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자현스님의 구라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2. 27. 09:22


자현스님의 구라


그거 다 구라입니다.” 자현스님이 한 말이다. 선학전공자이자 율학전공자이자 박사 타이틀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스님의 입은 거침이 없다.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행은 모두 구라라는 것이다.

평소 알고 지내는 법우님으로부터 메세지를 받았다. 자현스님이 유튜브에서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행법이 다 거짓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불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링크를 공유해 놓았다. 초반부에 실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현스님의 유튜브 강연을 보게 되었다.

 


대중강연자는 특징이 있다. 과장이 있다는 것이다. 세게 말하기도 한다. 우물쭈물 하거나 약하게 보이면 외면 받는다. 그래서 청중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보아 개무시하는 식으로 해야 먹혀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현스님의 강연이 그렇다.

요즘 유튜브시대이다. 갖가지 강연을 접한다. 들어 보면 보인다. 한시간만 떠드는 것을 보면 밑천이 드러난다. 단지 아는 것만 나열해서는 공감하지 못한다. 검색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하면 금방 들통난다.

한번 마음이 떠나면 다시 마음 내기 힘들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이다. 믿음이 가지 않는데 억지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가면 믿지 말라고 해도 믿는다. 고미숙선생 같은 케이스이다.

고미숙선생 유튜브 강연을 모두 다 들었다. 몇년전 것까지 샅샅이 찾아 들었다. 요즘은 새로 올라오기가 무섭게 듣는다. 고미숙선생 강연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에 있다. 대중강연은 자칫 과장되고 자기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금도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자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로 알 수 있다.

진리를 말하는 자의 목소리는 당당하다. 부처님의 목소리가 그랬다. 그래서 사자후라고 한다. 최상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 당당하고 의미있는 선언이 사자후이다. 그래서 목소리에 힘이 있고 공명이 있다. 대중은 부처님의 32상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심오하고 공명이 있는 당당한 목소리에 매료되기도 했다.

다 개구라입니다.” 이렇게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은 호불호가 갈린다.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BTN(불교TV)에서는 키워주고 있다. 거의 막말수준임에도 전파를 타고 있다. 유튜브에도 공개되어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자현스님 강연은 처음에는 들을 만했다. 그러나 갈수록 거칠어져 갔다. 대중을 무시하는 듯한 강연이다. 대중은 아무것도 모르는 개돼지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과장을 넘어서 왜곡했을 때 듣기가 역겨워진다. 듣다 보면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을 때 더 이상 듣지 않게 된다.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강연도 공감하지 않으면 시간낭비이다. 진실에 바탕을 둔 진정성 있는 강연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 딱 맞아 떨어졌을 때 믿음이 간다. 이런 믿음은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확신에 찬 것이다. 이런 강연자가 몇명 있다.

매일 글쓰기 하고 있다. 나는 사람둘에게 어떤 믿음을 주고 있을까? 발길을 끊은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너무 치우치거나 과장되거나 왜곡되어서 그런 건 아닐까?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을 써서 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익을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능력껏 쓴다. 아는 것만큼 알리려는 마음으로 쓴다. 혹시라도 불편과 불쾌를 야기한다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아주는 사람이 있다. 종종 이름이 보였을 때 인정받는 것 같아 힘을 받는다.

자현스님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청중을 개무시하며 다 개구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폭력이다. 혹시 나에게도 언어폭력적 요소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만든다.

자현스님의 강연은 불쾌했다. 이에 반하여 고미숙선생의 강연은 유쾌하다. 이는 시청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자현스님의 테라와다불교에 대한 비방은 지나치다. 말끝마다 소승이라고 한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자현스님의 구라이다. 자현스님의 구라는 지나치다.

 

 

2020-12-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