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시선강탈 당하지 않으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0. 8. 26. 12:05

 

시선강탈 당하지 않으려면

 

 

시선강탈이라는 말이 강하게 다가왔다. 어디선가 본 글에서 대상에 빠진 것에 대하여 시선강탈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말이라고 해도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진다. 대상에 마음이 가는 것에 대하여 시선강탈이라 한 것이 마음에 강하게 남는다.

 

얼굴이 맑고 깨끗한 이유는

 

부처님은 늘 마음을 현재에 두라고 했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지 않으며 현재의 삶을 지켜 나가면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리.”(S1.10)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보면 늘 후회되고 아쉬운 일만 생각나는 것 같다. 과거의 일에 대하여 그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한다. 그러나 과거의 조건과 지금의 조건은 다르다. 후회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다. 과거의 일을 생각하면 슬픈 얼굴이 된다.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에 걱정한다. 이런 경우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어서 좋겠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면 애만 탈 뿐이다.

 

마음은 늘 과거나 미래에 가 있기 쉽다. 이렇게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그러나 마음이 현재에 있으면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리.”라고 했다. 왜 그럴까? 주석에 따르면 식사를 마친 뒤, 물러나 명상하면서 의식을 한곳에 집중해서 산란한 마음을 극복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피가 맑아져서 육체가 정화되며 안색도 맑고 아름다워진다.”(Srp.I.28)라고 했다.

 

하루 한끼만 먹어도

 

여기 하루 한끼만 먹는 수행자가 있다. 수행자는 하루 한끼만 먹고 살아도 안색이 맑고 깨끗하다. 이는 수행자가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사띠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대상에 대하여 알아차림이 계속 유지되고 있을 때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근심이 일어날 수 없다.

 

수행자가 안색이 맑고 깨끗한 것은 명상의 힘에 따른 것이다. 마음을 현재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근심걱정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범부들은 대상에 쉽게 휘둘린다. 그래서 마음은 늘 과거나 현재에 가 있게 된다. 설령 마음이 현재에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도 극히 짧은 기간이다.

 

마음이 현재에 머물러 있어야 근심걱정이 없다. 설령 현재에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도 사띠가 없으면 현재의 상태에 정복되기 쉽다. 맛지마니까야에서는 현재의 상태에 정복당하는 것에 대하여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오온에서 유신견을 가졌을 때이고 또 하나는 여섯감역에서 감각의 문을 단속하지 못했을 때이다. 먼저 오온에 대한 것이다.

 

오온에서 유신견을 가졌을 때

 

시각적 대상에 마음이 머물러 있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맛지마니까야 아난다와 한 밤의 슬기로운 님의 경에 따르면 현재의 상태에 정복된다.”라고 했다. 어떻게 정복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그는 느낌을 자아로 여기고, 느낌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고, 자아 가운데 느낌이 있다고 여기고, 느낌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M132.20)라고 했다. 오온 중에서 느낌에 대한 것이다.

 

여기 매혹적인 대상이 있다. 그것이 여자일수도 있고 남자일수도 있다. 꽃이 될수도 있다. 매혹적인 대상에 시선이 머문다면 이는 현재상태에 정복되었다.’라고 본다. 또 다른 말로 시선강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상태에 정복된 이유는 대상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매혹적인 대상에 즐거운 느낌이 생겨났다면 계속 보려는 갈애가 생겨날 것이다. 이는 다름이닌 현재상태에 정복당한 것이다. 또 다른 말로 시선강탈당한 것이다. 오온에서 유신견을 가졌을 때 현재상태에 정복당한다.

 

여섯 감역에서 감각의 문을 단속하지 못했을 때

 

다음으로 현재상태가 정복당하는 것은 여섯 감역에서 감각의 문을 단속하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맛지마니까야 마하 깟짜야나와 한 밤의 슬기로운 님의 경’(M133)에 설명되어 있다. 마하 깟찌야나 존자는 벗들이여,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이 현재의 상태에 정복됩니까?”라며 물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벗들이여, 시각과 형상들 그 양자는 방금 생겨난 것인데, 의식이 그 방금 생겨난 것들에 대한 욕망과 탐욕에 묶이고, 의식이 욕망과 탐욕에 묶이기 때문에 그것에 즐거워합니다. 그것에 즐거워하면, 사람은 현재의 상태에 정복됩니다.”(M133.22)

 

 

여섯 가지 감역에서 시각에 대한 것으로 현재상태에 대한 것이다. 삼사화합촉에 따라 의식이 생겨나는데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욕망의 지배를 받는 것에 대하여 현재상태에 정복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은 항상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다고 했다. 설령 마음이 현재에 있더라도 머무는 기간은 극히 짧다고 했다. 현재의 상태에 쉽게 정복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섯 감역에 있어서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는 것에 대하여 경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까?

 

마음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 갈 때

 

여섯 감역에서 마음이 과거에 가 있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는가? 이는 이와 같이 과거에 나의 시각은 이와 같았고, 그 형상들은 이와 같았다.’라고 생각하면서 의식이 그것에 대한 욕망과 탐욕에 묶이고, 의식이 욕망과 탐욕에 묶이기 때문에 그것에 즐거워합니다.”(M133.18)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마음은 과거에 가 있기 쉽다. 노인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면 만감이교차할 것이다. 영광스러웠던 일도 있겠지만 부끄럽고 창피한 일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참회하고 싶은 일도 있을 것이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있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다. 죽을 때 껄껄걸 하며 죽는다는 것이다. 이는 좀더 잘해 줄 껄”, “좀더 열심히 살 껄”, “좀도 빨리 시작할 껄라며 후회와 회환의 마음이 일어남을 말한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과거로 거슬러 가 있다면 이는 욕망과 탐욕에 따른 갈애때문이다

 

마음이 미래를 바라게 될 때

 

여섯 감역에서 마음이 미래에 가 있는 것에 대하여 미래를 바라게 된다.’라고 한다. 어떻게 바라게 되는가? 이는 이와 같이 미래에 나의 시각은 이와 같을 것이고 그 형상들은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마음이 갈망하고, 마음으로 갈망하는 것을 조건으로 그것에 대해 즐거워합니다. 그것에 즐거워하면, 사람은 미래를 바라게 됩니다.”(M133.20)라고 했다.

 

허황된 욕심을 꿈꾸는 자가 있다.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장미빛 환상을 갖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건전한 계획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과도한 꿈을 꾸는 것은 망상이다. 미래에 대하여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욕망이 개입된 것이다. 욕망과 탐욕에 따른 갈애가 일어난 것이다.

 

송곳 끝에 있는 겨자씨처럼

 

부처님은 마음을 현재에 두라고 했다. 그러나 마음이 현재에 머물기 어렵다. 어느 정도로 어려울까? 이는 법구경에서 송곳 끝에 있는 겨자씨처럼.”(Dhp.401)이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현재 생겨나 존속하더라도 송곳 끝의 겨자씨와 같다.”(Vism.20.72)라고 했다. 마음이 현재에 머물러 있는 기간이 극히 짧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물질이나 마음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는 매순간 생성과 소멸이 일어난다. 이는 오온의 생멸이다. 그런데 생성과 소멸만 있을 뿐 유지가 보이지 않는다. 머물고 유지되는 기간이 극히 짧다. 그래서 생멸이라고 한다. 꼰당냐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무엇이든 생겨난 것은 그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S56.11)라며 진리의 눈(dhammacakkhu: 법안)이 생겨났을 때도 생성과 소멸만 언급되어 있을 뿐 유지가 보이지 않는다.

 

행위를 하면 행위를 아는 마음이 있다. 이는 좌선과 행선할 때 잘 관찰하면 볼 수 있다. 생성과 소멸은 있지만 머무는 기간은 매우 짧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유지기간이 짧기 때문에 마음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늘 과거나 미래에 가 있기 쉽다. 설령 현재에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도 송곳 끝에 있는 겨자씨처럼 극히 짧기 때문에 알아차림이 없으면 현재상태에 정복당하기 쉽다.

 

시선강탈 당하지 않으려면

 

대부분 사람들은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다.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다. 망상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개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현재에 두면 현재를 사는 것이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약하면 쉽게 현재의 상태에 정복당한다. 매혹적인 대상에 시선이 머물렀을 때 이는 현재상태에 정복당한 것이다. 또 다른 말로 시선강탈 당했다라고 할 것이다.

 

즐거운 느낌에 대하여 갈애가 일어났을 때 이는 현재의 상태에 정복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시선강탈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시선강탈 당하지 않으려면 늘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한다. 대상을 개념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무상, , 무아로 보는 것이다.

 

 

2020-08-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