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털리지 않으려면
관광지에서 본 것이다. 투박하게 생긴 남자는 빨리가자고 화를 낸다. 관광지에서 무엇이 그리 급한 것일까? 사람구경도 하며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빨리 가자고 성화이다.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가졌음에도 이를 즐기지 못하고 보채는 것은 결핍의 세월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아랫사람은 동작이 빨라야 한다. 동작이 굼뜨면 야단 맞는다. 아랫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한다. 눈치코치가 없으면 불이익 받는다. 아랫사람은 늘 바쁘다. 밥도 빨리 먹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밥을 빨리 먹고 마당 쓸 일 있습니까?”라는 말이 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은 빠릿빠릿해야 한다. 그라고 눈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존하기 쉽다. 평생 이런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여유는 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관광지에서도 빠릿빠릿하게 걷는 것이다.
늘 바쁘게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좀처럼 여유를 가지기 힘들다. 밥을 먹을 때도 정신없이 넣기에 바쁘다. 그렇게 빨리 먹고 마당 쓸 일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느리면 뒤쳐지고 탈락한다는 생각에 지배를 받아서 일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빠른 것은 미덕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속도를 강조한다. 회의 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빨리빨리”라는 말이다. 이 말은 해외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중국현지공장에서도 이 말을 자주 쓰는 모양이다. 중국인 중간관리자가 한국사람에게 배운 말은 “빨리빨리”였다고 한다. 한국의 관리자들은 “빨리빨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도 빨리빨리 벌어야 한다. 회사 다닐 때 늘 생각한 것은 노후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 현재의 삶이 불안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노후자금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축으로 노후자금이 달성되기 힘들다. 부동산투기만한 것이 없다. 그때 당시는 성장의 시대였기 때문에 사 놓으면 올랐다. 더 머리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은 종자돈이 생기면 갭투자도 했다. 아파트 한 채만 있으면 중산층의 꿈이 달성될 수 있는 시대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 부족했던 것 같다. 주식에 손을 댄 것이다. 그러나 주식으로 재미 보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노후자금으로 일정금액을 확보해 놓으면 정말 노후가 보장되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고 있다. 노후자금을 마련해 놓았다고 해서 노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자녀리스크가 있다. 애써 어렵게 노후자금을 마련해 놓았지만 자녀에게 들어감을 말한다. 또 돈냄새를 맡은 자들이 접근한다.
이래저래 털리게 되어 있다. 한평생 오로지 앞만 보며 경주마처럼 달려왔지만 자신의 생명과 같은 재산이 털렸을 때 허망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노후 안락한 삶을 위하여 돈벌기에 올인하는 삶은 위험이 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화폐를 위한 삶 또는 소유를 위한 삶에서 비켜 가는 것이다.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늘 바삐 움직이는 삶 보다는 되돌아 보는 삶이다. 경험상 글쓰기만한 것이 없다.
빨리빨리 사는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힘들다. 돈벌기에 올인 하는 삶을 살다 보면 휴식은 수동적이기 쉽다. 이에 대하여 ‘일하지 않는 즐거움’의 저자 어니 젤린스키는 “TV시청, 술이나 마약에 취하기, 습관적으로 먹어대기, 드라이브, 쇼핑, 돈쓰기, 도박, 운동경기관람”이라고 했다. 이런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수동적 여가를 즐긴다. 일하는데 너무 힘을 쓰다 보니 여가가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적극적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다. 어니 젤린스키에 따르면 “글쓰기, 독서, 운동, 공원산책, 그림그리기, 악기연주, 춤추기, 강습 받기”와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이러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다.
수동적 여가의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TV시청일 것이다. 이는 자신의 삶이 아니다. 남이 하는 것을 보고 즐기는 것이다. 늘 시간에 쫓기고 바쁘게 살다 보면 TV시청, 식도락, 음주와 같은 수동적 여가를 즐기기 쉽다. 이런 여가에 큰 만족이나 성취감은 없다. 반면 자신의 노력으로 여가시간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못지 않게 여가활동을 하는 것이다. 글쓰기도 그 중의 하나이다.
한때 부자가 되고자 했다. 특히 노후자금을 만들고자 했다. 회사 다녔을 때의 일이다. 그것도 이삼십대었을 때의 일이다. 젊은 사람이 아직 오지도 않은 노후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안심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직장에서 쫓겨나면 인생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노년이 되었을 때 어느 정도 재산이 있어야 행복할까? 그러나 그때까지 살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설령 그때 어느 정도 재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털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 재물은 불이나 물이나 왕이나 도둑이나 원하지 않는 상속자에 의해서 약탈될 수 있는 것입니다.”(A7.7)라고 했다.
누군가 어떤 식으로든지 나의 재물을 빼앗아 갈 것이다. 누군가 빼앗아 가지 않더라도 병원비로 다 나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불, 물, 왕(나라), 도둑, 악의적 상속자라는 오적(五賊)에 병원 하나를 더 추가하여 육적(六賊)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평생 재산형성에 올인하며 수동적 여가를 즐기며 산다면 허망한 것이다.
좀더 여유롭게 살아야 한다. 경제적 여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적극적인 삶을 말한다. 고립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어울려 살아야 한다.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집에 있어서는 안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만남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순 없다. 좀 더 의미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자신도 이익되게 하고 타인도 이익되게 하는 일이다. 이에 글쓰기만한 것이 없다. 빨리빨리 사는 것도 좋지만 때로 멈추는 삶도 필요하다. 멈추어서 관찰하면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노후자금을 많이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수행자로 사는 것이다. 수행공동체에서 살면 더 좋을 것이다. 노후는 돈이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수행이 노후를 보장한다. 글쓰기도 수행이기 때문에 이미 노후대책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털리지 않는 재물을 갖는 것이다.
“믿음의 재물, 계행의 재물,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재물,
배움의 재물, 보시의 재물,
일곱 번째로 지혜의 재물이 있네.
여인이나 남자에게
이러한 재물이 있다면,
그는 빈궁하지 않은 자이고
그 생활은 곤궁하지 않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믿음과 계행,
청정한 신뢰와 진리에 대한 봄,
부처님 가르침에 새김을 확립한다네.”(A7.6)
2020-11-0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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