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암송

오늘은 빠알리팔정도경 외우기 시동 거는 날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1. 25. 10:58

 

오늘은 빠알리 팔정도경 외우기 시동 거는 날

 

 

오늘 새벽 갑자기 생각 난 것이 있다. 일찍 깼을 때 스마트폰 글 치는 것보다 암송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두 시대 또는 세시 대에 깨었을 때 다시 잠을 이루기 힘들다. 설령 눈을 붙인다고 해도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차라리 안자고 깨어 있는 것이 낫다. 이럴 때 경구외우기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새벽에 좌선을 해보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다. 행선을 해 보려고 해도 오래 가지 않는다. 시간을 보내는데 가장 좋은 것은 치는 것이다. 이제 몸의 장기나 다름 없는 스마트폰 자판을 치다 보면 여명이 밝아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폐해도 따른다. 작은 자판에 눈을 집중하다 보면 난시로 인하여 눈이 피로해진다. 이런 상태로 서너시간 치다 보면 눈이 몹시 피로하다. 그래서 대안으로 경구암송하기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난 8월 초 빤냐완따 스님과 약속한 것이 있다. 팔정도경(S45.8, 위방가경)을 빠알리어로 외우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점심약속도 약속이라고 했다. 하물며 스님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다. 오늘 새벽 그동안 미루고 미루어 왔던 빠알리팔정도경 외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오늘이 첫날이 될 것 같다.

 

암송의 맛을 알고

 

새벽이 되면 정신이 맑다. 마치. 파도가 그친 잔잔한 호수와도 같다. 그래서 산과 하늘과 구름이 반사될 것이다. 또 흙탕물이 가라 앉은 물과도 같다. 그래서 바닥에 자갈, 물고기 등이 보일 것이다. 새벽 정신이 그렇다. 그래서 어제 있었던 것이 잘 떠오른다. 눈을 감고 있으면 어제 읽었던 책 내용이 잘 드러난다. 정신이 맑을 때 외우면 더 잘 외워진다.

 

암송의 맛을 알고 있다. 주로 새벽에 외웠다. 장문의 경도 매일 한게송씩 외다 보면 어느 날 다 외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금강경도 그랬다.

 

금강경을 외운 것은 2004년 가을의 일이다. 그때 당시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했을 때이다. 그해 봄에 3개월 과정의 입문교육을 받았다. 졸업할 때 수계하고 법명을 받았다. 법명은 성공이었다. 영어로 석세스(success)의 의미가 아니라 성인을 공양하라는 의미에서 성공(聖供)’을 말한다.

 

강남에 있는 포교당에서는 입문자들을 묶어 두고자 한 것 같다. 입문과정이 끝나니 3개월 과정의 금강경과정으로 유도했다. 상당수 졸업생들이 원장스님의 금강경 직강을 들었다. 그 때 어느 법우님에게서 들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금강경을 외운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럼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강경을 외우면 공덕이 된다는 말에도 자극 받았다.

 

금강경 외우기에 도전했다. 먼저 금강경 전체를 파악해야 했다. 한문으로 된 번역문을 먼저 이해하고자 했다. 초심자이기 때문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모르면 모른 채로 나갔다.

 

한문으로 된 금강경은 모두 32분이다. 중간에서 반복이 시작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외우기로 작정했다. 하루에 한분씩 외우면 32일이면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한달 보름 걸렸다. 긴 길이의 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금강경을 외울 때 벽돌쌓기방식으로 외웠다. 한분 외우고 그 다음 분을 외울 때는 먼저 이전 외운 것을 확인하고 진도를 나가는 방식을 말하다. 예를 들어 10분에 해당되는 게송을 외우려 한다면 먼저 1분부터 9분까지 외운 것을 확인하고 10분을 들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마지막 32분 째가 되면 1분부터 31분까지 암기한 것을 확인하고 들어 가기 때문에, 32분을 왼 것을 확인하는 순간 모두 다 왼 것이 된다. 이를 벽돌쌓기방식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벽돌쌓기방식으로 천수경도 외우고 반야심경, 법성게 등 주요예불문을 외웠다. 2009년 이후 초기경전에 관심 갖게 되면서 빠알리경전도 외웠다. 테라와다 삼대예불문이자 수호경으로 잘 알려져 있는 라따나경(보배경, Sn2.1), 멧따경(자애경, Sn1.8), 망갈라경(축복경, Sn2.4)도 빠알리원문으로 외웠다. 이 밖에도 자야망갈라가타, 초전법륜경(S56.11), 법구경 일부 등도 외웠다. 모두 벽돌쌓기 방식으로 외운 것이다.

 

빠알리경전을 외운 것은 해외성지순례 갔었을 때이다. 처음 라따나경을 외운 것은 2011년의 일이다. 그때 중국 낙양, 서안 지역으로 패키지 여행 갔었다. 여행 가면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철철 남을 것 같았다. 그 남는 시간에 평소 외고 싶었던 경을 외워 보기로 한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전에 작은 쪽지에 인쇄했다. 호텔에서든 이동중이든 어디서든지 수시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번 여행을 하면서 준비한 것이 하나 있었다. 여유시간이 많을 것 같아 ‘경전 외우기’에 도전하고 싶어서 ‘라따나경(보배경)’을 프린트해 간 것이다. 라따나경은 ‘빠알리어’로 되어 있는데, 이를 통째로 외우려고 마음 먹은 것이다.”(2011-05-25)라고 기록을 남겼다. 이후 해외성지순례 갈 때 마다 경을 외웠다.

 

2011년 중국 낙양-서안 순례 때 처음으로 빠알리 라따나경을 외웠다. 엄밀히 말하면 시동만 건 것이다. 모두 17개 게송으로 이루어진 라따나경은 꽤 긴 길이의 게송이다. 1300여자에 달하는 천수경 정도의 글자수가 된다.

 

빠알리라따나경을 외는데 한달 보름 걸렸다. 금강경 욀 때와 비슷한 기간이다. 이런 여세를 몰아서 자야망라가타와 멧따경을 외웠다. 2012년 일본성지순례때는 망갈라경을 외웠다.

 

2013년 실크로드 순례 때는 초전법륜경을 외웠다 초전법륜경 외기에 대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경을 외워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성지순례라는 명목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안락을 위한 여행으로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초전법륜경이었다. 꽤 긴 길이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독송하기 좋게, 외우기 좋게 다시 배열 하였다. 그리고 출력하여 두루마리 형식으로 만들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들여다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또 호텔에서 아침, 저녁으로 시간이 철철 남아 돌 때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2013-05-28)라고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다.

 

마음다짐을 단단히 하지 않으면 경구를 외기 힘들다. 평소에는 외기가 힘들다.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여행 갈 때 남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특히 호텔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시간이 철철 남는다.

 

여행지에서는 아무 할 일이 없다. 그저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즐기는 일 외에 달리 할 것이 없다. 그래서 경구외우기에 도전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시동을 건 것이다. 그런데 한번 시동이 걸리면 목적지까지 갈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성지순례 갈 때 경전외우기 시동을 걸었다.

 

한번 외워 놓으면 다음에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암송한다. 어디를 가나 틈만 나면 암송한다. 새벽에 경구를 암송하면 맛이 난다. 암송하면 강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암송의 맛이라 해야 할 것이다.

 

평생 정신적 재물

 

경구를 외우면 어떤 점이 좋을까? 가장 좋은 것은 평생 재산이 된다는 것이다. 돈은 벌어도 내것이 아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남아 나는 것이 없다. 노후를 대비하여 돈을 모아 놓아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 털리고 만다. 그러나 한번 써 놓은 글이나 한번 외워 놓은 경구는 잃어버리지 않는다. 닳아서 없어지지도 않는다.

 

저 세상에 가져 갈 것은 자신이 지은 행위밖에 없다. 그것이 선업이든 악업이든 삶의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은 행위에 대한 것이다. 저 세상에 갈 때 물질적 재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정신적 재물은 가져 갈 수 있다.

 

정신적 재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경에 따르면 믿음의 재물(Saddhā dhana), 계행의 재물(sīla dhana),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재물(hiri ottappiya dhana), 배움의 재물(Suta dhana), 보시의 재물(cāga dhana), 지혜의 재물(paññā dhana) (A7.6)이렇게 일곱 가지 재물은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한번 외워 놓은 경구는 평생 간다. 이는 무형의 재물이나 다름없다. 경구외기는부처님이 말씀하신 칠성재(七聖財) 중에서 배움의 재물(suta dhana)”이라 볼 수 있다.

 

경구외우기는 공덕쌓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보시 등 공덕을 짓는 것에 대하여 이러한 공덕은 저 세상에서 뭇삶들에게 의지처가 되리.”(S1.32)라고 했다. 한번 외워 놓은 경구는 평생 정신적 재물이 된다.

 

진리의 말씀은 외워야

 

부처님의 말씀을 진리의 말씀이라고 한다. 진리의 말씀은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외고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지 머리에서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경구는 외우지 않음이 티끌이요

집은 보살피지 않음이 티끌이다.

용모는 가꾸지 않음이 티끌이고

수호자에게는 방일이 티끌이다.”(Dhp.241)

 

 

경구는 외우지 않음이 티끌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경전구절이나 기술은 그것을 반복하거나 거기에 종사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거나 그것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기 때문이다.”(DhpA.III.347)라고 했다.

 

기술을 익히려면 반복숙달해야 한다. 나중에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요즘 TV에서 보는 생활의 달인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진리의 말씀도 외워야 한다. 외우면 눈 감고도 알 수 있다. 따로 경전을 열어 보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요즘 인터넷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왠만한 것은 찾아 낼 수 있다. 경전의 문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검색해서 찾는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만일 그가 절해고도에 떨어져 있다고 한다면 인터넷에 있는 지식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나 머리 속에 넣어 놓고 있다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 그래서 주요 경구는 언제든지 머리에서 꺼내 쓸 수 있도록 외워야 한다.

 

일단 시동을 걸면

 

능동적 삶이 요청된다. 그것은 보통불자에게 있어서 읽고, 쓰고, 낭송하고, 외는 것을 말한다. 읽었으면 쓸 줄 알아야 한다. 언제까지나 읽는 것으로 그칠 수 없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쓸 줄 알았을 때 능동적 삶이 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실천하는 삶이다. 그것은 보통불자에게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경구를 외는 것이다.

 

경구외기는 큰 결단을 필요로 한다. 먼저 자기선언을 해야한다. 경구를 선택한 다음 이 경구를 외겠다고 자신과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동을 걸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일단 시동을 걸면 목적지까지 가게 되어 있다. 도중에 울퉁불퉁 난관을 만날 때도 있지만 관성에 의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만일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욕에 따른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산다면 멈추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머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는 삶, 능동적인 삶을 산다면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가속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경구외우기는 능동적인 삶이다. 한번 시동을 걸어 놓으면 관성에 의해 가속하게 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더 경구외우기에 도전하면 강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게송한게송 외워서 마지막 게송을 다 외웠을 때 모두 다 외우게 된다. 마지막 게송을 다 외운 순간 강한 성취감을 맛본다. 다 외웠을 때 마치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느낌이다.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5249자에 달하는 한문금강경을 다 외웠을 때도 그랬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빠알리경전을 다 외웠을 때도 그랬다.

 

경구를 다 외운후에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암송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틈만 나면 암송했다. 길을 걸을 때도 전철타고 갈때도 암송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도 암송했다. 어렵게 외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암송한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소리내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머리속에서만 암송한 것이다.

 

이번에 빠알리팔정도경 외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오늘은 첫게송 외는 날이다. 이제 시동을 걸었으니 목적지까지 가게 될 것이다. 도중에 예기치 않은 난관이 있을지 모르나 한번 시동 걸어 놓으면 주욱 그 길로 가게 되어 있다. 다 외고 나면 또 하나의 정신적 재물이 된다. 그것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배움의 재물이다.

 

오늘은 빠알리 팔정도경 외우기 시동 거는 날

 

빠알리팔정도경을 암기하기로 했다. 이는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고 빤냐완따 스님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아마 한달 이상 걸릴 것이다. 모두 다 외웠을 때 또 한번 강한 성취감을 맛볼 것이다. 다 외고 나면 잊지 않기 위해서 틈만 나면 암송할 것이다. 이번에는 소리내서 독송하고자 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소리내서 낭송하면 폐가 좋아진다고 한다. 무엇보다 읽기, 쓰기, 암송하기에 이어서 낭송하기는 능동적인 삶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읽고 쓰고 암송하고 낭송하는 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다. 게으르지 않는 삶이다. 법구경에서 방일한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다.”(Dhp.21)라고 했다. 아무 하는 일 없이 밥만 먹고 숨만 쉬고 있다면 좀비와 다를 바 없다. 또 아무 하는 일 없이 오욕으로 감각만 즐기는 삶만 산다면 게으른 자라고 볼 수 있다. 숨을 쉬고 있지만 이미 죽은 자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게 살 수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흔적은 남겨야 한다. 그것은 글쓰기로 나타난다. 또한 내생을 위해서 정신적 재물은 가져 가야 한다. 그것은 경구외기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전을 외우더라도 방일하여 행하지 않는다면 소치기가 남의 소를 헤이리는 것과 같아, 수행자의 삶을 성취하지 못하리.”(Dhp.19)라고 했다.

 

외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당연히 실천이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먼저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가르침을 알아야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학문은 외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가르침 역시 외는 것부터 시작된다. 오늘은 빠알리 팔정도경 외우기 시동 거는 날이다.

 

 

2020-11-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