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을 믿어 달라는데
"나의 진정성을 믿어 주십시오." 어느 정치인이 한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이번에는 충정을 이야기 하며 자신의 말을 믿어 달라고 말한다. 자신이 한 말은 진실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 샤람의 말은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사실과 진실이 있다. 사전적 의미도 있을 것이다. 사실과 진실, 둘 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보다는 진실이다. 사실을 알고 싶기도 하지만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천안함의 진실이나 세월호의 진실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사실이 은폐되면 궁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이 은폐되면 분노한다. 사람들은 사실보다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실을 말할 수 있지만 진실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성자라면 가능할 것이다.
무아의 성자라면 진실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 같은 분이다. 진실만을 말하는 진어자이다. 그래서 깨달은 자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기 쉽다. 그러나 범부는 진실을 말하기 힘들다. 자아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범부가 아무리 진정성을 얘기한다고 해도 믿기 힘들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이라는 갈애와 "이것은 나이다."라는 자만, 그리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는 자아견해를 가지고 있는 한 진정성이 없다.
그는 "나의 진성성을 믿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그가 성자의 경지에 올라 있다면 믿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갈애와 자만과 자아견해에 집착되어 있다면 믿을 수가 없다. 그가 어떤 말을 해도 어긋날 것이기 때문이다.
갈애, 자만, 견해가 어느 정도 극복된 사람이 말하면 진정성이 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자신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행위로 이미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을 믿어 달라고 말하는 자는 진정성이 없기 쉽다.
2021-01-0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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