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선연이 되고자
부고를 받았다. 처음에는 그의 부모중의 한사람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그사람이었다. 생업으로 만난 사람이다. 고객 중의 한사람인 것이다.
그는 왜 죽었을까? 내용을 알 수 없다. 단지 언제 어느 때 사망했다는 글만 단체카톡방에 쓰여 있다. 보낸 이의 이름을 보니 항렬이 같아서 형이나 동생인 듯하다. 아마 핸드폰 주소록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60명가량 된다. 인연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임시단체카톡방을 만들어 부고 사실을 알린 것이다.
그의 일을 해 준 적이 있다. 아마 삼사년 된 것 같다. 그는 회사 다니다가 독립했다. 독립해서 처음 맡긴 일이다. 사무실까지 찾아왔었다. 그는 전형적인 하드웨어 개발자였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였다. 상당히 유능한 회로설계자였던 것 같다.
꼼꼼히 챙기는 것을 보고서 일을 야무지게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력과 열정, 그리고 겸손함까지 갖추어서 사업을 하면 크게 성공할 것 같이 보였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싸게 견적 냈다. 그러나 그 이후 소식이 없었다. 그와의 만남에 대해 블로그에 기록해 놓은 바 있다.
고객은 대게 인터넷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어온다. 두 개의 포털사이트에 키워드 광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도 블로그 글을 보고서 알려 왔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 영향을 준 것이다. 종종 생업에 대한 글도 올렸는데 이를 보고서 전화한 것이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전화를 한 것이다. 이런 케이스는 대단히 희유하다. 그런데 사망 소식이라니!
여러 죽음이 있다. 가장 슬픈 것은 젊은 사람이 죽었을 때이다. 나이 들어 살만큼 살다 죽으면 그다지 슬프지 않다.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죽었을 때는 아쉽고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든다. 사고사일수도 있고 병사일수도 있다. 자연사가 아니어서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사이든 아니든 어느 경우이든지 죽음소식을 접하면 숙연해진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기마련이다. 생겨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인 것이다. 다만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하여 좋은 죽음도 있고 좋지 않은 죽음도 있다. 자신과 이웃과 사회에 이익 되는 삶을 살았다면 “그사람 참 아깝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사회에도 도움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면, 더구나 피해를 주고 살았다면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어떤 이는 “그놈 참 잘 죽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죽음이든지 죽음 앞에는 숙연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도 눈을 감으면 침묵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다. 누군가 그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는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능하면 아름다운 기억이면 좋을 것이다. 좋은 기억이든 좋지 않은 기억이든 다음 생에 영향을 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현생에서 만난 사람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행위를 하면 과보로 나타난다. 그것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업이 익으면, 조건이 맞으면 과보로 나타날 것이다. 만남은 과거 은인일수도 있고 원수일수도 있다. 얽히고 설킨 인과관계가 현재 나타난 것이다.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가능하면 선연이 되어야 한다. 설령 악연이라도 선연으로 바꾸어야 한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부고장에 계좌번호가 찍혀 있다. 가보지는 못하지만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 했다. 스마트폰으로 일정액을 이체했다. 그리고 주소록에서 이름을 지웠다. 그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기억은 남아 있다.
2020-10-2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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