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피는 꽃
홀로 핀 꽃을 보았다. 고래바위 계곡 한켠에 핀 나리꽃을 보았다. 꽃은 매혹적이다. 주황색 꽃이다. 지나가다 눈에 걸린 것이다.
일요일 점심 때 계곡에 갔다. 올해 들어서 너댓번 된 것 같다. 지난 주에도 왔었다. 먹을 것을 싸와서 너럭바위에서 먹었다.
오늘이 하지라고 한다. 해가 가장 긴 날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내일 부터는 음기운이 힘을 받을 것이다. 양의 기운은 약해지고 음의 기운이 점차 강해질 때 인생의 후반부를 보는 것 같다.
양의 기운이 강할 때 생명 있는 것들은 부지런하다. 모든 것은 시기가 있다. 새들은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어미새는 알을 낳고 새끼를 친다. 새끼새는 어미새가 부지런히 날라다 준 먹이로 그야말로 폭발적 성장을 한다.
비상하려면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마침내 새끼새가 다 자라서 비상한다. 어미새도 역할을 다 했다. 어미새도 비상한 새도 미련 없이 어디론가 떠나 버린다. 빈 둥지만 남았다.
외딴 골짜기에 나리꽃이 하나 피었다. 숨어 있는 듯이 피었다. 꽃이 피어서 발견 되었다. 꽃이 피기 전에는 있는 줄조차 몰랐다. 꽃이 피어서 존재가 드러났다.
외딴집 오두막에 수행자가 살고 있다. 수행자는 누가 알아주건 말건 밤낮으로 정진했다. 어느 날 수행자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꽃이 피듯이 환해진 것이다.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찾아온다. 꽃이 피면 어떻게 왔는지 용케 찾아온다. 수행자가 방광 했을 때 사람들이 찾아온다. 법문을 듣고자 찾아왔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꽃을 피운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핀다. 고래바위계곡, 관양계곡에서 홀로 피는 꽃을 보았다. 오두막의 수행자도 꽃이 필 때가 있을 것이다.
2020-06-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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