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와나선원

책장을 정리하다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 8. 12:27

책장을 정리하다가

 

 

책장을 정리하다가 액자를 하나 발견했다. 수계동기와 사진 찍은 것이다. 201811월 담마와나선원에서 수계를 받고 빠알리법명을 받았다. 액자로 나누어 주었는데 잊고 있다가 책장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것이다.

 

 

그날 수계하는 날 모두 흰색 옷을 입고 오라고 했다. 모두 아홉 명이 수계 받았는데 나만 빼고 모두 흰색 상의 티를 입고 왔다. 혼자 검정색 양복을 입고 온 것이다. 이는 테라와다불교에서 대단히 실례되는 일이다.

 

부처님당시부터 재가자는 흰색 옷을 입었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재가의 흰옷을 입은 저희들도 때때로 이 네 가지 새김의 토대에 관하여 마음을 잘 정립하고 있습니다.”(M51.6)라는 구절로도 알 수 있다.

 

가사는 출가자의 상징이고 흰옷은 재가자의 상징이다. 테라와다 불교국가에서는 재가자들이 사원에 갈 때는 흰옷을 입는다. 스리랑카 웨삭행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인도성지 순례 때도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테라와다 불교 재가신자들은 대부분 흰옷을 입었다.

 

2018년 수계법회 때도 흰옷을 입었다. 그러나 이런 엄중한 사실을 망각하고 검은 옷을 입고 갔다. 사전에 보낸 메시지를 간단히 무시한 것이다. 그런 과보가 사진에 나타나 있다.

 

 

수계법사는 빤냐와로 스님이다. 한국테라와다불교 이사장을 지낸 바 있다. 스님은 2009년 한국테라와다불교 창립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국스님으로 본래 한국에서 출가했으나 도중에 태국으로 건너 갔다. 그곳에서 계를 받고 태국스님이 된 것이다. 태국에서 삼장법사 지위까지 얻은 스님이다. 그래서 삼장법사 스님이라고도 한다.

 

아홉 명의 수계동기는 각자 법명을 부여받았다. 법명을 받을 때는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받았다. 재가에서는 생물학적 나이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자가 되면 뒤바뀐다. 이는 수마나의 임종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수마나는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딸이다. 그녀는 아버지 보다 먼저 죽었다. 장자는 딸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내 사랑하는 수마나야,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다. 이에 딸은 아우여, 그대는 무엇을 말하는가?”라며 물었다. 장자는 딸이 임종에 이르자 정신이 혼미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딸이 아버지에게 아우여라고 한 것은 딸의 과위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장자는 수다원이었지만 딸은 사다함이었다. 우스개 소리 같은 이야기이다. 재가에서는 과위가 높은 자가 더 상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출가에서는 이런 법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출가에서는 먼저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여 상위가 아니다. 구족계를 먼저 받은 자가 상위가 된다. 법랍이 높은 자가 상석에 앉을 수 있음을 말한다. 과위하고는 무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이 재가와 출가의 차이라 볼 수 있다.

 

201811월 한날 한시에 수계를 받았다. 계첩에는 날자에 이어 분과 초까지 기록되어 있다. 세명을 한조로 하여 세 번 시차가 적용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마치 세 쌍둥이를 시차를 두고 세 번 출산한 것과 같다. 그래서 아홉 명의 수계동기는 한날 한시에 태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아홉 명의 수계 동기의 법명은 무엇일까? 차례로 마한띠(mahanti), 수마띠(sumati), 담마기리(dhammagiri), 담마다사(dhammadāsa), 사띠마(satimā), 아니띠(anīti), 하사나(hasana), 산또사(santosa)이다.

 

담마다사라는 법명을 받았다. 법의 거울이라는 뜻이다. 가르침을 액면 그대로 비추라는 의미로 본다. 굳이 한자어를 적용한다면 법경(法鏡)이 될 것이다.

 

아홉 명의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그러나 모임은 거의 없는 편이다. 카톡방을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대부분 침묵모드이다. 그 중에 두세명 정도 교류가 있을 뿐 소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얼굴을 잊어버릴 정도가 되었다. 이는 테라와다불교의 한계일까?

 

서로 소통이 안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찰순례 등 외적인 모임이 거의 없다 시피한 것도 이유가 된다. 법회에서만 모이고 흩어지는 식이다. 비공식적 모임이 없다 보니 자연히 소통도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자랑스러운 동기들이다. 좋은 인연이다.

 

 

2021-01-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