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글쓰기 하는 것은
잠에서 깼다. 더 잘 것인지 깬 상태로 있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더 자면 날이 훤하게 될 것이다. 잠을 더 잠으로 인하여 피곤할 수 있다. 꿈 꾸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깬 채로 그대로 있기로 했다.
방바닥은 따뜻하다. 아파트라 웃풍이 없다.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바깥은 영하의 혹독한 날씨이지만 편안하고 아늑하다. 이중창에 또 벽창이 있어서 이중삼중으로 추위가 차단된 결과일 것이다. 이런 행복은 얼마나 오래 갈까?
지금은 새벽 세 시대이다. 방안은 캄캄하기 보다는 희뿌였다. 창호지 효과가 있는 유리창 때문이다. 은은하게 비치는 희미한 빛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할 때 차분한 느낌이다. 잠에서 깨어서 마음도 착 가라 앉아 있는데 은은한 어둠까지 더해져서 최고로 안락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해가 바뀌었다.
2021년 새벽이다. 불과 몇시간 만에 년단위가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달라진 것이 없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부터 분명히 변화는 감지될 것이다. 글을 쓰고 나고 난 다음에 날자와 함께 서명하는데 그때 2021년이라고 쓸 것이기 때문이다.
해만 바뀐 것이 아니다. 나이도 한살 더 먹었다. 나이를 세는 것이 이제 두려울 때가 되었다. 이를 나이 콤플렉스라고 해야 할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나이 많이 먹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는 자랑이 아니라 숨기고 싶은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아마도 해 놓은 것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퍼먹은 것이 아쉽기 때문일 것이다.
스마트폰 자판을 똑똑치다 보니 네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글 쓰는 것을 즐긴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친다. 생각한 것이 문자로 톡톡 튀어나온다. 세상에 이런 즐거움이 어디 있을까?
글쓰기 위해서는 사유해야 한다. 이는 망상하는 것과는 다르다. 글은 논리이기 때문에 논리적 사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제가 있어야 한다. 주제 없는 사유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주제가 있는 사유는 사마타명상이 되기도 한다. 불수념, 법수념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사유(위딱까)와 숙고(위짜라)에 따른 사마타명상은 기쁨과 행복을 가져온다.
글쓰기 세월 십년이 넘었다. 블로그에 글 쓰기 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나의 글쓰기는 바른 것일까? 최근 커다란 사고의 전환 계기가 있었다. 이제까지 글쓰기가 잘못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그것은 고미숙 선생의 유튜브 글쓰기 강연을 듣고 나서 부터이다. 결론은 이런 것이다. “글쓰기는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고미숙 선생의 강연을 듣고 이제까지 글쓰기를 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자신과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진 글쓰기를 해 온 것일까? 이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세상을 변혁을 위한 것이다.
진지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글이 길어지고 현학적이 되었다. 이런 글쓰기에 대해 싫어 하는 사람도 있다. 바쁜데 다 읽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섭섭하다. 오전내내 5시간 작성한 글을 5분도 안되서 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줄이라고 한다. 글 쓰는 횟수도 줄이라고 한다. 짧고 간결한 글을 쓰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블로그 글쓰기에는 제한이 없다.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쓰는 것이다. 특히 경전을 근거로한 글쓰기는 길어질 수밖에 없다. 경우의 수를 모두 설명해야 하고 참조를 하다보면 10페이지가 훌쩍 넘는다. 하루종일 쓸 때도 있다. 돈을 생각하지 않는 글쓰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2006년 블로그에 글쓰기한 이래 진지한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다. 이는 글을 마칠 때 날자와 서명으로 나타난다. 글에 대해 무한책임지겠다는 자세이다. 그러다 보니 진지한 글쓰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시시콜콜한 일상이나 가족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자신의 성장과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글쓰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신과 세상에 끝없이 질문을 던져라.” 이 말에 매우 공감했다. 자신의 성찰이 없는 글쓰기는 자랑이 되기 쉽다. 실시간 소통의 대명사라 볼 수 있는 페이스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글을 보면 대부분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상이 대부분이다. 성찰은 찾아볼 수 없다. 페이스북은 원래 그런 곳이다. 페이스북은 소통하는 곳이지 글쓰는 장소가 아니다. 글은 블로그에 써야 한다. 그래서 '블로거'라는 명칭이 있다. 그러나 페이스북에는 딱히 불러줄 명칭이 없다. 이렇게 본다면 블로그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페이스북은 실시간 소통하는 곳이어서 진지한 글쓰기는 맞지 않는 곳이다.
실시간 소통하는 에스엔에스(SNS)에서는 짧게 써야 한다. 그럼에도 진지한 글쓰기를 고수하고 있다. 이것도 어쩌면 자만일 것이다. 이런 꼴불견을 보기 싫어 멀리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 하는 곳이다. 사진으로 말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글로서 표현하는 것이 주된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 창에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라며 묻고 있다.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끊임없이 물을 줄 알아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멈추어 버린다. 질문이 없으면 감각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된다. 눈과 귀, 코와 혀, 그리고 몸으로 오욕락을 즐기는 삶이다. 나이만 헛되이 먹은 허무한 삶이 되기 쉽다. 그러나 자신과 세상에 끊임없이 질문하면 성장하는 삶이 된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했을 때 성장할 수밖에 없다. 또한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을 때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은 자신과 세상에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을 향상하게 하고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블로그도 그렇다. 파워블로거라고 했을 때 단순히 힘있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것임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진지한 글쓰기는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볼 수 있다. 자신에게도 이익되고 타인에게도 이익 되는 것이다. 진지한 글쓰기를 하는 이유가 된다.
2021-01-0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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