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학인(學人)은 굶지 않는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1. 6. 12:47

학인(學人)은 굶지 않는다

 

 

요즘 동사무소는 옛날 동사무소가 아니다. 대개 4층짜리 단독건물로 되어 있다. 새로 지은 것이 많다. 예전의 낡은 건물을 허물어 버리고 그 자리에 지하 주차장과 북카페, 강당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종종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만안구청을 중심으로 하여 반경 약 3백미터 정도가 산책영역이다. 머리도 식힐 겸 바람도 쐴 겸 하여 나간다. 오늘은 안양문예회관 앞으로 가 보았다. 지금은 안양아트센터로 이름이 바뀌었다.

 

같은 말이라도 한자어를 쓰면 고상하다. 그런데 요즘은 영어식 이름을 지으면 더 고상해 보이나 보다. 예전에 동사무소라고 했으나 요즘은 행정복지센터라고 한다. 어떤 이는 줄여서 행복센터라고 한다.

 

 

안양아트센터 바로 옆에 작은 길 하나 건너 안양8동행정복지센터가 있다. 기존 자리에 있던 2층짜리 낡은 건물을 허물어 버리고 그 자리에 지하주차장을 포함하여 4층짜리 건물이 새로 신축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동사무소 건축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안내판을 보니 특이하게도 주민자치위원회실이 있다. 이는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다.

 

주민자치위원회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주민자치위원회는 동 단위의 풀뿌리 주민자치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실험임을 알 수 있다. 위계조직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는 풀뿌리적 관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2010년 지방자치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이 마련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세상은 자꾸 변한다.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있지 않는다. 제도 역시 변한다. 동사무소가 행정복지센터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주민자치라는 제도가 시행되려 하고 있다. 오늘날 행복센터는 단지 행정업무만 보는 곳이 아니다. 주민들을 위한 각종 강습이 좋은 예이다. 노인들을 위한 쉼터로도 활용되고 있다. 멋진 건물에 걸맞는 제도가 정착되어 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행복센터 옆에 장이 섰다. 지나 칠 수 없다. 명칭을 보니 안양8동 기부의 날 행사라고 되어 있다. 안양8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주관하는 것이다. 기부의 날이기 때문에 기부하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번 터치하면 3천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주고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요즘 방송을 보면 주세요라는 공익광고를 많이 본다. 주요 공중파에서는 볼 수 없지만 교육방송과 케이블 방송에서는 빈번하게 나온다. 해외 구호단체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굶주림에 고통스러워하는 비참한 아이들에 대한 동영상을 올려 놓고 만원 또는 이만원을 기부하라는 것이다. 말끝마다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귀에 들어온다.

 

국제구호단체의 기부 하소연을 보면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 매번 똑 같은 영상을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도 광고를 밑도 끝도 없이 하면 마치앵벌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그런 것일까?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일방적 기부 보다는 받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바자회 같은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이곳에도 바자회와 유사한 주고받기가 열렸다. 먹거리를 파는 것이다. 주로 농산물이 많다. 꿀고구마, 미역, 다시마, 황태채, 딸기잼, , 새우젓, 가래떡 같은 것이다.

 

구경만 할 수 없다.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물건을 팔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미역을 샀다. 한봉다리에 7천원이다. 가격도 적당하다. 오늘 저녁 먹을 때 끓여 먹어야 겠다.

 

 

방송에 비참한 모습을 한 국제구호단체의 공익광고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매월 만원, 이만원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길가 노점 좌판대에서 채소 등 먹거리를 팔아 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기부를 한다는 것은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기부할 마음이 생겨나야 기부하는 것이다. 기부한 돈이 바르게 쓰여 진다면 만원이 아니라 십만원도 기부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구호단체에 기부하면 어떻게 쓰여지는지 잘 모른다. 최근에는 직원들 인건비나 단체 운영비로 대부분 쓰여진다는 소식도 들었다.

 

불자들은 무주상보시를 해야 한다. 티 내지 말고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받는 사람이 청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부해야 한다. 수행을 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는 도와주게끔 되어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고미숙선생의 강연을 들었다. 정목스님이 진행하는 유나방송에 출연하여 이야기한 것이다. 고미숙선생에 따르면 20대에서 80대까지 공동체 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수행공동체 감이당에는 먹을 것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공부하는 사람들에는 공짜로 주는 것임을 말한다.

 

누군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면 도와주고자 한다. 용돈도 주면서 격려하는 것이다. 고시공부를 하면 누군가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수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행을 잘 지키며 정진하는 수행자가 있다면 누군가 도와줄 것이다. 이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공부하는 사람, 수행자는 굶지 않는다.”라고. 학인은 굶지 않는다.

 

 

2020-11-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