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유목민(nomad)처럼 자유롭게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0. 29. 09:14

유목민(nomad)처럼 자유롭게

 

 

어제 저녁 이천으로 납품 갔었다. 담당자가 급했던 모양이다. 도면을 주고서 하루 만에 물건을 내 놓으라고 했다. 고객제일이다. 고객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지옥에라도 가야한다. 계속 거래하길 원한다면 어떤 무리한 요구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당일 급히 라우팅하여 발주했다. 다음날 저녁 하루만에 퀵서비스 기사로 부터 물건을 받았다. 받자 마자 마치 릴레이 하듯이 이천으로 차를 몰았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왕복 두 시간 달렸다. 두 시간 동안 유튜브 강연을 들었다. 고미숙선생 동영상을 세 개나 들었다. 이전에 들어 본 것과 유사한 내용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는다. 어떤 것은 두 번, 세 번도 듣는다.

 

운전 중에 들으면 더 집중이 잘 된다. 왜 이렇게 자주 듣는 것일까? 들을 만하기 때문에 듣는 것이다. 들으면 공감한다. 듣고 나면 남는 것이 듣는다. 유익하기 때문에 듣는 것이다.

 

고미숙선생 강연에 대하여 한단어로 말한다면 백수예찬론이다. 백수예찬을 하기 위하여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경험담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집중도가 높다.

 

고미숙선생은 한평생 백수로 살았다. 정규직이 되고자 했으나 기회를 잡지 못해서 지금까지 백수로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고미숙선생은 자신을 중년백수라고 했다.

 

고미숙선생이 중년백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교수로 취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마흔살 즈음이라고 한다. 이후 정규직의 꿈을 접고 나름대로 삶을 살게 되었는데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본다.

 

고미숙선생이 그때 당시 정규직에 취업했더라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아마도 안락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정년 때까지 보장되는 삶이다. 한번 정규직 교수가 되면 65세 때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더구나 정년후에는 명예교수라는 타이틀이 주어진다.

 

정규직이 되면 고용보장과 신분보장이 될 뿐만 아니라 연금보장까지 된다. 이보다 더 안락한 삶이 없다. 그러나 잃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에 매여 사는 것이다. 또 농경민 같은 삶이다. 매번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정규직은 안락한 삶이 보장되지만 유목민 (nomad)처럼 자유로운 삶은 아니다.

 

정규직에 취업하지 못하고 중년백수로 산 것이 오늘날의 고미숙을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미숙선생이 박사학위를 받고 남들처럼 정규직 교수가 되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유명강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노마드(nomad)와 같은 백수로 살았기 때문에 글도 쓸 수 있었고 공동체생활도 할 수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명강사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회장도 교수가 되지 못했다. 정규직 교수가 되지 못했을 때 번역가로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금요 니까야강독 모임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정규직 교수로 안락한 삶을 살았다면 수십권에 달하는 경전을 번역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마도 헝그리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번역가가 되었을 것이다.

 

고미숙선생은 강연에서 늘 세 가지를 말한다. 그것은 노동화폐스위트홈에 대한 것이다. 강연을 들어 보면 이 세 가지는 피해야 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자본주의가 심어 놓은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다.

 

사람들은 정규직에 목숨을 건다.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 같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청년들은 공무원시험에 목숨을 거는 듯하다. 고용보장, 신분보장, 연금보장이라는 세 가지에 청춘을 기꺼이 바치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안락한 삶이다. 머무는 삶이다. 농경민과 같은 삶이다.

 

또 하나 강박증이 있다. 그것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노후대책까지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액을 모아야 안심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10억원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백세시대에 20억원 이상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를 하고 주식을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매주 복권을 산다. 돈 버는 재주가 없음에도 모두 돈 버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바라는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스위트홈에 대한 꿈이 있다. 나이가 되면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언덕 위의 하얀 집에서 어여쁜 아내와 토끼 같은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을 이상적인 삶으로 여긴다. 오래 전부터 매스컴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바라는 안락한 삶이다.

 

고미숙선생은 세 가지를 부수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정규직, 화폐, 스위트홈에 대한 환상을 깨부순 것이다. 자본주의가 심어 준 꿈을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마치 유목민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정규직에 대한 환상이 있다. 정규직에 들어가야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이는 삶이다. 시간에 매여 급료를 받고 사는 삶이다. 이런 삶이 한두해도 아니고 30년동안이라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무리 정규직이 안락한 삶을 보장한다고 해도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다.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을 정년때까지 보냈다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한때 정규직에 있었다.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면 모두 정규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젊었을 때의 일이다. 나이가 들어 쓸모가 없어 졌을 때 퇴출된다. 퇴출되면 비정규직이 되거나 자영업자가 된다. 그런데 이때 인생역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수입이 적어서 안락한 삶은 보장되지 않지만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시간에 매여 사는 것보다 자유로운 삶이 더 좋다. 농경민 같은 정규직 보다는 유목민 같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가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십대 중반에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되었을 때 인생이 바뀌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정규직에 있었다면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 다닐 때 일하지 않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었다. 어니 젤린스키가 지은 책이다. 북미에서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1997년에 읽은 책이다. 그때 당시 오로지 회사와 집만 오가며 밤낮없이, 주말없이, 휴가없이 일만 하던 때였다. 책의 제목에 이끌려 샀다. 그때 당시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직장이 없으면 큰 일 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일하지 않는 즐거움이라니!

 

 

책을 열면 경고의 메시지가 있다. 누구든지 이 책을 보고서 직장을 그만 둔다면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직장을 그만 둔다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반기업은 정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하는데까지 하자는 생각이었다. 쫓아 낼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보니 일하지 않고서도 사는 방법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고미숙선생이 백수예찬 강연하기 훨씬 이전에도 이런 책이 있었던 것이다.

 

책에서는 직장을 그만 두라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하루 일과 중에 반만 일하고 나머지 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어떤 일일까? 작가는 능동적인 일을 하라고 했다.

 

일에는 수동적인 것도 있고 능동적인 것도 있다. 수동적인 것은 “TV시청, 술이나 마약에 취하기, 습관적으로 먹어대기, 드라이브, 쇼핑, 돈쓰기, 도박, 운동경기관람”(221)에 대한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정규직이라면 쉬는 날에 이런 수동적인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족이나 성취감은 기대할 수 없다.

 

작가는 능동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능동적인 일은 어떤 것일까? 이는 글쓰기, 독서, 운동, 공원산책, 그림그리기, 악기연주, 춤추기, 강습 받기”(222)라고 했다. 모두 자신의 노력이 들어 가는 일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향상과 성장과 관계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면 만족과 성취감을 갖게 되어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살게 된다.

 

1997년 정규직에서 일할 당시 어니 젤린스키의 일하지 않는 즐거움을 읽었다. 그리고 크게 감명받았다. 언젠가는 능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회사 다닐 때는 피곤해서 TV를 보는 것이 여가생활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삶이 1, 5, 10년이 되고 마침내 20년이 되었다. 정년이 있어서 끝까지 정규직에 있었다면 수동적인 삶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다행히도 사십대 중반에 백수가 되었다. 다시는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이후 지금까지 자영업자로 살고 있다. 그런데 반백수의 삶을 살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니 젤린스키가 말한 능동적인 일, 즉 글쓰기, 독서, 운동, 공원산책, 그림그리기, 악기연주, 춤추기, 강습 받기 중에서 글쓰기를 하게 된 것이다.

 

글을 쓴다고 하여 작가가 아니다. 시인도 아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블로거에 지나지 않는다. 생업을 하며 글을 쓰는 것이다. 매일 쓰다보니 하루일과 중의 반은 글쓰기로 보낸다. 그런데 이런 글쓰기가 삶에 활력을 주었다는 것이다. 글쓰기를 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15살이라고 말한다.

 

만약 정규직으로 60세까지 보냈다면 어땠을까? 아마 TV나 보고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안락한 생활은 보장되었을지 몰라도 자신의 향상이나 성장은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럴 때 하마터면 정년 때까지 열심히 살 뻔했다.”라고 말 할 수 있다. 사오정이 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10억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는 20억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후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젊을 때,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벌어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일생을 돈 버는 선수가 되어 돈벌기에 올인하는 삶을 살았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허()와 무()일 것이다.

 

정년이 되어서 밖에 나오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된다. 직장 다닐 때에는 직위와 지위가 있어서 자아와 동일시 했을지 모르지만 밖에 나오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그래서 정년백수가 되었을 때 허망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곳에 머물지 말라고 말한다. 안락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야 함을 말한다. 그것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정년백수보다는 중년백수가 더 낫고, 중년백수보다는 청년백수가 더 낫다고 말한다. 백수가 되면 굶어 죽을까? 그럴 염려는 없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백수로 살다가 굶어 죽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굶는다고 하면 그대로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다. 사회가 가면 갈수록 공동소유가 되기 때문에 정규직에 목숨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돈 부자가 되기 보다는 시간 부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 철철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집에서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가출하라는 것은 아니다. 백수라 하여 집에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만 뜨면 밖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밖에 나가면 길 위에 서 있게 될 것이다. 그때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공동체생활을 하는 것이다. 공동체 생활에서 배우는 것이다.

 

셋이서 길을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배울 만한 사람이 있다. 이를 사우(師友)라고 한다. 스승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친구일까? 이는 부처님이 이러한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한다.”(S3.18)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길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이는 자신만의 세계 또는 가족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 말라는 말과 같다. 그래서 고용에 대한 환상, 돈에 대한 환상, 스위트홈에 대한 환상을 깨라고 말한다. 안락한 농경민과 같은 삶보다는 활동적인 유목민(nomad) 같은 삶이 더 나음을 말한다. 집 밖으로 나가서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2020-10-2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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