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非法)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서
생애 열다섯 번째 책이 나왔다. 이름하여 ‘한국불교대계 2016’이다. 2016년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앞으로 2017년과 2018년의 글을 묶어 놓은 책이 나올 것이다. 한국불교백년대계를 생각하면서 쓴 글이다.
책은 모두 51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이슈가 있을 때 그날 그날 쓴 것을 모은 것이다. 모두 310페이지가량 된다.
한국불교대계, 보통불자가 이런 거창한 말을 써도 되는 것일까? 이는 블로거의 커밍아웃과 관련이 있다. 집과 사무실만 왔다갔다 하다가 재가불교활동에 발을 들여 놓고 나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는 재가불교활동한 것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글은 기존 종단권력에 대한 비판 글로 가득하다. 세칭 ‘권승’이라 일컫는 제도권 불교에 들어가지 않고, 권승들과 대척점에 있는 그룹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재가불교활동가들은 잘 몰랐다. 종단권력에 저항하는 허정스님을 따라 참여한 것이 재가불교활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불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알았다.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자승스님이 총무원장이 되고 나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종단권력에 대해 그다지 비판적이지 않았다. 종단권력에 대하여 잘 모른 것이 큰 이유라고 본다.
한국불교에 실망한 결정적 사건
한국불교에 실망한 결정적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적광스님을 납치, 감금, 폭행 사건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 “이건 아닙니다” 적광스님의 절규와 강제환속’(2013-08-23)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글에서 “이 사건으로 인하여 조계종에 대하여 희망을 버렸다. 이번 납치, 감금, 린치 사건은 작년 승려도박 사건 보다 더 엄청난 사건으로서 조계종의 몰락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은처, 도박, 횡령, 성폭행 등으로 얼룩진 한국불교가 추락하고 있음을 말한다. 적광스님이 끌려 가면서 “이건 아닙니다”라는 절규가 마치 한국불교의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다.”라고 쎴다.
한국불교에 희망이 있을까? 적광스님 폭행사건을 보고서 “조계종에 대하여 희망을 버렸다.”라고 글을 썼다. 이는 한국불교에 희망을 버린 것과 같다. 다른 말로 한국불교에 절망한 것이다. 권승들의 실상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국불교가 얼마나 썩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후 분노의 글을 쓰게 되었다.
백인대중공사에서
적광스님 폭행사건을 보고서 불교현실에 적극 참여했다.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2016년 허정스님을 따라 사부대중 백인대중공사에 참여하고 나서부터이다. 종단에서 주최한 것이긴 하지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멍석을 깔아 준 것 같았다. 그러나 골수 재가불교활동가들은 어용이라 하여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불교계에서 2016년은 총무원장 선거가 큰 이슈였다. 세속의 기준으로 본다면 찻잔속의 태풍이고 그들만의 리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무언가 바꾸어 볼 수 있는 찬스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제도권에서 멍석을 깔아 준 백인대중공사에서 직선제를 관철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허정스님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사람들이 그랬다.
재가불교활동은 2016년 백인대중공사에 참여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블로그에 글만 쓰다가 커밍아웃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몰랐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래 전부터 활동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재가불교활동가들을 보면 70년대 대불련 활동을 한 사람들도 있었고,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에 비하며 블로거의 커밍아웃은 사회초년생이나 다름없었다.
불교계 실상을 알면 알수록
대불련활동도 한 적도 없고 불교신행 활동을 한 적도 없었다. 나이가 들어 삶이 뜻대로 되지 않자 인생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사십대 중반에 도심포교당을 찾아 간 것이 불교와 인연의 시작이다. 물론 중학교 다닐 때 조계종 종립중학교에 배정 되어 다닌 것이 불교와의 인연이라면 인연의 시작일 것이다. 그러나 정식적으로 불자가 된 것은 2004년의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와의 인연은 비교적 짧은 편이다.
불교의 현실에 대하여 잘 몰랐다. 커밍아웃을 하기 이전 까지만 해도 스님들은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스님들은 아프지도 않은 사람들인 줄 알았다. 어떤 이는 더 나아가 비구니 스님들은 생리도 하지 않은 줄 알았다고 한다. 이런 불교현실에 대한 무지는 차츰 실상을 알게 되자 실망으로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글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교계신문에서는 이를 호도했다.
언론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요즘 언론에 나오는 이야기를 백프로 다 믿는다고 말하면 ‘순진하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더 심하면 ‘어리석다’라는 말을 듣는다.
언론도 이익을 내야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편향될 수밖에 없다. 불교계 언론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종단에서 운영하는 기관지뿐만 아니라 종단의 지원을 받는 신문이 어용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 조중동 같은 신문이 불교계에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불교계 실상을 알면 알수록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번 알게 되자 이를 쓰지 않고 서는 배기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통해서 실상을 알리고자 했다. 이런 글쓰기에 대한 비판도 있다. 교계에서 일어난 일을 굳이 외부로 알리느냐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대승보살계에서도 스님들의 허물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굳이 알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참회하고 초심으로 돌아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능하지 않음을 알았다.
보통불자가 생각하는 한국불교백년대계
한국불교는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방법은 외부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만의 리그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이것이 2017년과 2018년 두 해 동안 불교계에 일어났던 대폭발이었다. 그 전단계가 2016년에 있었던 총무원장 직선제 쟁취에 대한 투쟁이었다.
한국불교백년대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이다. 보통불자가 생각하는 한국불교대계는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서울백인대중공사 3분 발언에서 발언했다. 그중 핵심은 다음과 같다.
“한국불교는 이원화 되어야 합니다. 승단과 교단으로 이원화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승단은 비구와 비구니 이부대중의 승가를 말합니다. 교단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사부대중 모임을 말합니다. 비구와 비구니의 이부대중승단에서는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 전념해야 합니다. 반면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와 우바이의 사부대중 교단에서는 종단의 운영, 행사, 교육 등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사부대중의 교단에서 재가불자가 운영을 하고 출가자는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부대중교단일 것입니다.” (7. 승단과 교단으로 분리 되어야 하는 이유, 2016-04-19)
이것이 보통불자가 생각하는 한국불교백년대계 핵심이다. 현재와 같은 체제로는 가망성이 없어서 체제를 바꾸자는 것이다. 마치 헌법을 바꾸듯이 근본 틀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래서 사부대중의 교단과 이부대중의 승단으로 이원화를 시키자는 것이다.
사부대중의 교단은 재가의 전문가들이 운영하고 승가는 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부대중의 승단은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이것이 블로거가 생각하는 한국불교대계에 대한 것이다.
목차를 보면
힘 없는 자가 가진 것은 입 밖에 없다. 입이 유일한 무기인 것이다. 힘 없는 블로는 글 밖에 없다. 글로서 세상에 외친 것이다. 2016년에 쓴 글이 그렇다. 어떻게 하면 불교를 그 옛날처럼 중흥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글이다. 그래서 경전을 근거로 생각한 것을 썼다. 2016년 한국불교대계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16년 한국불교대계 목차
1. 사부대중공동체 교단창립을 위하여
2. 사부대중100인 대중공사 시즌2에 참여하고
3. 총무원장을 제비뽑기로?
4. 유신헌법 같은 염화미소법
5. 마곡사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열린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6. 서울 100인 대중공사 3분 발언
7. 승단과 교단으로 분리 되어야 하는 이유
8. 한국불교가 중흥되기를
9. 불광사 사부대중공사 종합토론
10. 총무원장직선제는 명분이 있어야
11. 대중공사 네 번 참여하고
12. 불교인의 현실참여에 대하여
13. 이 시대의 대작불사
14. 자승총무원장스님께 드리는 편지
15. 정의로운 사부대중공동체를 위하여
16.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17. 바스락홀 민언련 토론회에 참석하고
18. 종회의원 성화스님과 차담
19. 불교에서 말하는 다수결의 원칙과 승가화합
20. 이상적인 불교공동체
21. 자자와 포살이 있는 여법한 승가공동체
22. 중앙시장에서 본 탁발승
23. 총무원장직선제는 시대적 소명
24. 스님 우월주의는 극복되어야
25. 공멸로 이끄는 조직침묵
26. 스님 보다 더 수행자다운 재가수행자
27. 비판속에 한국불교는 성장한다
28. 출가자의 재가자 비판은 넌센스
29. 불교리더들의 게으름과 무능력
30. 가르침대로 살면 불자답게 사는 것
31. 보통불자가 바라는 한국불교개혁
32. 언제까지 기독교따라하기 해야하나
33. 기복을 허용하되 악용은 안된다고?
34.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불교
35. 불자들을 겁박하는 스님의 고압적 발언
36. 여성차별을 말한다면 그는 악마
37. 국민을 화나게 하는 문화재관람료
38. 용주사비대위 항쟁 일년
39. 어떻게 해야 기복을 극복할 수 있을까?
40.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41. 세상이 나와 싸운다
42. 공업론과 자격론에 대하여
43. 힘 있는 자가 인내와 양보를
44. 입장료수입으로 연명하는 불교
45. 국민대통합위원장에 목사를
46. 한국불교는 제로베이스에서
47. 종교인구총조사 데드크로스 발생을 보며
48. 보상금을 기대하는 저주의 기도
49. 불자수는 왜 대폭 감소 했을까?
51. 한국불교 현실의 진단과 과제 토론회
큰 절에 가면 사천왕상을 볼 수 있다. 네 기의 상을 보면 모두 우락부락 무섭게 표현해 놓았다. 그러나 한국의 사천왕상은 약간 해학적이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상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천왕상 아래를 보면 더 무서운 장면이 있다. 사천왕이 악귀를 발로 짓밟아 뭉게는 장면이다.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악귀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 종단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다. 겉모습은 승려의 모습이다. 삭발을 하고 회색승복을 입었으나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이런 승려를 반승반속(半僧半俗)이라고 볼 수 있다.
비법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서
현재 한국불교는 반승반속이 장악하고 있다. 이는 비법이 득세하고 있음을 말한다. 정법이 힘을 쓰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하는 스님들은 주변으로 밀려 나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 이런 사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사명감으로 글을 쓴 것이다.
“세상에 많은 위험이
다가오는 미래에 나타나리니,
잘 설해진 가르침을
어리석은 자들이 오염시키리라.”(Thag.954)
“덕성이 열악함에도
두려움 없이 떠드는
수다스럽고 배운 것이 없는 자들이
참모임에서 힘을 얻게 되리라.”(Thag.955)
“덕성이 갖추어졌고
의취에 맞게 말하고
부끄러움을 알고, 욕망을 여읜 님들은
참모임에서 힘을 잃게 되리라.”(Thag.956)
“혼탁을 여의지 못하고
가사를 걸치고자 한다면,
자제와 진실이 없는 것이니
가사를 입을 자격조차 없다.”(Thag.969)
2020-11-0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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