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페이스북친구를 오프라인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1. 10. 07:46

페이스북친구를 오프라인에서


자주 만나면 익숙하다. 한번 보았을 때와 두 번 보았을 때 다르다. 세 번은 보아야 익숙해진다. 이름과 얼굴이 매칭 되려면 더 자주 보아야 한다. 특히 오프라인에서 그렇다.

블친, 카친, 페친이 있다. 줄여서 말한 것이다. 요즘 두 글자로 줄여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암호문처럼 보인다. 검색해야 알 수 있는 말이다. 블로그친구, 카카오친구, 페이스북친구를 줄인 말이다. 온라인 친구를 말한다.

두 개의 공간에 살고 있다.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다. 가상공간을 사이버공간이라고도 한다. 가상공간은 인터넷시대가 되면서 새로 창조된 공간을 말한다. 특히 스마트폰시대에 사람들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살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가상이 더 리얼할 때가 있다.

현실에도 친구가 있고 가상에도 친구가 있다. 현실친구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주로 학교친구가 이에 해당된다. 만난지 40년 되었지만 일년에 한 두 차례가 고작이다. 경조사 때나 연말 송년회 때 만난다. 카톡방이 있지만 대부분 침묵하기 때문에 만남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블로그친구가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친구들을 말한다. 오프라인에서도 종종 만난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적극적인 행위에 따른 것이다. 자주 만나나보니 40년 지기 보다 더 익숙하다. 주로 불교친구들이다. 불교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카카오친구, 카톡친구를 말한다. 실시간 통신의 대명사 카톡을 통해서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대개 안면 있는 사람들의 소통의 장이 단체카톡방이다. 그런데 누구나 초대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 특히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을 때이다. 그러나 대부분 침묵한다.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 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페이스북친구를 줄여서 페친이라 한다. 본래 안면 있는 사람들이 대상이지만 가상공간에서는 범위가 확대되었다. 자신의 견해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페친이 어쩌면 진실한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매일 보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러 번 본다. 특히 좋아요추천과 댓글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이는 페이스북에 대하여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글과 사진과 동영상으로 소통하다 보니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매일 만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콘텐츠와 실시간소통이 결합되었을 때 현실 못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모두 다 알 수 없다. 불리한 것은 감추고 유리한 것은 드러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자랑질의 장이 되는가 하면 관심종자의 장이 되기도 한다.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다. 이런 글쓰기에 대하여 스스로 의무적 글쓰기라고 말한다. 십년 이상 쓰다 보니 이제 생활화되었다. 밥 먹는 것과 똑같이 일상이 된 것이다. 습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이든지 글쓰기의 대상이 된다. 강한 대상이 그것이다. 마치 강한대상을 만났을 때 바왕가가 동요하는 것과 같다. 그날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글쓰기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즐거워도 쓰고 괴로워도 쓴다. 쓰고 나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린다.

블로그는 오래 되었다. 2006년 부터 썼으니 14년 된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4년 밖에 되지 않았다. 장단점이 있다. 블로그는 암자처럼 고요하고 페이스북은 시장처럼 번잡하다. 블로그는 사적 공간이고 페이스북은 공적영역과 같다. 가장 큰 차이는 실시간 소통일 것이다. 블로그의 장점과 카톡의 장점을 모아 놓은 것이 페이스북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페이스북에 푹 빠져 있다.

지난 일요일 담마위하라 까티나축제 때 두 명의 친구를 만났다. 한명은 블친이고 또 한명은 페친이다. 블친은 오래 되었다. 십년가량 된다. 처음 글을 통해 소통했으나 오프라인 모임을 갖게 되면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번 까티나축제 때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공주에서 온 S선생은 영지버섯을 한박스 주었다. 이전에도 스스로 산에서 채취한 영지를 택배로 보내 주기도 했다. 답례로서 꿀을 선물했다.

페이스북친구를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처음 있는 일이다. 송성영선생이다. 페이스북에 항암 이야기를 종종 올리고 있는 페친이다. 요즘은 오마이뉴스에 항암자유치유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페이스북으로 보았을 때 수염이 허였게 나서 마치 도인처럼 보인다. 페이스북에서 자주 보니 얼굴이 익숙하다.

아산 마하위하라에서 까티나가사공양 법요식이 열리던 날 일찍 집을 나섰다. 도착해 보니 한시간 반 전에 온 것이다. 시간이 남아서 법당에 앉아 짤막하게 글을 썼다. 페이스북에 쓴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송선생은 그 글을 보고서 찾아온 것이다. 부근에 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보러 왔다는 것이다. 한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페이스북에 올린 짤막한 글을 보고서 무작정 왔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관록 있어 보이고 중후한 느낌의 노신사가 인사하길레 엉겁결에 같이 인사했다. 갑자기 인사를 받았을 때 당황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체했을 때 어리둥절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상황을 파악하는데 몇 초 걸리지 않았다.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그분이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분과 함께 온 아들을 보고 알았다. 장발에 배우처럼 잘생긴 얼굴은 이미 페이스북에서 여러 번 보았다.

 


자주보면 익숙하다. 페이스북에서 자주 접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얼굴을 공개하기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글을 올리는 사람이 익숙하다. 사진도 그렇고 동영상도 그렇다. 글이든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끊임없이 올렸을 때 노출된다. 그리고 자주 접하면 익숙해진다. 오프라인에서 처음 보았음에도 마치 40년 지기를 본 것처럼 익숙한 것이다. 송선생도 그랬다.

송성영선생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항암치료에 대한 것이다. 글을 통해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술술 말이 나왔다. 완전 초면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입력된 상태에서 말하기 때문이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오늘 건강하다고 내일 건강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에 지은 행위가 크게 작용한다. 조건이 맞아 떨어졌을 때 과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업체 담당자 전화를 받고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실수한 것이다. 벌써 그 담당자 일에 대해 두 번째이다. 면목이 없었다. 잘 살피지 않은 것이 큰 이유이다. 이럴 때는 재빨리 수습해야 한다.

 

이미 손실은 발생했다. 신용까지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직접 뛰어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돌려 놓아야 한다.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딸뻘 되는 담당자에게 두 번째 실수했네요. 한번도 실수하면 아웃되겠지요.”라고 말 했다.

사람들은 일이 벌어지기 까지는 희희낙락(嬉嬉樂樂)한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잘못된 것을 알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인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곰곰이 살피지 않은 것이 크다. 그래서 늘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하나 보다. 늘 주의 기울이면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불가항력적인 것도 있다.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것을 말한다. 시간 지나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다. 생노병사가 그렇다.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도 그렇다.

누구나 병이 생길 수 있다. 원증회고,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남이다. 지금 건강하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하나 정도는 지병을 가지고 있다. 병은 고칠 수 있다. 완치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 병을 적대시하면 안된다.

 

동의보감과 같은 동양의학에서는 병을 친구처럼, 손님처럼 다루라고 했다. 병이 찾아왔다고 해서 문전박대하듯이 쫓아 버릴 것이 아니라 병과 동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게 사는 것이다. 송선생과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선생과 약 일시십분 정도 짧은 만남을 가졌다. 송선생은 건강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 있을 수 없어서 곧바로 떠났다. 선생은 페이스북에 매일 글을 올리는 사람을 보고자 일부러 시간 내서 찾아 온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친구가 오프라인친구로 되는 것 같다. 미천한 보통불자에게는 과분한 것이다.

친구란 무엇일까? 디가니까야 31번 경에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요지는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친구이다. 또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친구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면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가릴 수 없다.

 

친구사이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고 승속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친구중의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비밀을 말할 수 있고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친구를 말한다. 또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친구를 베스트프렌드라 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절친이다.

지인은 많아도 친구는 드물다. 친구는 많아도 절친은 드물다. 분명한 사실은 온라인친구도 오프라인친구 못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블로그친구를 통해서 알고 있다. 어쩌면 40년 지기 학교친구 보다 더 가깝다. 그것은 연민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친구도 친구라는 사실이다. 나의 모든 것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페친을 오프에서 만났을 때 40년 지기 못지 않다. 송성영선생이 그런 것 같다.

 

 

2020-11-1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