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담마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아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 30. 07:51

담마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아기


지금은 코로나시기이다. 미증유의 전세계적 재난을 맞이하여 금요니까야 강독모임에서도 줌을 이용한 모임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1 24일 전재성 선생 귀국을 맞이하여 스타필드 네팔식당에서 도현스님, 전재성 선생, 장계영 선생, 그리고 이병욱이 함께한 4인 모임에서 줌을 이용한 원격모임 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 첫번째 모임이 1 29일 금요일 저녁에 열렸다.

줌은 이제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 기간 중에는 줌 외 달리 마땅한 방법이 없다. 전사회적으로 줌을 이용한 모임을 갖는 것은 이제 대세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하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주변환경에 재빨리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진화하기까지 한다. 처음 접했을 때와 지금은 차이가 크다. 나도 서서히 적응하고 진화해 가는 것 같다.

 

1 29일 금요모임은 저녁 7시부터 시작되었다. 서고모임에서와 같이 삼귀의와 오계를 하며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10분가량의 입정시간은 생략되었다. 나중에 모임을 마칠 때는 경을 낭송했는데 자애경 대신에 축복경을 합송했다.

모두 9명이 입장했다. 낯익은 얼굴들이다. 거의 반년만에 얼굴을 본다. 비록 대면모임은 아니지만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보는 것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스마트폰 카메라는 약간 어글리하게 나오는 것 같다. 아마 거리와 각도 때문일 것이다. 이에 반하여 노트북은 안정적이다.

오랫만에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니 대면모임과 다를 바 없다. 흐릿한 영상과 불투명한 목소리이긴 하지만 분위기는 이전 모임과 다를 바 없다.

 


두 개의 경을 독송했다. 하나는 이전 모임에서 했던 것이지만 복습차원에서 한번 더 독송했다. 또 하나는 수행자커뮤니티에서 도반과의 원만한 관계에 따른 정신적 향상에 대한 것이다. 두 경 모두 다섯 가지 법수가 나온다.

첫번째 경은 감각적 쾌락에 빠짐에 대한 경(K
āmasutta) (A5.7)이다. 경에서는 감각적 쾌락에 빠진 것에 대하여 아기의 비유를 들었다. 이는 아주 어린 아이, 유약한 젖먹이가 유모의 부주의로 나무 조각이나 돌조각을 입에 넣으면, 유모는 그것을 재빨리 파악하고, 재빨리 파악해서 재빨리 꺼내야 할 것이다.” (A5.7)라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이 아기의 비유를 든 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에 대하여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데 유모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연민으로 그렇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A5.7)라고 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연민은 어떤 것일까? 사무량심에서 연민을 뜻하는 까루나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해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라고 바라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지금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어떤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젊은 사람들은 철부지 어린 아이와 같다. 연민을 가졌다면 부처님 가르침을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이야말로 감각적 쾌락의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착하고 건전한 것에 대하여 믿음을 갖추고, 착하고 건전한 것에 비추어 부끄러움을 알고, 착하고 건전한 것에 대하여 비추어 창피함을 알고, 착하고 건전한 것을 향하여 정진을 하고, 착하고 건전한 것에 관하여 지혜를 갖추는 한,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 수행승에 대하여 이제 근심이 없다. 그 수행승은 자신의 수호자로서 더 이상 방일하지 않기 때문이다.”(A5.7)

 

 

부처님은 자신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다섯 가지 법을 말씀하셨다. 믿음, 부끄러움, 창피함, 정진, 지혜를 말한다. 이는 이 경이 다섯 가지 법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칠성재에서 보시와 지계가 빠져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배움대신에 정진이 들어가 있다.


누구도 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가르침과 자신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다. 가르침을 모르면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삶이 되기 쉽다. 눈과 귀 등으로 오욕락을 즐기는 것이다. 이는 재난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젖먹이 아기가 부주의로 나무조각이나 돌조각을 삼키는 것으로 비유했다.

감각적 쾌락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경에서는 저속, 중간, 고상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고상한 취미를 갖는 것도 감각적 쾌락에 해당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남녀노소 빈부귀천 모두 감각적 쾌락에 열중함을 말한다. 즐기는 삶이다. 특히 젊은 시절은 즐기는 시절로 본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즐기는 삶은 불행으로 가는 길이다. 쾌락을 즐겨서 행복에 이르고자 하지만 결국 고통으로 귀결된다. 이를 아기가 부주의로 나무조각이나 돌조각을 삼키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른다. 무엇이든지 먹을 것으로 본다. 아무것이나 집어 입에 넣는다. 걸음마 하는 아기는 차도에 뛰어 들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감각적 쾌락이 그렇다.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면 재난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어린 아기와 같은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와 같다. 그래서 자신이 수호되지 않는다.

자신을 보호하려면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먼저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내야 한다. 가르침에 대해 반신반의하면 수호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이 세상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같다고 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없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나머지 두 개는 정진과 지혜이다. 전재성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정진과 지혜는 항상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정진은 위리야를 번역한 말로 힘의 뜻도 있다고 한다.

지혜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강한 힘을 필요로 한다. 불선법과 선법을 구별하여 불선법이면 끊어 버리고 선법이면 증장시키는 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각적쾌락이 재난임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적 지혜이다.

상윳따니까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빠삐만(악마)은 늙은 브라만으로 변신하여 콜록거리면서 젊은 수행자를 유혹한다. 빠삐만은존자들은 젊고 머리카락이 아주 검고 행복한 청춘을 부여받았으나 인생의 꽃다운 시절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지 않고 출가했습니다.”(S4.21)라고 말한다. 이어서존자들은 인간의 감각적 쾌락을 즐기십시오. 시간에 매인 것을 좇기 위해 현재를 버리지 마십시오.”라고 말한다. 이에 새내기 수행승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성직자여, 우리들은 시간에 매인 것을 좇기 위해 현재를 버리지 않습니다. 성직자여, 우리들은 시간에 매인 것을 좇기 위해 현재를 버리지 않습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시간에 매이는 것이고, 괴로움으로 가득 찬 것이고, 아픔으로 가득 찬 것이고, 그 안에 도사린 위험은 훨씬 더 큰 것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S4.21)


잘 배운 부처님 제자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았다. 부처님 가르침을 늘 새기고 있던 제자는 감각적 쾌락이 재난이 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믿음, 부끄러움, 창피함, 정진, 지혜 이 다섯 가지는 감각적 재난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 준다. 이는 가르침이 우리를 보호해 줌을 말한다. 테라가타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가르침은 가르침을 따르는 자를 수호하고
잘닦여진 가르침은 행복을 가져온다.
가르침이잘 닦여지면, 공덕이 있다.
가르침을따르는 자는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Thag.303)


어제 저녁 처음으로 온라인 줌으로 금요모임을 가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덜 어색했다. 사람들은 대단히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다. 대면모임에서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으나 그래도 흐릿하고 희미한 영상과 음성으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장계영선생에게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흔쾌히 동의해 주신 전재성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참석한 모두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어느 날 어느 때 줌모임이 있었지만 기록해 놓지 않으면 잊힌다.

다음 모임은 2 26일 금요일에 열린다. 5인 이상 집합금지명령이 풀리면 대면모임이 된다. 그러나 이미 줌에 적응해 있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도반들도 줌으로 참석가능하리라고 본다. 이번 금요니까야강독모임에서는 줌모임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그 위력을 확인하는 것이 되었다.


2021-01-3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