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끼 식사를 하는 것은
이 몸은 타자들의 공동체, 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밥을 먹지만 나만 먹는 것이 아니다. 내 몸안에는 수많은 타자들이 있어서 이 몸을 숙주로 해서 살아간다.
오늘도 한끼 밥을 먹는다.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 먹는다. 그러나 먹는 즐거움으로 먹기도 한다. 음식에 대한 갈애가 없으면 이 몸은 지탱하기 힘들 것이다. 나를 위해서 먹기도 하지만 타자들을 위해서도 먹는다.
세상에 먹는 것만큼 거룩하고 신성한 일이 어디 있을까? 범부나 성자나 먹는다. 그러나 똑같이 먹는 것은 아니다. 범부는 욕망으로 먹기 때문에 음식은 윤회의 자양분이 된다. 그러나 성자는 계율로 먹고, 사마타로 먹고, 위빠사나로 먹기 때문에 윤회를 종식시키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
하루 세 끼를 먹는다. 먹을 것을 준비하고 조리하고 먹고 치우다 보면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한끼를 거르면 시간이 절약될 것이다. 그러나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먹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다면 다섯 끼는 먹어야 할 것이다. 아침, 점심, 새참, 저녁, 야식, 이렇게 다섯 번 먹어야 먹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입에서 먹거리가 떠나지 않는다. 군것질을 하고 차를 마신다. 때로 음주도 한다. 현대인들은 하루 다섯 끼가 아니라 하루 종일 식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가 하루종일 먹어대듯이.
하루 한끼만 먹는다면, 때 아닌 때 먹지 않는다면 시간이 많이 확보된다.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은 그렇게 살았다. 오전에 탁발 하는 것 한번으로 그치고 오후에는 먹지 않았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는가? 치열하게 수행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기 위해 살았다.
오늘도 점심 한끼 먹었다. 저녁에는 저녁밥을 먹어야 한다. 아침이 되면 간단하게라도 먹어야 한다. 새참과 야식은 먹지 않지만 도중에 과일을 먹기도 하고 군것질을 하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고 차도 마신다. 하루가 먹는 것으로 시작해서 먹는 것으로 끝난다.
나는 왜 이렇게 먹어 대는가? 내 몸을 위해서도 먹지만 내몸을 숙주로 해서 살아가는 타자들을 위해서도 먹는다. 더 이상 먹지 못했을 때 나는 어떻게 될까? 타자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밥숫가락을 놓는 날이 올 것이다. 한평생 소처럼 먹기만 했다면 소처럼 태어날지 모른다. 재가불자 마하나마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했다. 그런 한편 "만약 이때 내가 죽는다면 나의 운명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S55.21)라고 걱정했다. 이에 부처님은 "그대에게 악한 죽음이나 악한 임종은 없을 것입니다.” (S55.21)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법문으로 안심시켰다.
“마하나마여, 예를 들어 사람이 버터가 든 단지나 기름이 든 단지를 깊은 호수에 집어 넣어 깨뜨리면, 그 단지의 파편이나 조각은 가라앉을지라도 그 버터나 기름은 상승하여 승화됩니다. 마하나마여, 몸은 물질로 이루어지고 네 가지 광대한 존재로 구성되어 부모에게서 태어나 음식으로 부양되고,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찢겨지고, 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믿음으로 마음을 닦고, 계행으로 마음을 닦고, 배움으로 마음을 닦고, 보시로 마음을 닦고, 지혜로 마음을 닦았다면, 이 몸을 까마귀들이 삼키고, 독수리들이 삼키고, 매들이 삼키고, 개들이 삼키고, 승냥이들이 삼키고, 여러 가지 종류의 야생동물들이 삼킨다고 해도, 그 오랜 세월 동안 믿음으로 닦여지고, 계행으로 닦여지고, 배움으로 닦여지고, 보시로 닦여지고, 지혜로 닦여진 마음은 승화됩니다.”(S55.21)
이것은 부처님의 안심(安心)법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밥숫가락 놓게 되었을 때 내적 외적 타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르침을 실천하고 살았다면 공덕만은 가져 간다. 그래서 ‘기쁨’을 먹고 사는 세계에 태어날지 모른다. 오늘도 한끼 식사를 하는 것은 공덕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지계공덕, 보시공덕, 수행공덕을 위한 삶이다.
2020-12-27
담마다사 이병욱
'음식절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19 자비의 식당순례 9탄, 오늘 점심은 베트남 쌀국수로 (0) | 2021.01.19 |
---|---|
오늘 잘 먹은 점심 한끼는 (0) | 2021.01.16 |
코19 자비의 식당순례 8탄, 가판 만두 1팩 (0) | 2020.12.19 |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우기 (0) | 2020.12.09 |
코19 자비의 식당순례 7탄, 사골떡만두국 (0) | 2020.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