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적은 자기자신
밖에 날씨가 춥다. 체감하는 온도는 영하 10도가 넘는 것 같다. 그러나 집에 오면 따스하다. 특히 이사 온 후에 처음 맞는 겨울은 ‘안은하다’라고 말 할 수 있다.
실내 온도는 늘 26도에 세팅 되어 있다. 바깥에는 찬바람 불어도 두꺼운 이중유리창이 보호해준다. 더구나 관문에 관문이 있는 것처럼 또 한번 벽이 있어서 방에 있으면 추운줄 모른다. 이제까지 이렇게 따뜻한 겨울을 맞이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것일까? 죄 짓는 것 같다. 억지로 밖에 있는 사람들을 떠 올려 본다. 노숙인들은 영하의 추위에도 종이박스를 깔고 시체처럼 누워 있을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난방이 안되는 허름한 집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고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 병사들은 꽁꽁 언 동태처럼 서 있을 것이다. 이런 안락이 그들에게 미안하다.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본다. 유년시절 시골에서 겨울은 왜 그렇게 추웠을까? 그때 겨울은 ‘몹시 추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후 도시에서 삶 역시 겨울만 되면 추웠다. 연탄불에 의지하는 난방시스템에서 방바닥은 절절 끓지만 공기는 바깥이나 다름없었다. 연탄이 연탄보일러로 바뀌고, 다시 기름보일러로 바뀌었어도 겨울추위는 여전했다. 중앙집중식 난방시스템 아파트에 살았어도 오래 되고 낡아서인지 전기장판 없으면 살 수 없었다. 이번에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는 전기장판 없는 겨울을 맞고 있다. 이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일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행복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편하고 안락하게만 살다 보면 세상이 다 그런 줄 아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인이 지하철 탈 줄 모르는 것과 같다.
이 작은 행복에 안도하고 또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런 안락이 자신의 실력이라 생각하면 자만이다. 마치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 낸 것처럼 자만하는 것과 같다.
그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시기가 잘 맞아서 행운을 잡은 것이다. 큰 부자가 되었다면 자신의 실력이라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런 사회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부를 이룬 것이다. 그럼에도 부자는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심지어 경멸하기까지 한다. 그가 가난한 것은 노력 부족이고 게을러서 그렇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게으름뱅이로 보아 무시하고 능멸한다면 자만이다. 그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아파트가 몇 배, 몇 십배 뛰어서 백만장자가 되었다면 이는 운이 좋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불로소득으로 이루어진 것임에도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본다면 졸장부에 지나지 않는다.
많이 가진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안락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는 복을 까먹는 것과 다름없다. 이번 생에 다 써버리면 다음 생에 무엇을 가져가야 할까? 갑자기 큰 돈이 생겼다고 하여 다 써버린다면 빈털털이가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살 필요가 있다. 자발적으로 결핍의 삶을 살 필요가 있다. 부유하고 안락하게 사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다음 생을 위해 공덕을 축적해 두어야 한다. 깨달음이라는 먼 여정의 길에서 공덕은 노잣돈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거지라도 좋으니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라고 발원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언제 또다시 추위로 내몰릴지 모른다. 거리의 노숙인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지금 이 행복과 안락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을 보았을 때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 때 저러한 사람이었다.”(S15.11)라며 반조하라고 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에서 언젠가 나도 한 때 저런 생을 산 적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유하고 행복한 자를 보았을 때도 똑 같이 적용할 수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윤회의 과정에서 “나도 한때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라고.
세상만사 새옹지마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운이 따랐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누리고 있는 안락이 자신의 생활력일수도 있고 복덕일수도 있지만 운이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면 겸손해진다. 자만은 최대의 적이다. 자신의 적은 자기자신이다.
“전쟁에서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하나의 자신을 이기는 자야말로
참으로 전쟁의 승리자이다.”(Dhp.103)
2020-12-1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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