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근불가원정치

예상치 못한 판사리스크를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25. 07:59

예상치 못한 판사리스크를 보며

참으로 당혹스럽다.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촛불정부만 들어서면 적폐청산은 자연스럽게 될 줄 알았다. 총선에서 압승하면 개혁은 저절로 될 줄 알았다. 어제 판사의 판결을 보니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판사리스크가 있었던 것이다.

민주진보진영 사람들은 어제 정경심 교수 판결에 허탈해 하고 있다. 당연히 무죄를 예상 했으나 징역 4년에 벌금 5억원을 때렸다. 예상을 깬 것이다. 사람들은 허탈을 넘어 분노하기 시작했다. 작년 같았으면 법원 앞에 수십만명이 모였을 것이다.

요즘은 코로나시기이다. 강력한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모이는 것은 생각 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과 정보통신시대에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사이버공간이자 가상공간을 말한다. 현대인들은 매일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넘나들며 살고 있다. 또 하나의 공간에서 촛불이 타올랐다. 세 명의 판사에 대한 탄핵의 촛불이다. 청와대청원이 시작 된지 하루만에 11만명이 넘었다.

이런식이라면 윤가 건도 위험하다. 윤가도 풀어 줄 것 같다. 이번 정경심 교수 판결로 그들은 한통속임이 드러났다. 그들은 기득권 집단으로서 서로 공생하는 이익공동체나 다름 없다.

그들은 기득권을 내려 놓을 생각도 없다. 개혁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 같다. 그들은 개혁에 저항한다. 아니 기득권 수호에 올인 하는 것 같다. 이번 판결로 알 수 있다. 바로 이전에도 그랬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들은 "권력은 본래 우리 것이다. 잠시 빌려 준 것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정의로울까?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정의로운 검사, 정의로운 판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년 윤가의 난동을 보면서 정의롭지 않은 집단임을 알았다. 이번에 불공정한 판결을 보고서 사법부 역시 정의로운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조직이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순진한 국민들은 이제서야 그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도 있을 것이다. 책에서도 정의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본다. 단 한사람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사법부의 정의라고 본다. 그러나 어제 판결로 정의는 깨졌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한다. 억울한 사람을 더 억울하게 만든다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정의가 사라진 사법부는 더 이상 믿을 곳이 못된다. 사법부는 법과 양심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이제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분노한 국민들은 사이버공간에서 촛불을 들었다.

정의는 교과서에만 있지 않다. 정의는 사람들이 살아 가는 곳에 있다. 제아무리 정의를 정의한다고 해도 현장의 목소리만한 정의는 없다. 분노하는 대중의 목소리가 정의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분노한 대중의 목소리가 정의였다. 역사가 정의로운 행위로 평가해 주었다.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된 판사를 처벌하라는 함성이다. 이것이 정의이다. 정의는 저 멀리 고고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 속에 있다. 분노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정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