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의 정년은 언제일까?
잘 쓰던 모니터가 갑자기 나오지 않았다. 한번 조짐이 있었다. 마치 페이드아웃(F.O)하다 멈춘 것처럼 흐릿하게 나오는 것이었다. 전원을 껐다 켜면 다시 살아날까? 그러나 아예 화면이 안 나오고 시커먼 상태가 되었다. 죽은 것은 아닐까? 혹시 살려볼까 해서 AS센터에 갔다. 수리기사가 보더니 메인보드가 나갔다고 한다. 수리하면 6만원 들것이라 했다. 그러나 오래 되어서 엘이드(LED) 등 어떤 문제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수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되었다. 살려 내서 쓴다고 해도 오래 갈 것 같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산 지 육칠년 되었으면 많이 쓴 것 같다. 요즘 가전제품은 옛날과 달리 수명이 있나 보다. 예전에는 한번 사면 십년 이상 사용했다. 그렇게 되면 가전업체는 망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신제품으로 자주 바꾸어 주어야 회사가 제대로 돌아간다. 그래야 직원들 월급도 주고 신제품 개발여력도 생긴다. 브라더미싱은 백년 지나도 쓸 만 하다고 한다. 이렇게 제품이 망가지지 않으면 기업은 망할 것이다. 브라더미싱 만드는 회사는 오래 전에 망했다. 그러나 망가지지 않는 미싱은 오늘날까지 잘 사용되고 있다.
모니터를 새로 사기로 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고쳐서 쓰느니 조금 보태서 새 것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27인치 커브형 모니터는 18만원 했다. 칠팔년 전 동급사양의 모델은 30만원대였다.
현재 책상에는 모니터가 두 대 있다. 설계하려면 두 개가 필요하다. 여러 화면을 띄어 넣고 동시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노트북까지 더하면 모니터가 세 개 된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주식한다고 오해할지 모른다.
처음 이 일을 할 때 모니터 하나 가지고 시작했다. 그것도 17인치였다. 17인치 모니터를 반으로 하여 왼쪽 반은 회로도를 띄우고, 오른쪽 반은 PCB캐드를 띄웠다. 그때 누군가 모니터 두 개를 활용하면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조언을 받아들여 모니터 두 대로 작업했다. 효율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모니터 사이즈는 자꾸만 커져 갔다. 마침내 27인치 커브형 두 대를 갖추었다. 커브가 두 개이다 보니 균형이 맞는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화면은 더 밝아지고 가격은 대폭 내려 갔다. 사업 초창기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2005년 사무실 기기를 장만했을때 모니터는 브라운관 타입이었다. 무게도 무거웠고 가격도 비쌌다. 요즘은 볼 수 없다. 간혹 옛날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다.
전자기술은 일년이 멀다하고 바뀐다. 십년이면 조선시대나 다름없다. 스마트폰 등장을 보면 세상이 얼마나 광속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더구나 전자공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실감한다.
나는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기약이 없다. 기업 같으면 정년퇴직 연령이 지났다. 공직이라면 나갈 때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달리 마땅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개발자로 산 경험이 있다. 개발과정의 일부분을 맡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에 키워드 광고할 때 “귀사의 제2연구소가 되어 드리겟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늘 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이는 속일 수 없다. 거래처 사람들은 나이 든 것을 의식하는 것 같다. 상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이삼십대가 대부분이다. 이제 이순이 넘은 초로의 사람이 나타났을 때 당혹해 하는 것 같다. 그럴 때는 미안한 느낌이 든다. 그들의 상대가 되기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것 같기 때문이다.
하고 있는 일은 메일과 전화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래서 고객과 대면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오래 함께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사업을 시작한 초창기때는 사십대였기 때문에 덜 부담스러웠으나 이제 갈수록 부담스러워진다. 이 일의 정년은 언제일까?
2021-01-0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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