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있든 없든 집 밖으로
스위트홈은 존재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스위트홈을 꿈꾼다. 설령 나의 가정이 달달하지 않더라도 남들은 그렇게 산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환상일 수 있다. 어쩌면 구호인지 모른다.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전형적인 핵가족사회이다. 아파트의 보급에 따라 삼대가 함께 사는 스위트홈은 붕괴된지 오래 되었다. 아파트는 핵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 마저도 핵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일인가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머지않은 미래 대부분 일인가구가 될 것이라 한다. 이미 일인가구는 현실이 되었다. 젊은 계층에서는 원룸 등에서 독살이 하는 것이 이제 당연시된 것 같다. 노인의 경우 배우자가 사망하면 일인가구가 될 수밖에 없다. 잘 살 것 같은 가정이 어느 날 두 개로 쪼개졌을 때 일인가구가 증가한다. 이래저래 일인가구가 증가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요즘 재건축하면 원룸형 주거 빌딩이다.
세상사람들이 꿈꾸는 스위트홈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이 한집에서 단란하게 사는 모습은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진정한 스위트홈이 되려면 문자 그대로 달달해야 할 것이다. 환하게 웃는 모습, 그리고 행복한 표정이 떠 오른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번 그럴 수 없다. 셋 또는 넷이 모여서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이 있을까? 한두 마디 하는 것이 고작이다.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진짜 스위트홈이 되려면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웃음이 그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생일잔치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미분을 배웠는데 이에 대한 소감을 엄마에게 말하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밖에서 일어났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아이는 또 얼마나 될까? 부부사이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밖에서 있었던 일을 화제삼아 이야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친구사이라 해서 매번 만날 때 마다 이야기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할 말을 다 했다면 침묵하게 될 것이다. 함께 있지만 달리 있는 듯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만났다고 해서 이야기 꽃을 피워야한다는 법은 없다. 부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부모자식과의 관계도 그렇다.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위트홈은 없는 것이다.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집의 의미는 무엇일까? 스위트홈의 환상이 깨진 현대인에게 있어서 집은 잠자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남자들이 그렇다. 그래서 눈만 뜨면, 해만 뜨면 집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정년퇴직 했다 하여 집에만 있으면 그나마 약하게 유지 되어 왔던 스위트홈이 깨질 수 있다. 아내들이 바라는 것은 남편들이 집에서 나가는 것이다. 낮에는 나가 있으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집 바깥에서 머물러야 한다. 설령 추위가 극심해도 절대로 집에 있어서는 안된다. 집은 해 떨어지고 난 다음 저녁에나 들어가는 곳이다. 직장이 없는 장년백수이든, 중년백수이든, 정년백수이든, 노년백수이든 밖에 있어야 한다. 일이 있든 없든 나는 오늘도 밖으로 나간다.
2020-12-1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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