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0. 4. 08:10

 

깊은 밤에 홀로 깨어

 

 

깊은 밤에 홀로 깨어 있다. 방은 따뜻하다. 날씨는 시월에 접어들어 밤이 되면 차갑다. 시월 일일부로 난방이 되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은 사시사철 하루종일 가능하다. 아침 욕조에 온수를 받아 잠시 몸을 담구는 행복을 맛본다. 이사 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샤워는 가능했지만 욕조의 행복을 누릴 수 없었다.

 

물질적 혜택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다. 움막에 살아도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이다. 난방이 되고 온수욕조가 있다면 편리한 것이다. 편리한 것은 행복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행복의 충분조건은 마음에 달려 있다. 지금 이순간 바로 여기에서 그런 줄 알면행복이다. 지금 여기서 알아차리면 행복의 충분조건이 된다.

 

누구에겐가는 당연한 행복이 또 누구에겐가는 당연하지 않다. 조건이 같을 수 없다. 특히 물질적 조건이 그렇다. 그래서 세상은 불공정한 것이다. 잘난 사람들은 물질적 행복을 최대한 향유하지만, 못난 사람들은 최소한의 물질적 혜택을 받을 뿐이다. 소유와 지위에 따라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여기 성공한 사람이 있다. 물질적 부를 이룬 사람이다. 그 부는 과연 정의로운 것일까? 두 가지 시각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우파적인 시각이고 또 하나는 좌파적 시각인 것이다.

 

학교친구가 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등록금이 없어서 공사판에서 일했다. 방학때 공사판에서 질통을 맨 것이다. 등에 무거운 질통을 매고 한계단 한계단 힘겹게 오를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헝그리정신이 있어서일까 크게 성공했다. 동기 중에서는 가장 큰 부자가 된 것이다. 무역을 해서 큰 돈을 번 것이다.

 

돈은 돈을 부른다. 한번 재산이 축적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런데 한번 굴러가면 멈출 줄 모른다는 것이다. 돈맛을 아는 자들은 어떻게 하면 불릴까만 궁리한다. 그들에게는 만족하는 법은 없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사람들은 돈 불리는 재미를 모른다. 돈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맛을 아는 자들은 돈 굴리는 재미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도 그런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돈 버는 것보다 더 짜릿한 재미가 없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임계점이 있다.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가속화된다. 부의 축적도 그렇다. 세계적인 대부호들의 천문학적 재산도 어느 임계점을 넘는 순간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재산은 과연 정의로운 것일까?

 

부호들에게는 두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이 이룬 부가 자신의 노력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이룬 부에 대하여 사회적 산물로 보는 것이다.

 

부를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부가 부를 부르는 것도 자신의 능력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처럼 노력하지 않는 자들을 경멸한다. 가난뱅이들을 게으른 자들로 보는 것이다. 또 현실에 만족하는 자 또한 게으른 자들로 보는 것이다. 도를 닦거나 수행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교류한다. 같은 지역에 살며, 자녀를 같은 학교에 보내고, 심지어 혼맥으로 엮기도 한다. 이렇게 단단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구축했을 때 보수 기득권층이 된다. 그들은 현상태가 지금 이대로 영원히지속되기를 바란다. 우파 기득권 층에서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부에 대한 사회적 정의는 자신들의 노력과 실력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부호들에게서 또 하나의 시각은 자신들이 이룬 부를 사회적 산물로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기가 잘 맞아 떨어져서 운이 따라 준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노력과 실력에 따라 축적된 부이긴 하지만 이를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다. 부를 축적할 토대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운좋게 편승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2000년을 전후하여 닷컴열풍이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성공한 벤처기업가가 나타났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대표적이다. 특히 빌 게이츠의 경우 벤처부터 시작하여 대부호가 되었지만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자신의 부가 자신의 노력과 실력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를 잘 타고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기 50년대나 60년대에 사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오늘날 같은 부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이룬 부에 대하여 시대에 따른 산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있기에 그가 이룬 천문학적 부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좌파적 시각에 따른 부에 대한 사회적 정의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능력이 있다. 그러나 성공에 이르기 까지는 운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 했을 것이다. 천재적 재능을 가진 축구선수라도 발탁이 되지 않으면 스타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뜨지 않으면 무명으로 긴 세월 보내야 한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재능이 있다고 해서 실력이 있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조건이 갖추어 졌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한 사람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실력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이룬 부가 자신의 노력에 따른 것이라 꽉 움켜 쥐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기득권을 더욱 더 강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부를 이룬 자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른바 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난 사람도 있고 든 사람도 있다. ‘난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룬 자들이라 볼 수 있다. 그럼 든 사람? ‘든 사람은 사회 시스템에서 지위가 있는 자를 말한다.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오피니언 리더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특히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공무원들이 그렇다.

 

공무원의 영역은 다양하다. 말단 공무원도 있지만 고위직도 있다. 법을 만드는 것도 공무원이고, 법을 집행하는 것도 공무원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요람에서 무덤까지완벽한 복지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공무원 지위를 획득하면 고용보장, 신분보장, 연금보장이라는 삼대혜택이 주어진다. 이런 혜택은 일반기업에서는 좀처럼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공무원 연금이 그렇다.

 

요즘 청년들은 공무원시험 준비에 올인하고 있다. 그들은 연금 그거 하나 바라보고"”라며 청춘을 다 바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을 보면 공무원시험에 인생을 걸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칠년전의 일이다. 그때 실크로드 성지순례 갔었다. 패키지 여행이었다. 일종의 오지여행이라 볼 수 있다. 세계 각국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이 막판에 찾는 곳이 오지여행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니 상당수가 여유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교육자 출신 부부도 있었다.

 

남자는 대학교수로 정년퇴임 했다. 여자는 고등학교 교사로 정년 퇴임했다. 부부는 세계 각국 안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철마다 나간다고 했다. 일년에 서너번은 가방을 꾸리는 것이다. 여자는 실크로드 여행을 앞두고 감기에 걸렸는데 링겔 맞고 왔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부의 연금 합계는 월수령액이 칠백만원가량이라고 했다.

 

일반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공무원연금이다. 실상을 알게 되면 살 맛이 떨어질 것이다. 적게 내고 많이 타가는 구조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여기에다 상속까지 가능한 것이 공무원연금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법을 만든 사람들이다. 법을 만든 사람들도 공무원들이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도 공무원들이다. 그들 자신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고용보장, 신분보장, 연금보장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완벽한 복지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있다.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난 사람이나 든 사람보다도 된 사람이 되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난 사람들과 든 사람들의 세상이다. 부를 이루지도 못하고 지위를 얻지도 못하면 못난 사람, 못든 사람이 된다. 무능한 자로 보는 것이다. 심지어 게으른 자로 본다.

 

난 사람들과 든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들에게 자만이 싹튼다. 사회적 부를 이루기 까지 사회적 기반에 따라 운이 작용한 것임에도 마치 자신의 실력으로 모두 다 이룬 것처럼 자만하는 것이다. 한때 공부를 열심히 하여 법적으로 보장 되는 자리에 있기 까지 사회적 시스템이 작동되었음에도 마치 특권층처럼 자만하는 것이다.

 

난 사람과 든 사람은 자만하기 쉽다. 대개 내가 누군데.”라며 자아를 강화하는 것이다. 부와 지위를 자아와 동일시했을 때 자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도 있지만 성공할 수 있는 환경도 크게 작용한 것이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겸손하다. 자신의 성공에 대하여 단지 운이 좋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룬 부를 대부분 사회에 환원한다. 이런 사회가 공정한 사회이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평등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공정한 세상은 만들어 갈 수 있다. 그 첫번째 조건은 자만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이룬 부도 그가 얻은 지위도 사회기반에 따른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겸손한 것이다.

 

자만에는 반드시 우월적 자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세가지 교만 곧, 내가 우월하다는 교만, 내가 동등하다는 교만, 내가 열등하다는 교만이 있습니다.”(D33.10)라고 했다. 남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도 자만이다.

 

업대로 사는 것이다. 행복하고 부유한 자를 보면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S15.12)라고 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행하고 가난한 자를 보면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라고 보는 것이다. 시작을 알 수 없는 한량 없는 윤회에서 그런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밝아 온다. 날씨는 갈수록 차가워지지만 난방이 되니 추운 줄 모른다. 더구나 욕조 뜨거운 물에 몸을 데울 행복도 있다. 무엇이든지 현재 조건에 만족하는 것이 행복이다.

 

 

2020-10-0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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