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당첨보다 어려운 희유한 만남
죄짓고는 못사는 것 같다. 우연한 만남이 그렇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죄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얼어 버릴 것이다.
오늘 오전 사람을 만났다. 정평불 고문 서광태 선생을 사무실 복도에서 마주친 것이다.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서로 놀랬다. 현실적으로 도저히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전에 서로 약속을 하면 모를까 이렇게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사는 지역이 다른 사람을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칠 확률은 로또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화장실 가다가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알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우연도 없을 것이다. 서광태 선생은 맞은편 사무실에 볼 일 보러 왔던 것이다.
천재일우 또는 일기일회라고 한다. 로또 보다 더 어려운 만남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 일을 마치는 대로 사무실로 와 달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커피 대접을 하고자 한 것이다.
일이 오래 걸린 것 같다. 서광태 선생은 도중에 사무실에 왔다. 준비한 커피를 대접했다. 원두콩을 절구에 으깨어 만든 이른바 ‘절구커피’이다. 마치 귀중한 손님 모시듯이 맞이했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다.
서광태 선생과 30여분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들었다. 현직 의사답게 코로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난 1월 줌으로 열린 정평법회에서 못다한 이야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중에서 ‘탈성장’ 이야기가 꼽혔다.
서광태 선생은 책을 많이 읽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상식도 풍부하고 아는 것도 많다. 서광태 선생이 생각하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어떤 것일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인류는 이미 돌아오지 않은 강을 건넌 것이다. 이제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미래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이에 대하여 탈성장이라고 했다.
이제까지 성장위주로 살았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음에도 무한성장할 것처럼 살았다. 무한성장은 무한경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결과 점점 자원은 고갈되고 지구환경은 악화되어 갔다. 기후변화와 같은 위기의 시대에 코로나가 온 것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것이 올스톱되다시피 했다. 흥청망청 세상이 영원할 것 같았는데 폭격 맞은 것처럼 초토화되었다. 공항에는 놀러 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으나 썰렁해진 것을 보면 분위기를 실감한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를 원망해야 할까? 코로나에 감사해야 할까?
자원과 환경과 기후 관점에서 본다면 코로나에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 폭주하는 성장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서광태 선생은 탈성장이라는 말을 했다. 이제는 성장패러다임에서 탈성장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함을 말한다.
어떻게 해야 탈성장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서광태 선생은 부처님 가르침을 들었다. 코로나 시기에 부처님 가르침처럼 잘 들어 맞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욕망을 여의는 가르침을 설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멈추라고 했다. 이는 “앙굴리말라여, 나는 언제나 일체의 살아있는 존재에 폭력을 멈추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살아있는 생명에 자제함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M86)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부처님은 멈춘 분이다. 그래서 “나는 멈추었다.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 말은 “그대는 멈추어라.”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범부들은 도무지 멈출 줄 모른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
인간의 욕망과 소유가 결합되면 멈출 줄 모른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무한질주 하는 것과 같다. 그 끝은 어디일까? 파멸이다. 인류는 무한욕망으로 무한성장을 추구하다 보니 점차 파멸로 가는 도중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하여 급제동이 걸렸다. 이렇게 본다면 고마운 코로나이다.
부처님은 멈추라고 했다. 멈추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 통찰해야 한다. 멈춤과 통찰이다. 이를 사마타와 위빠사나라고 한다. 욕망을 멈추려면 수행해야 함을 말한다.
요즘 빠알리 ‘팔정도경’(S45.8)을 매일 암송하고 있다. 삼마사마디(정정)에서 “비베까장삐띠수캉(vivekajaṃ pīti-sukhaṃ)”이라는 말이 있다. 초선정에 있는 말이다. 이 말은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이라고 번역된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의는 것이다. 욕망을 내려 놓았을 때 기쁨과 행복이 올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세상사람들은 많이 소유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은 정반대이다. 소유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욕망을 여의었을 때 행복은 욕망으로 소유했을 때의 행복과 비할 바가 아니다. 질적으로 다른 행복이다. 그래서 ‘삐띠수캉’이다. 기쁨이 함께 하는 행복이다.
꼭 성장해야만 하는가? 꼭 경제가 성장해야만 하는가? 성장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일까? 좀 덜 먹고 좀 덜 소비하면 안되는 것일까? 이번 코로나시기의 교훈을 망각한다면 코로나보다 더 큰 것이 올지 모른다. 그때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릴지 모른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누구도 코로나를 예측하지 못했듯이,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그 무엇이 갑자기 올지 모른다.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코로나가 주는 메세지를 알아서 이제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서광태 선생과 우연한 만남을 가졌다. 마치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진주발견하기 보다 더 어려운 만남이다. 로또 당첨보다 더 확률이 낮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커피를 대접하고자 했다.
작은 사무실에 방문해 주어서 커피타입을 가졌다. 그리고 해박한 지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구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의 삶과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이다. 코로나가 현실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처럼 자원과 환경, 기후가 우리 삶에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느 날 코로나가 도둑처럼 스며 들었듯이 더 큰 것이 올지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니다.
죄짓고 살 수 없다. 언젠가는 과보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조건이 맞아 떨어졌을 때 결과로 나타난다. 수많은 인과 수많은 연이 모여서 현실이 된다. 우연히 사람을 만나는 것도 수많은 인과 연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연이라고 말 할 수 없다. 만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만난 것이다. 오늘 오전 서광태 선생과의 만남이 그렇다. 로또당첨보다 어려운 희유한 만남이다.
2021-01-2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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