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그래서 어쩌자구요?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3. 13:56

그래서 어쩌자구요?


이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부산에 있는 M선원의 K원장은 이것에 대해 말한다. 이것만 알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 이렇게 드러나 있는 것, 이것만 알면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기 위해서 책상을 탕탕 치기도 한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성성하게 드러나 있는 이것, 이것만 알면 된다고 말한다.

K
원장의 유튜브 강연을 보면 이것 이야기로 주어진 시간을 다 보낸다. 이것으로 시작해서 이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의 말만 들으면 어느 순간 몰록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말 하면서 경전도 필요 없고 수행도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이것을 깨우치고 나면 경전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알 것이라고 말한다. 경전은 이것을 설명해 놓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주로 선종계통의 경전이나 선어록을 말한다. 니까야와 같은 초기경전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위빠사나와 같은 수행 이야기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입만 바라보라고 하는 것 같다.

페이스북친구 이강옥선생 글에서 본 것이 있다. 호스피스 능행스님의 글을 보고서 죽음에 대해 성찰해 본 글이다. 이강옥선생 글 중에 임종을 맞는 어느 수행자의 모습을 이렇게 써 놓았다.


다가온 죽음 앞에서 크게 흔들리는 수행자를 발견한다. 인간적으로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스님은 오래전부터 죽음을 준비해왔다. 그래도 그는 자기 죽음이 다가오자저에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요. 죽지 않게만 해주세요. 살려줘요. 제발. 아직은 아니야?”며 발버둥쳤다. 그는 죽음을 여여하게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죽음의 열차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자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평소 생사에 초연해야 함을 말씀하시던 큰스님 중에서도 이런 마지막 모습을 보인 경우가 있고 필자도 직간접적으로 들은 바가 적지 않았다. 능행스님이 책을 통해 차마 표현하지 못한 사례는 더 많다.”


한국불교에서는 죽음 이후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생사불이(生死不二)라 하여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고 한다. 불이사상을 말하지만 사후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강조할 뿐 죽음이후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열반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들은 개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러다 보니 내생이나 윤회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이야기하다가 중병에 걸려 고통받거나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강옥선생이 능행스님의 글을 인용하여 표현한 것처럼 병 앞에 죽음 앞에 속수무책이 되는 것 같다.

한국불교 스님들은 좀처럼 업과 윤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다. 선사들의 법문을 들어 보면 소소영영(
昭昭靈靈)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세상사를 살고 있는 불자들에게 있어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럴 때 초기경전을 보면 업과 윤회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또 천상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많다.

행위를 하면 과보를 받기 때문에 자신이 지은 업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난다.”라는 가르침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것이 괴로움이다.”라 하여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를 설했을 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사고팔고(四苦八苦)를 자신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비로소 진리로서 받아 들이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확신에 찬 믿음, 삿다(saddha:)를 말한다.

업과 업의 과보, 그리고 내생과 윤회를 말하지 않는다면 불교라 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서 행복을 말하는 것은 진리의 일부만 말한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 젊음과 건강이 유지될지 알 수 없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늙음, 병고, 죽음 앞에서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진리의 일부를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눈 먼 장님이 코끼리만지는 것과 같다. 전체를 보려면 괴로움과 죽음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또 내생과 윤회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고, 천상과 지옥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이것을 말하는 사람은 한시간 내내 이것만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경전을 볼 필요도 없고 수행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이것뿐입이다. 이것뿐이라니까요. 이것밖에 없습니다.”라며 답답한 듯 말한다. 과연 이것법문을 듣고 중병에 걸렸을 때, 또는 죽음에 이르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업과 업의 과보, 내세와 윤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것법문을 듣고 어떤 안위를 느낄까? ‘이것법문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어쩌자구요?”라며 묻고 싶다.

 

 

2020-12-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