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번뇌가 일어나는 족족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0. 26. 07:50

 

번뇌가 일어나는 족족

 

 

인생의 목적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인생의 방향이 정해져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목표와 목적은 다른 것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수험생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목표가 된다.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이지 목적은 아닌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구하여 학자가 된다면 인생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가난한 자 청소부가 있다. 그는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0억을 모으기로 생각했다면 인생의 목표이지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거리를 청소하면서 세상을 청소한다고 생각하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는 인생의 목표라기 보다는 목적에 가깝다.

 

목표는 단기적인 것이라면 목적은 장기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목표는 현실적인 것이라면 목적은 미래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목적은 목표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을 설정해 놓으면 목표는 자동적으로 따라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문에 목적을 두었다면 원하는 대학에 가게 되어 있는 이치와 같다. 수행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행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수행자에게도 목적이 있다. 그것은 해탈과 열반이다. 여기서 해탈과 열반은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수행자가 해탈과 열반을 지향하면 도와 과는 자동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여기서 도와 과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목표가 될 수 있다. 해탈과 열반이라는 수행자의 목적이 있을 때 도와 과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럼에도 해탈과 열반이라는 목적없이 단지 도와 과만을 목표로 한다면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방향이 없기 때문에 표류하게 될지 모른다. 목적지 없이 항해 하는 것과 같다.

 

 

삿담마마마까 밴드에서 혜송스님 수행기를 읽었다. 61(https://band.us/band/80933945/post/177 )를 보니 도와 과 전단계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언제나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생멸의 지혜 단계도 진입하지 못한 것을 보니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글을 보고서 인생의 목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더 나아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 될 것인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해야 할 일이 많다.

 

해탈과 열반, 평생해도 못할 일이다. 한생 가지고 부족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도전할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인생의 활력소가 된다. 혜송스님에 따르면, 사띠의 힘이 강할 때 일어나는 번뇌는 일어나는 족족 소멸한다고 했다. 이것처럼 익사이팅한 일이 어디 있을까? 해탈과 열반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목적을 가졌을 때 인생은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2020-10-2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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