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여, 눈을 내리려거든 내리소서!
눈이 왔다. 한편으로 반갑고 또 한편으로 걱정된다. 도시에서 눈은 반갑지만은 않다. 첫눈은 누구나 반긴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보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눈으로 인한 피해 또는 손실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수도권에서 이렇게 펑펑 내리기는 올 겨울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남녁에는 눈이 자주 내리는 모양이다. 실시간으로 소통되는 에스엔에스에서는 함박눈 내린 눈소식을 전한다. 특히 산사에 내린 눈은 운치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도시에 눈이 내리면 ‘눈지옥’으로 변한다.
오늘 아침 차를 두고 버스 타고 갔다. 눈이 많이 오기도 했지만 날씨도 무척 추웠다. 실내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바깥 날씨가 이렇게 추운 줄 몰랐다. 등 따습고 배 부른 자들이 헐벗고 굶주린 자들의 사정을 모르는 것과 같다.
눈을 보자 걱정이 되는 것이 있었다. 오늘 납품 가야 하는데 이런 상태라면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낮이 되면 눈이 조금 녹을까? 점심 때 대로를 보니 녹아 있다. 제설작업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외곽에는 빙판길이나 다름없다. 오늘 저녁 납품 가야 하는데.
에스엔에스에 남도 시골 사시는 분이 사진을 한장 올렸다. 그리고 “눈이 온다. 오랜만에 많이 내린다. 참 좋다.”라고 글을 남겼다. 납품할 것을 생각하면 처지가 한심하다. 그런데 눈이 와서 좋다니! 시골과 도시에 사는 사람의 관점차이 일까? 그래서 “도시에서는 별로.”라고 댓글 달았다. 한가한 시골에서는 눈이 와서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도시에서는 눈지옥이 된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짤막하게 쓴 것이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농사에 좋습니다.”라는 답신을 받았다. 눈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다름을 알았다.
눈도 적당히 왔으면 좋겠다. 특히 도시에서 그렇다. 그러나 바램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 하늘이 인간의 사정을 봐주던 때가 있었던가? 비도 적당히 오면 좋으련만 한번 내리면 퍼붓는다. 바람도 그렇다. 한번 불면 나무 뿌리를 뽑아 버린다. 속수무책이다. 단지 그런 줄 알 뿐이다. 자연무상이다.
눈이 와서 좋은 사람이 있음을 알았다. 농촌에서는 농작물을 해갈 시켜 주는 좋은 눈이다. 그래서 눈이 와서 좋은 날이다. 도시에서는 눈은 반갑지 않다. 눈이 녹을 때는 차도 더러워지고 도시도 더러워진다. 이렇게 눈을 보는 눈은 극과 극이다.
도시에서 눈은 더이상 낭만이 아니다. 초분을 다투는 도시에서 눈은 장애요인이다. 그러나 누구에겐가는 필요한 눈이다. 그런 눈은 내리지 말라고 해서 내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기가 탁해지면 구름이 되고, 구름은 조건에 따라 비나 눈이 된다. 무상한 자연현상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하늘이여, 눈을 내리려거든 내리소서!
2021-01-0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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