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무엇이 진실로 자기의 것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10. 15:14

무엇이 진실로 자기의 것인가?



오늘 점심 때 라벨작업을 했다. 세금계산서철에 연도별 라벨을 붙이는 작업을 말한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13년 동안 26권에다 세로라벨을 붙였다. 매출계산서 파일 13권과 매입계산서 파일 13권이다.

 


전자세금계산서 발행하는 것은 주요한 업무 중의 하나이다. 발주서(주문서)를 받고, 견적을 내고, 네고해 주고, 최종적으로 거래명세표와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기 까지 전과정을 혼자 해야 한다. 이 과정은 설계과정 못지 않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고 또한 업무 전과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남에게 맡겨 놓을 수 없다.

일 하는데 있어서 설계하는 것은 기본 업무이다. 캐드(CAD)를 이용하여 인쇄회로기판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업계에서는 아트워크(Artwork)라고 한다. 예술작품 만들듯이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호를 예아트라고 했다. 예술아트워크의 준말이다.

작업은 수천, 수만번 클릭하여 완성된다. 최종파일이 완성되면 고객사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발송한다. 승인이 떨어지면 인쇄회로기판업체에 주문제작 의뢰한다. 모든 과정은 비대면이다. 이메일과 전화통화로만 이루어진다. 오래전부터 비대면으로 해 온 것이다. 물건은 택배로 전달된다. 제조업체에서 곧바로 고객사로 전달하게 해 놓았다.

모든 것을 혼자서 다 처리한다. 커피를 타 마시는 것도 혼자서 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도 혼자한다. 일하다 문제가 발생해도 혼자 해결한다. 한계에 부딪치면 외부 도움을 받는다. 같은 업종에 멘토가 있어서 전화 한방에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멘토는 나이가 열살 어리지만 난관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는다. 살아 가면서 이런 멘토 한명쯤 있다면 안심일 것이다.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입금이 되어야 잊어버린다. 지난 13년 동안 발행한 세금계산서는 얼마나 될까? 오백장 이상은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못 받은 돈도 많다. 계산서를 발행했다고 하여 돈을 다 받는 것은 아니다. 떼인 돈도 많다. 이런 경우 잊지 않는다. 잊어버리려 해도 잊혀 지지 않는다. 오래 된 것도 다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은 절대 손해 보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끝까지 기억하고 있다. 특히 금전거래 관계에 있어서 그렇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보면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잊을 수 있지만 내 돈 떼 먹고 도망간 사람은 평생 잊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계산서를 발행하여 결재가 이루어지면 깨끗이 잊어버린다. 수백장의 계산서를 발행했지만 모두 다 기억할 수 없다. 아니 기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거래가 깨끗이 종결되었기 때문에 마음의 부담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결상태라면 5년이 가고 10년이 가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아니 평생가도 잊지 않는다.

피해를 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 그사람을 생각하면 때로 불선법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다. 다만 계산서 파일로만 남아 있다. 미결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 사람은 업을 지은 것이다. 언젠가는 미결에 대한 과보를 받을 것이다. 그것이 이번 생일 수도 있고 다음 생일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매입세금계산서에 대하여 한번도 결재를 어긴 적이 없다.

 

 

 


2007
년 말 개인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은 이래 수백장의 계산서를 발행했다. 입금된 돈은 다 어디 갔을까?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업체와 거래했다. 남아 있는 것은 계산서밖에 없다. 이것도 삶의 흔적일 것이다.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노력한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업무노트를 보관하고 있다. 20년 동안 쓴 것은 100권가량 된다. 강연이나 모임에서 보고 들은 노트도 버리지 않고 남겨 놓았다. 수십권 된다. 회사 다닐 때 개발해 놓은 전자제품도 모아 놓았다. 개발할 때 마다 기념으로 집에 가져다 놓은 것이 30대가량 된다.

 

 


삶의 흔적으로 글쓰기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일인사업자로 삶을 살면서 매일 의무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요즘은 예전에 썼던 것을 문구점에 의뢰하여 책의 형식으로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16권 만들었다. 다 만들면 100권가량 될 것 같다.

오늘 계산서 파일에 라벨 붙이는 작업을 했다. 어쩌면 이것도 삶의 결실일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타인과 공유되지 않는다. 이미 지난 일임에도 계산서파일을 모아 두는 것은 "나는 이렇게 생계를 유지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는 것이다.

업무노트, 강연노트, 개발제품, 글쓰기책, 그리고 계산서파일은 삶의 흔적이다. 마치 자신의 업을 보는 것 같다. 세월도 가고 사람도 갔지만 기록만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 있을 때 까지만 남아 있을 것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행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행위가 업의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 세상에 갈 때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업()밖에 없다. 그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어도 돈 버는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행위한 업만 가져 간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죽음의 신에게 사로잡혀
목숨을 버려야 할 때
무엇이 진실로 자기의 것인가?
그는 무엇을 가지고 가겠는가?

그림자가 몸에 붙어 다니듯
그를 따라 다닐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만든
공덕과 죄악, 바로 이 두 가지,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것,
그는 그것을 가지고 가네.
그림자가 몸에 붙어 다니듯
그것이 그를 따라 다닌다네.”(S3.4)


저 세상에 갈 때 공덕과 죄악 두 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행위를 하여 그 행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마치 그림자가 따라다니듯 죽어서도 따라다니는 것이 업이다.

일인사업자로 살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계산서파일 26권만 남았다. 매출과 매입계산서는 천장이 넘을 것 같다. 천번 업을 지은 것과 같다. 매입의 경우 결재를 다 했으므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다. 그러나 매출의 경우 아직 미결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도 많다. 이번 생에서 못받으면 다음 생에서나 받으려나? 업이야말로 진실로 자기의 것이다.

 

 

2020-12-1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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