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내지 말라고 하지만
금강경에서는 무주상보시 복덕을 강조하고 있다. 보시를 하되 티를 내지 말라는 것이다. 금강경이 한국불교 종단의 소의경전이 되다보니 스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상을 내지 말라고 말한다. 주었으되 “내가 주었다.”라는 아상(我相)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세속의 불자들은 윤회하는 삶을 살아 간다. 육도윤회하는 삶이다. 어떤 때는 공덕행이 되는 행위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악행이 되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뿐냐(puñña)와 빠빠(papa)로 설명된다. 반면 출세간에서 출세간적 삶을 지향하는 출가자들은 해탈과 열반을 지향하는 삶을 산다. 이런 삶은 댓가를 기대하는 공덕행(뿐냐)과는 다른 것이다. 출세간적 삶은 꾸살라(kusala)행이라 볼 수 있다. 십선행이 대표적이다.
세간에서의 정견이 다르고 출세간에서의 정견이 다르다. 세간적 정견은 업과 업의 과보를 인정하는 정견을 말한다. 업이 자신의 주인이고, 자신은 업의 상속자임을 아는 정견을 말한다. 이와 같은 세간적 정견은 윤회하는 삶 속에 적용된다. 그래서 공덕행(뿐냐)과 악행(빠빠)으로 설명된다. 출세간에서는 선행(꾸살라)과 불선행(아꾸살라)으로 설명된다.
세간에 살고 있다. 머리를 깍지 않았으므로 재가불자로 살고 있는 것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업이 있고 한가정의 가장으로서 삶을 살고 있다. 윤회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보시를 해도 티를 낸다. 주고서도 주었다는 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세간에서 공덕행에 대하여 과보를 기대하는 법문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세간적 정견과 출세간적 정견이 다름을 말한다.
세간적 정견에서는 업과 업의 과보를 인정하기 때문에 번뇌가 있는 삶이 된다. 사성제에서 고성제와 집성제가 세간적 삶에 해당된다. 그러나 출세간에서는 번뇌를 소멸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사성제에서 멸성제와 도성제를 실천하는 삶이 된다.
세간에서 삶은 번뇌가 있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육도를 윤회하는 삶에서 보시를 해도 과보를 바라는 공덕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티내지 않고 보시하라는 무주상보시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니까야에서 수없이 보시의 과보에 대해 설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시계생천(施戒生天)’을 들 수 있다.
시계생천의 가르침은, 보시하고 지계하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이다. 이는 다름아닌 공덕행(뿐냐)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래서 테라와다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인 라따나경(보배경, Sn2.1)을 보면,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님들이 있어, 참사람으로 칭찬받으니, 바른 길로 가신 님의 제자로서 공양받을 만하며, 그들에게 보시하면 크나큰 과보를 받습니다.”(Stn.227)라고 했다.
경에서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님들’은 사쌍팔배의 성자를 말한다. 이와 같은 성자는 ‘공덕의 밭(puññakkhetta: 福田)’이다. 보시공덕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가 따름을 말한다.
사쌍팔배의 성자에게 보시하면 크나큰 과보가 기대된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윤회하는 삶속에서 공덕행은 과보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헌금과는 다른 것이다. 주는 만큼 대가를 바라는 정치헌금은 악행에 해당된다.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복전에 보시하는 것은 미래 큰 과보가 기대되는 공덕행이 됨을 말한다. 이는 업과 업의 과보라는 부처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세간적 정견에 대하여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반조하는 ‘업자성정견(kammassakata-sammādiṭṭhi)’이라고 한다.
오늘 택배를 하나 발송 했다. 평소 존경하고 선생에게 보낸 것이다. 보내고 나서 “담마다사 이병욱입니다. 오늘 택배 하나 발송 했습니다. 씨디를 플레이 할 수 있는 씨디플레이어 입니다. 또 명상음악과 힐링음악 씨디도 함께 발송 했습니다. 특히 약사관정진언은 치유음악으로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렇게 존경하는 선생님께 보내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메세지를 날렸다.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은 티를 내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에 위배된다. 그러나 하루하루 의무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가능한 것이다.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다. 요즘은 블로그외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리기 때문에 티를 내게 되었다. 출세간적 삶을 산다면 이런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세간적 삶을 살다보니 티를 내게 되었다.
선물에 음악씨디가 있다. 그 중에 약사관정진언(Medicine Buddha Mantra)이 있다. 이미우이(Imee Ooi: 黃慧音) 음악으로 오리지널이다. 아픈 사람을 위한 치유음악이다. 그래서 약사관정진언(藥師灌頂眞言)이라고 한다. 듣고 있으면 차분해지고 기쁨이 솟는다. 반복적인 음악이 특장이다. 어떤 내용일까?
Namo Bhagavate Bhaiṣajya-guru-vaiḍūrya-prabha-rājāya
Tathāgatāya Arhate Samyak-saṃbuddhāya. Tadyathā:
OṂ BHAIṢAJYE, BHAIṢAJYE, BHAIṢAJYA-SAMUD-GATE SVĀHĀ.
나모 바가와떼 바이사쟈- 구루- 와이두-랴 쁘라바라-자-야
따-타가따-야 아르하떼 삼먁삼붓다-야 따디야타-
옴 바이사제 바이사제 바이사쟈 사뭇가떼 스와-하-
“약사유리광여래께 귀의 합니다.
가장높은 분, 완전한 분, 정등각자, 상서로운 분이시여!
그 약으로서,그 약으로서, 약효가 드러나게 하소서!”
약사관정진언은 짤막한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씨디는 재생하면 무한반복이기 때문에 짧은 게송은 무한반복된다. 중국계 말레이시아 불자가수가 현대음악으로 만든 것이다. 누구나 들으면 병이 치유될 듯하다.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vCPVxW01Y1A
2020-11-2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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