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크게 웃어버리는 도(道)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깝게” 추석연휴를 맞이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다. 공익광고를 보면 추석날 모임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상당수 사람들이 추석 차례지내기를 포기한 것 같다.
모든 행사가 끝났다. 저녁에 편안한 자세로 스마트폰 자판을 똑똑 쳐 본다. 오늘 하루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되돌아보았다. 확실히 감정변화가 있다. 그것은 추석차례가 끝나고 이야기를 나눈 것과 관련이 있다.
동생네와 단 두 가구가 참여한 조촐한 차례를 지냈다. 늘 잊어버린다. 차례 예법을 말한다. 유튜브라도 보고 공부해야 함을 말했다. 그러나 예법은 다 다르다. 지방마다 다르고 집안마다 다르다. 오죽했으면 같은 지역에서도 개울 하나만 건너도 다르다고 했던가!
명절 차례를 지내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선망부모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제철음식과 최상의 음식으로 제사 지내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가족간의 화합이다.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과 멀리 사는 친지가 모여서 음식을 나누며 화합하는 것이다. 요즘은 후자에 더 비중을 두는 듯하다.
동생네와 과일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 이야기를 들으니 크게 성공한 것 같다.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린 것이다. 불과 5년전 애써 모은 종자돈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어서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무얼 하고 있었을까?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동생의 성공스토리를 들으니 대견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은근히 비교되기도 했다. 재테크에서만큼은 동떨어진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동생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나는 아파트가 열 네 채야.”라고 말 했다. 우스개 소리로 한 것이다.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 의뢰한 책을 말한다. 책 한권에 담겨 있는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아파트 한 채의 가치가 있음을 말 했다.
재테크와는 담 쌓고 살았다. 2006년 이후 하루 한개씩 의무적 글쓰기를 하며 살았다. 그 결과 5,367개의 글을 블로그에 쓰게 되었다. 이를 파일화 작업하여 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백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서 아파트 백채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연히 웃었다.
노자 도덕경을 보면 세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다. 도를 이야기하면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얼마되지 않는다. 십프로도 안될 것이다. 이를 ‘상사문도권이행지(上士聞道 勤而行之)’라 하여, 이는 “가장 높은 단계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그것을 성실하게 실천한다.”라는 뜻이다. 다음으로 이삼십프로는 듣는 척하는 것이다. 이를 ‘중사문도약존약망(中士聞道 若存若亡)’이라 하는데, 이는 “중간 단계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한다.”라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하사문도대소지(下士聞道 大笑之)’라 하여, “가장 낮은 단계의 선비는 도를 듣고서도 그것을 크게 웃어 버린다.”라고 했다.
누군가 도나 진리에 대하여 이야기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크게 웃어버린다(大笑)’고 했다. 이는 다름 아닌 ‘비웃음’이다. 문구점에 의뢰하여 책 한권 낸 것에 대하여 아파트 한채 가치가 있다고 했을 때 대부분 웃어 버린다.
세상에 비난받지 않은 도는 도가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 ‘도 닦는 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도 닦는다는 사람이”라며 비난한다. 누군가 ‘수행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수행한다는 사람이”라며 비난한다.
사람들에게 ‘도 닦는다’든가, 또는 ‘수행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비난받기 쉽기 때문이다. 도는 조용히 닦고 수행은 남모르게 하는 것이다. 드러내놓고 하면 비난받는다. 모든 일이 그렇다. 특히 잘 되는 일이 그렇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장사 잘 됩니까?”라고 물어 본다. 이때 ‘장사 잘 된다’고 말하면 ‘하수’이다. 장사꾼들은 대부분 “그저 먹고 살지요.”라고 말한다. 돈 자랑하는 사람은 하수이다. 질투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부자들은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예외이다.
동생이야기를 듣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다. 재테크에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오늘날 큰 격차가 벌어진 요인이 된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지난 삶은 헛된 것일까? 책 한권이 아파트 한채 값과 가치가 같다고 말한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모두 웃어 버리는 현실에서 나의 의무적 글쓰기는 가치가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재테크에 뛰어 들어 재산을 불려야 할까?
동생의 성공스토리를 듣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 동안 잘못 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 것이다. 글쓰기에 매몰되어 지나치게 종교적 삶을 산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 것이다. 그러나 이내 본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이루어 놓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재산을 불리지 못했지만 써 놓은 글이 있다. 주류불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B급 3류’ 글쓰기에 지나지 않지만, 블로그에 쓴 글은 지난 13년의 세월이 담겨있다. 하나 위안을 삼는다면 H스님의 글이다.
H스님은 미얀마에서 수행하신 스님이다. 미얀마에 국제선원을 만든 창건주이기도 하다. 최근 밴드에 올린 글에 대하여 존경하는 스님은 “글쓰기에 온 뇌수를 밖는 만큼 싸띳에 몰입하면 수다원 도 과 뿐만 아니라 아라한도 되실것 같은데 아무튼 아깝습니다.”라고 했다.
행복은 물질과 비례하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 행복하겠지만, 반드시 물질적 조건이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행복은 욕망과 관련이 있다. 물질적으로 풍족해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행복지수는 낮다. 행복은 물질과 크게 관련이 없다. 물질적으로 많것 적건 간에 현재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면 행복한 것이다. 여기에 정신적 풍요로움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된다.
이제까지 쓴 글은 정신적 재산이라고 볼 수 있다. 무형의 것으로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도 이롭고 타인도 이롭다면 좋은 것이다. 아파트 여러 채가 부럽지 않다. 오늘도 내일도 쓸 뿐이다.
2020-10-0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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