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

푸른 잎에서 생명의 경외(敬畏)를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0. 9. 17:56

푸른 잎에서 생명의 경외(敬畏)를

 

 

수경재배한지 2주만에 뿌리가 내렸다. 다년생 식물줄기를 잘라 온 것이다. 잎사귀에 흰줄이 있는 기품 있는 식물이다. 척척 늘어진 즐기 끝에서 나온 새로운 줄기를 따서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이다.

 

페트병을 잘라서 수경재배용으로 활용했다. 페트병에 물을 담으면 물병이 되지만, 수경재배용으로 활용하면 화병이 된다. 쓰임새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공성(空性)’이라 해야 할 것이다.

 

무늬접란과 접란

 

식물이름은 무엇일까? 인터넷을 검색하니 식물이름을 찾는 어플이 있다. 여러 어플중에 모야모가 있다. 스마트폰에서 앱을 검색하여 바탕에 깔았다. 사진 찍어 놓은 것을 올리자 10분도 안되어서 누군가 이름을 알려 주었다. 식물이름은 무늬접란이다.

 

무늬접란은 외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줄기 끝에 새끼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따 온 것이다. 2주간 수경재배했는데 뿌리가 무성하다. 이정도면 흙이 있는 화분에 옮겨 심을만 하다.

 

 

또 하나의 수경재배한 것은 접란이다. 흰줄이 없는 초록색 잎으로만 되어 있다. 사무실 화분에서 무성한 자란 것에서 채취한 것이다. 무늬접란과 함께 2주간 수경재배한 것이다. 그러나 무늬접란에 비하여 뿌리는 부실하다.

 

 

화분을 구입했다. 사무실 근처 대로변에 있는 화원에서 흙과 함께 산 것이다. 무늬접란과 접란을 화분에 심었다. 수경재배하여 뿌리가 어느 정도 내렸기 때문에 영양이 풍부한 흙과 함께 화분을 만든 것이다.

 

 

 

화분에 옮기고 나니 사무실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다. 위로 쭉쭉 뻗은 잎을 보니 생명의 기운을 느낀다.

 

개운죽

 

대로변 화원은 종종 찾는 곳이다. 사무실 주변에 세 곳의 화원이 있지만 그래도 자주 찾는 것은 주인이 잘 해주기 때문이다. 친절해서 찾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팔아 주고자 한다.

 

지역에 있는 사람이 사주지 않으면 누가 사줄까? 이런 논리를 적용한다면 사무실 주변 식당도 모두 한번쯤 가보아야 할 것이다. 설령 생소한 메뉴라도 먹어 주어야 할 의무를 느낀다.

 

화분과 흙을 사면서 또 다른 식물도 샀다. 대나무종류이다. 식물찾기 앱을 이용하여 검색해 보니 개운죽이다.

 

개운죽은 사무실에도 있다. 13년전에 사무실 입주할 때 구입했었다. 그때 당시 5천원 주고 동대문에서 산 것이다. 수경재배 했었는데 달이 가고 해가 가자 쑥쑥 자랐다. 지금은 사람키보다 더 높게 자랐다.

 

물만 주어도 잘 자라는 것을 보면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 그러나 이제 한계가 온 것 같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 그래서 새로운 개운죽을 사서 다시 키워 보고자 한 것이다. 화원 주인에게 물어보니 만원 달라고 했다. 팔아 주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두 말없이 샀다.

 

 

새로 산 개운죽은 먼저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한다. 아마 6개월가량은 수경재배 해야 할 것 같다. 크기를 보니 페트병이 딱 알맞을 것 같았다. 놀랍게도 페트병에 딱 들어 맞았다. 페트병 중간에 오목 들어간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걸린 것이다.

 

아레카야자

 

사무실에 가지가 척척 갈라져 자라는 식물이 있다. 수년전에 서울대공원 식물원에서 천원 주고 사온 것이 세월이 흐르자 엄청나게 자란 것이다. 큰 줄기는 화분에 그대로 놓아 두고 두 개를 찢어서 수경재배 했다.

 

 

역시 페트병을 활용했다. 이 식물의 이름은 무엇일까? 식물이름찾기 앱 모야모에 문의한 결과 ‘테이블야자'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거실 식물'을 키워드로 이미지 검색한 결과 아레카야자인 것을 알았다.

 

푸른 잎에서 생명의 경외(敬畏)

 

10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사무실에서 네 개의 식물에 대하여 화분과 수경재배용 화병을 만들었다. 무늬접란 화분 하나, 접란 화분 하나, 개운죽 수경재배 화병 하나, 아레카야자 수경재배 화병 두 개이다. 모두 네 종류의 식물에 다섯 개를 만든 것이다.

 

 

식물이름을 모두 다 알 수 없다. 이럴 경우 식물이름 앱을 설치하여 문의해 보면 누군가 알려 준다. 그러나 식물이름은 누군가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많이 불려졌기 때문에 명칭으로 굳어진 것이다. 식물이 언제 이런 불러 달라고 한적이 없음에도 사람들은 명칭을 부여하여 구분하고 있다.

 

한 개, 두 개 화분을 모으다 보니 사무실에 화분으로 가득하다. 이번에 새로운 화분과 화병이 생겨남에 따라 생명의 기운이 더욱더 넘치는 것 같다. 메마른 대지에 새싹을 보면 경이를 느끼듯이, 화분과 화병에서 잎파리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생명에 대한 경외(敬畏)를 느낀다. 생명은 신비롭기도 하고 불가사의하기도 하다.

 

 

2020-10-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