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서가(書架)에 니까야 번역서를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 2. 09:15

서가(書架)에 니까야 번역서를


이주전 온라인 법회가 열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조치로 인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줌으로 열린 법회에서 참석자들은 스마트 폰을 마주했다. 상당수가 서재에 앉아 있었다.

방이 여러 개라면 그 중의 하나를 서재로 활용할 것이다. 방이 없으면 거실을 서재로도 할 수도 있다. 이왕이면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책장을 배경으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온라인 줌 법회뿐만 아니라 유튜브 화면에서도 볼 수 있다. 뒷배경을 서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가(書架)에는 수많은 책이 있다. 한 권, 두 권 사모우다 보니 많아졌을 것이다. 갖가지 종류의 책들로 장엄된 서가는 보기에도 좋아 보인다. 지식의 향연을 넘어 지혜의 향연을 보는 것 같다.

서가가 나오는 화면을 유심히 본다. 그것은 경전이 꼽혀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빠알리니까야 번역경전을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과 초기불전연구원본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두 곳 모두 사부니까야를 완역한 바 있다. 아마 누군가 두 곳에서 출간된 번역서를 사 모아 놓았다면 책장 가득될 것이다. 그리고 눈에 띌 것이다. 그러나 예리하게 관찰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군계일학이라 한다. 아무리 책이 많아도 경전이 없으면 허전한 것 같다. 서가 가득 갖가지 종류의 책으로 장엄되어 있어도 경전이 보이지 않으면 빛을 잃는 것과 같다.

니까야에는 사부니까야 뿐만 아니라 쿳다까니까야도 있다. 한국불자들이 애송하는 법구경과 숫따니빠따는 쿳다까니까야에 속한다. 이 밖에도 이띠붓따까, 우다나, 테라가타, 테리가타도 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출간된 경전들이다. 주석이 있는 경우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이 유일하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와 인연이 있다. 교정자 자격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참여한 것은 2016년 테라가타를 출간했을 때이다. 그때 당시 전재성 선생의 아파트 거실에서 니까야강독모임이 열렸는데 교정작업 권유를 받았다.

 

여러 교정자 중의 하나였다. 교정이라 해도 오자, 탈자 잡아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출간 되기 전에 본문과 주석을 꼼꼼히 읽어 보았다는 데 큰 의미를 둔다. 그것도 방대한 내용을 두 번이나 읽어 보았다. 내용이 좋아 메모노트를 만들기도 했다. 꼭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별도로 기록해 둔 것이다.

 

테라가타를 시작으로 테리가타, 청정도론, 앙굿따라니끼야 통합본, 그리고 율장 부기를 교정 보았다. 교정작업에는 금요니까야 강독모임 멤버들도 참여했다. 현재 금요니까야 강독모임은 고양 삼송역 근처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사무실겸 서고에서 열린다.

서가에 책으로 가득하면 풍요로운 느낌이 든다. 책을 열면 지혜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저자와 대화가 시작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대면 하는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책이야말로 비대면 접촉의 전형이다.

그가 아무리 말을 잘해도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서 표현한 것만 못하다. 책을 남겼다는 것은 자신의 사상을 남겼다는 말과 같다. 그것이 소설이든, 시이든, 평론이든, 번역이든,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생각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다 못해 블로그에 올리는 잡문도 생각이 들어가 있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책을 남기는 행위는 위대한 작업이다. 오래 읽힌다면 불멸이 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변형하면 사람은 죽어서 책을 남긴다.”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책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고전이 되지 못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내는 도서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책에 대해서 물어보니 상당수가 폐기된다고 한다. 신간은 계속 들어오고 책은 쌓여만 가는데 더 이상 보관할 장소가 없을 때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수장고에 가득 쌓인 책은 폐기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책을 낸다고 하여 도서관에 영원히 보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고전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것이다. 책이라 해서 같은 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집에는 서재가 없다. 그 대신 사무실에 서가가 있다. 일반서적도 있지만 중시하는 것은 경전이다. 두 곳에서 번역된 니까야는 모두 갖추어 놓았다. 의자만 돌리면 막바로 집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비용도 많이 들었다. 틈나면 한권, 두권 사 모았다. 목돈이 생기면 세트로 구입했다. 이렇게 꾸준히 구입하다 보니 서가에 가득하게 되었다.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아도 부처님을 모신 것과 같다. 부처님 말씀을 직접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가에 책이 가득한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경전을 갖추는 것이다. 서재가 나오는 사진이나 줌이나 유튜브를 볼 때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경전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것이다. 서가에 니까야 번역서를 갖추었다면 꽃 본 듯이 반가울 것 같다.

 

 

2021-01-0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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