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이 오면
오늘은 11월 20일이다. 특별한 날은 아니다.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다. 그러나 누구에겐가는 의미 있는 날이 될지 모른다.
왜 11월 20일가? 그것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개인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 10여년 글쓰기 하면서 관찰한 것이 있다. 대개 11월 20일을 전후하여 낙엽이 진다. 특히 은행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
11월은 무색무취의 계절이다. 명절도 없고 국경일도 없다. 각달마다 특징이 있지만 11월은 아무리 발견하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국적불명의 서양명절은 예외일 것이다.
추풍낙엽의 계절이다. 생명이 다한 잎파리가 간신히 매달려 있다. 바람 한번 불면 맥없이 떨어진다. 비바람을 동반하면 우수수 떨어진다. 대개 11월 20일을 전후하여 나목이 된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11월에 내리는 비는 죽음의 비나 다름없다. 얼마 남지 않은 잎파리마저 몽땅 떨어 뜨려 버린다. 바깥에 세워 둔 차창에는 낙엽으로 수북하다. 추락의 계절, 죽음의 계절이 온 것이다.
11월 20일이 되면 세상이 바뀐다. 거리 가로수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11월의 이미지는 회색이다. 인생에 있어서 말년과 같다. 수명을 다한 자가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이제 낙엽이 지면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야 할까? 새싹 나는 봄은 멀었다. 그 사이에 혹독하게 추운 계절을 거쳐야 한다. 11월 20일은 춥고 외롭고 고독한 시기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과 같다.
11월 20일은 마음이 헛헛해지는 시기이다. 잿빛 하늘만큼이나 공허한 마음이 된다. 이럴 때 무슨 희망을 가져야 할까? 몹쓸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노인의 심정이 이럴 것이다.
이제 11월 20일이 되었으니 급격하게 추워질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은 추위에 떨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자연은 순환한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 인생도 자연의 원리를 따른다. 청춘의 봄이 지나면 장년의 여름이 온다. 중년의 가을이 지나면 노년의 겨울이 온다. 지금 11월 20일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딱 그 지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죽음의 계절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인생의 끝자락으로 가고 있지만 실감 나지 않는다. 이 안락한 생활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자연은 극적인 변화를 알려줌으로써 깨우쳐 주려 하지만 거부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오늘도 감각을 즐기며 잊고 살고자 하는 것 같다.
하루하루 해가 뜨고 지다보니 11월 20일이 되었다. 지금은 새벽 4시 대이다. 날이 새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밤사이 세상은 변해 있을 것이다. 어제 내린 비로 앙상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하루 밤 자고 났더니 세상이 변한 것이다. 매년 꼭 이맘 때 11월 20일날 그랬다.
죽음의 계절에 희망을 가져 본다. 앙상한 계절을 보상이라 하듯이 눈이 내릴 것이다. 그래도 눈꽃이라도 피면 세상은 좀 더 따스해 보일 것이다. 혹독한 시기를 겪고 나면 새싹이 나고 꽃이 필 것이다. 그때까지 참아내야 한다.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면 따스한 커피를 마셔야 한다. 진한 원두향과 함께 고전을 펼쳐야 한다. 담마빠다, 숫따니빠따, 이띠붓따까, 우다나, 테라가타, 테리가타, 그리고 상윳따 1권 사하가타를 펼치면 근심과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또 한번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11월 20일이 되어도 안심이다.
2020-11-2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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