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를 실천하는 정평불이 자랑스럽다
무소유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무소유(無所有)라는 말은 법정스님이 최초로 만들어낸 말이라고 한다. 서가에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책도 있다. 책에서 무소유에 대하여 가장 설명한 것은 난초이야기일 것이다.
스님이 언젠가 외출했는데 난초를 뜰에 내려놓은 것을 깜박 잊었다. 외출 중에 햇볕에 시들 것을 염려하여 안절부절못한 것이 글에서 보인다. 이에 대하여 스님은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무소유, 25쪽)라고 써 놓았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소유하고자 한다. 물질만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도 소유하고자 한다. 내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유에는 물질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집착도 소유가 되는 것이다. 법정스님이 난초화분을 가진 것도 소유한 것이 되지만, 난초가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소유하는 마음이 된다.
소유로 인해 집착이 생긴다. 집착이 생기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는 십이연기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법정스님이 무소유라는 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했던 것은 소유함으로 인한 괴로움이다.
무소유는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 것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정신적 고뇌로 가득하다면 소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소유는 물질적 소유뿐만 아니라 정신적 소유도 놓아 버려야 한다. 흔히 말하는 탐, 진, 치와 같은 것이다.
무소유는 반드시 출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재가자에게도 무소유의 삶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모두 소유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무소유정신만큼은 잃지 말자는 것이다. 특히 재가불교운동하는 단체에서 그렇다.
정의평화불교연대, 줄여서 정평불이라고 한다. 정평불에서 사무총장직을 만 2년 맡은 바 있다. 정평불에는 하나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아직도 사무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독립된 공간이 없음을 말한다. 2011년 창립이래 지금까지 10년 동안 사무실 없는 단체를 운영해 왔다. 이런 케이스는 드물다.
어느 단체이든지 조금만 지나면 돈을 모아서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고자 한다. 재가불교단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소유하는 순간 그 순간부터 괴로움이 시작된다.
독립된 공간을 확보할 때 목돈이 들어간다. 비용을 누군가 부담해야 한다. 큰 돈을 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영향력이 확대된다.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또한 매월 관리비와 임대료가 들어 가야 한다. 이 모든 비용 또한 회원몫이다. 여기에 상근자까지 있게 된다면 월급을 주어야 한다. 이 모든 비용 또한 회원이 부담해야 한다.
소유해서 이로운 점도 있을 것이다. 독립된 공간에서 일하면 조직이 더 발전할 수 있고 더 커 나갈 수 있다. 또한 독립된 공간이 있다면 각종 강의나 강연, 교육을 할 수 있다. 회원들에게는 구심점이 될 수 있고 자부심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유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소유함으로 인하여 비용문제가 발생된다. 임대료, 관리비, 상근자 급여 등 고정적 지출이 발생된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회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가능하지 않으면 외부에 의지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 그 사람의 영향력이 확대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보수화 되는 단체가 있었다.
외부에 의지하는 순간 초심이 사라질 수 있다. 처음 가졌던 순수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생존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단체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차리라 무소유로 있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재가불교단체에서 반드시 사무실 등 독립적인 공간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빌어 쓰는 방법이 있다.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면 내것처럼 사용할 수 있다. 사무총장으로 있을 때 그런 방법을 사용했다. 남의 법당을 내 법당처럼 사용한 것이다. 마치 전세사는 자가 자신의 집으로 알고 사는 것과 다름없다.
불교계에는 스타스님들이 있다. 방송으로 뜬 스님들을 말한다. 이들 스타스님들 대부분은 소유하고 있다.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선원을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W스님도 그랬다. 최근에는 K스님이 그렇다.
K스님은 방송을 타더니 유명해졌다. 나중에 보니 강남에 선원을 만들었다. 그 스님은 법문중에 부처님과 스승을 모시려면 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말한 그대로 된 것 같다.
불사를 하여 교세를 확장해 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너도나도 소유하고자 한다면 어느 스님이든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토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부처님 제자들은 무소유로 살았다. 이는 테리가타에서 로히니 장로니의 시로도 알 수 있다.
“마을에서 떠날 때에
아무것도 살펴보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Thig.282)
이 게송은 로히니 장로니가 소녀시절에 아버지와 대화할 때 한 말이다. 장로니는 “창고에도 항아리에도 바구니에도 자신의 소유를 저장하지 않고, 줄 준비된 것만을 구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Thig.283)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완전한 무소유를 실현할 수 없다. 그러나 무소유정신만큼은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요즘 교회에서 ‘가나안운동’이 일고 있다. 가나안이라는 말은 ‘교회 안 나가’라는 말을 거꾸로 한 것이라고 한다. 교회를 갖지 않는 교회를 말한다. 그래서 빌어서 예배를 본다. 식당 등에서 예배를 보는 것이다. 불교계라고 해서 이런 운동을 하지 말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법회가 반드시 자신이 소유한 공간에서 하라는 법은 없다. 식당에서도 할 수 있고 남의 법당에서도 할 수 있다. 반드시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하여 정평불 공동대표 이희선 선생은 정평불 카페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재가불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절 운영을 본딸 필요가 있을까요? 절 없이, 스님 없이 불사 없이, 각자 생활하면서 주말에 공간을 빌려서 법회하고 차담하고 헤어지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요? 저는 절 없이, 스님 없이, 불사 없는 현재의 정평불 법회 형태가 좋습니다.”
이희선 선생의 제안에 적극 동의한다. 재가불교단체라고 해서 반드시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유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유함으로 인한 장점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소유함으로 인한 문제점도 노출된다. 특히 비용에 대한 것이 크다. 임대료, 관리비, 상근자 급여 등을 좀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곳에 활용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정평불 사무총장 2년 하면서 번아웃되었다. 소임을 맡는 동안 완전연소하려 했기 때문이다. 회비내는 회원을 100명이상 확보한 것은 구성원들의 도움이 컸다. 월 회비 만원 이상 내는 회원이 백명이 넘었을 때 회비가 축적되었다. 이런 돈을 독립된 공간을 소유하고 매월 고정비로 내는 것은 아까운 것 같다. 이희선 공동대표의 말 대로 소유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공간을 소유한 것 없이도 일년에 한두차례 열리는 눈부처학교와 정평포럼을 개최했다. 학교나 공공시설 등을 활용한 것이다. 매달 열리는 정평법회는 남의 법당을 이용했다. 매년 한차례 열렸던 수련회는 절을 빌어 활용했다. 이렇게 소유하지 않고서도 행사를 치루어 내었다.
소녀 로히니는 무소유를 실천하는 수행자가 사랑스럽다고 했다. 이희선 선생은 공간을 소유하지 않는 정평불이 좋다고 했다. 대부분 모임이나 단체가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정평불에서는 창립이래 독립적 공간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정평불이 자랑스럽다.
2021-01-1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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