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간 것은 지나가게
나에게 장애가 있다. 그 사람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히 마음의 장애에 해당된다. 일종의 악한 감정이다. 나를 조롱하고 모욕한 것이 지금도 마음 한켠에 남아 있어서 콤플렉스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언제 이 열등감에서 벗어나 관대함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 오래토록 기억한다. 심지어 “절대로 용서못해!”라며 이를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좋았던 것, 영광스러웠던 일을 회상하는 사람도 있다. 영원히 잊지 않고자 자주 떠 올린다. 그러면서 “나 때는 말이야”라며 꼰대질을 하려고 한다. 모두 과거에 사는 사람들이다.
나에게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과거는 지금과 상황이 다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조건이 다른 것이다. 과거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만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당연히 조건이 다르다. 이렇게 본다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현재 조건에 영향받는다. 과거 힘들고 괴롭고 슬펐던 일들이 추억처럼 여겨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과장되게 말한다. 한 얘기하고 또 하는데 들어보면 매번 다르다. 물론 큰 흐름은 같을지 몰라도 세세한 묘사에서는 말 할 때마다 다른 것이다.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갖가지 감정에 지배받는다. 이를 오욕칠정(五慾七情)이라 한다. 한마디로 느낌에 대한 것이다. 이런 느낌은 나의 것일까? 지금 그 사람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있다. 이유 없이 미움의 감정이 일어난다. 그의 행위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 그가 사과하기전에는, 그가 항복하기 전에는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대체 이런 완고한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런 감정에서 해방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 사람은 가만히 있다. 그 사람 속을 알 수 없다. 어쩌면 나의 ‘뇌피셜’인지 모른다. 그 사람을 악마화 하는 것은 나의 망상 때문인지 모른다. 결국 나만 손해인 것을 알게 된다. 착한 그 사람을 원수 대하듯 한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팔정도에 분노를 여윈 사유가 있다. “아브야빠다 상깝뽀 (avyāpādasaṃkappo)”(S45.8)라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분노라기 보다는 ‘악의(惡意)’이다. 악한 감정이 늘 있다는 것은 그에 대하여 적대적임을 말한다. 그런데 이는 자신에게도 적대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의에 지배되어 살고 있음을 말한다. 과거 안 좋았던 기억을 자꾸 소환하는 것이다. 거기에 가지가 붙어서 그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다름 아닌 마음속의 괴물이다. 아주 작은 불쾌와 불편이 쌓이고 쌓여서 자신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분노의 감정에 지배받게 된다. 그래서 그 이름만 들어도 불쾌하고 불편하게 생각한다.
불편한 감정에 지배되었다면 그것을 나의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과 같다. 오래 전의 일임에도 마음에 품고 있다면, 더구나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행위이다. 그래서 “아브야빠다 상깝뽀”라고 했다. 분노를 여윈 사유가 지혜의 영역에 해당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제 그 사람을 놔주어야 겠다. 그 사람에 대해 미움의 감정을 내 보았자 나만 손해이다. 이미 지나 간 일을 소환하여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면 피곤한 일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게 해야 한다.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기뻐하면 된다. 다만 그것으로 그쳐야 한다. 슬픈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에 대한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은 그때 느낀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내것이 아니다.
좋으면 좋을 뿐이고 괴로우면 괴로울 뿐이다. “좋아 죽겠네”라든가, “죽어도 싫어”라고 해서는 안된다. 죽도록 좋아하고 죽도록 싫어 하는 것은 집착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제까지 그 사람에 대해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뜻대로 되길 바랬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이다. 과거 일에 집착하는 것은 약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라면 보내야 한다. 그때 일은 그때뿐이다. 이미 지난 일에 매달려 있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게 내버려 두자. 그 사람과 관계개선을 해야 겠다. 과연 나는 그 사람에 대해 관대해 질 수 있을까?
2020-12-3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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