경에서는 파도의 비유를 들지 않고 빗방울의 물거품의 비유를 들었다. 이는 통증이 동시다발적으로 매우 빠르게 일어남을 뜻한다. 그래서 주석에서는 물거품은 하나의 물방울로 생겨났다가 오래지 않아 사라지듯, 손가락을 튕기는 찰나에 십만억(koisatasahassa)의 느낌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조건들에 의해서 물방울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낌도 감역-대상-번뇌-접촉에 의존해서 일어난다.”(Srp.II.321)라고 했다.

 

통증은 일어날 만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통증이 접촉에 따른 조건발생임을 말한다. 그런데 조건발생하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사실이다. 통증은 조건발생하여 그냥 사라질 뿐이다. 마치 빗방울이 땅바닥을 쳐서 물거품을 내고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것과 같다. 통증의 느낌은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가르침을 공유하고 탁마하고자

 

초보 수행자는 선배 수행자에게 크게 의존한다. 홀로 수행을 하면 엉뚱한 길로 가서 헤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선배들이 남긴 수행기는 후학들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수행기는 개인의 체험에 대한 기록이다. 한 개인의 체험이 나의 체험이 될 수 없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보아야 한다. 남의 수행기는 단지 방향을 알 수 있는 나침반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먹어 보아야 맛을 알 수 있다고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혜송스님의 수행기를 읽고 있다. 스님은 매일 수행기를 밴드에 올리고 있다. 비록 직접 체험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체험 하는 것만으로도 직접체험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일까 스님은가르침을 공유하고 탁마하고자 밴드를 만들었습니다.”라고 했다. 혜송스님의 수행기를 접하면 구도열정과 법에 대한 환희를 엿볼 수 있다.

 

 

 

2020-08-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