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19 자비의 식당순례 10탄, 고독한 식당순례자가 맛본 부대찌게
코로나19를맞이하여 식당순례를 하고 있다. 식당자영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식당이 대상이다. 명학역과 만안구청과 안양아트센터를 잇는 삼각벨트안에 있는 수많은 식당을 한번씩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한번 방문한 식당은 다시는 가지 않는다. 코로나19시기에 어려움을 겪는 식당이 많아서 한번씩 방문하려면 두 번 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식당순례한 것에 대하여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이름하여 ‘코19 자비의 식당순례’라는 거창한 이름이다. 일인사업자가 홀로 식당에 가서 밥 한끼 먹는 것이 도움이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곳만 가는 것 보다, 단골집만 가는 것보다 여러 집을 한번씩 가는 것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어느 법우가 글을 보더니 ‘고독한 미식가’가 연상된다고 했다. 고독한 미식가는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 먹방채널이다. 먹방채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노가시라 고로 역의 마츠시게 유타카가 출연하는 ‘고독한 미식가’는 종종 즐겨 본다. 사무실 주변 식당에 홀로 가서 식사하는 모습이 고독한 미식가의 이노가시라 고로가 연상되었던 모양이다.
고독한 미식가는 어떤 먹방채널일까? 검색해 보았다. 본래 만화로 먼저 나온 것이다. 나중에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프로이다.
드라마는 특징이 있다. 먼저 주인공이 갑자기 허기를 느낀다. 그리고 나서 주변 식당을 찾아 나선다. 그것도 누구나 가는 그 동네의 평범한 식당이다. 특히 혼자 먹을 수 있는 곳이 많다. 허름한 곳이지만 특색 있는 식당이 대상이다. 마침내 식당을 발견하면 “고래다(이거다)”라며 들어간다. 식사가 나오면 한입 크게 물고 “요시(좋아)”라고 말한다.
코19자비의 식당순례가 마치 고독한 미식가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여러가지 비슷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가장 비슷한 것은 ‘혼자’라는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은 1인 무역회사의 대표이자 독신주의자이다. 다만 일인사업자라는 데 있어서 일치한다.
식사할 때는 늘 혼자 먹는다. 마찬가지로 사무실 주변 식당순례 할 때도 혼자서 먹는다. 고독한 미식가를 의식하면서 오늘 점심 때 거리로 나가 보았다. 이른바 목이 좋은 삼각벨트를 벗어나 바깥쪽으로 나갔다.
주변을 보니 불황이 역력하다. 문을 닫은 곳이 종종 보인다. 24시간 영업하는 곳은 9시까지 밖에 하지 못한다. 이른바 집합금지 업종에 해당되는 노래빠 문앞에는 시에서 발행한 고지문이 붙어 있다. 읽어 보니 2020년 12월 8일부터 시작되었다. 오늘이 2월 5일이니 거의 두 달 제대로 영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처럼 대로 건너편 이면 도로에 들어가 보았다. 이른바 역세권 상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주택가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며 두리번 거리다가 ‘부대찌게’집을 발견했다.
부대찌게 식당은 “이런 곳에서도 장사가 될까?”라고 의문이 날 정도로 한적한 곳에 있다. 간판보다도 현관에 붙어 있는 “배달의 민족 배달됩니다”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배달에 승부를 건듯 보인다.
코로나시기에 식당순례 할 때는 묻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장소를 묻지 말아야 하고, 메뉴를 묻지 말아야 하고, 맛을 묻지 말아야 하고, 가격을 묻지 말아야 한다. 맛집 순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식당이든지 한번씩 가 보아야 하기 때문에 네 가가지를 묻지 않는다.
식당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생각보다 꽤 넓었다. 점심대목을 맞이하여 5분의 2는 찬 듯하다. 혼자 갔기 때문에 구석에 자리 잡았다.
메인메뉴인 부대찌게를 시켰다. 주문한지 채 2-3분도 안되어서 미리 준비된 판을 가져왔다. 중국요리집에서 요리용으로 사용되는 불판이다. 업소에서 흔히 보는 넓직한 냄비와 다르다. 시커멓고 넓어서 마치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것 같다. TV에서 중국식당을 보면 기름에 튀기거나 볶는데 사용하는 불판을 말한다. 이것도 차별화 전략일 것이다.
부대찌게 재료는 다양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햄과 소시지를 잘라 놓은 것이다. 부대찌게를 부대찌게 답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떡살이 보인다. 묵은 김치도 있고 당면도 보인다. 마늘 다진 것도 한스푼 들어가 있다.
부대찌게도 비법이 있을 것이다. 끓이고 난 다음 보니 소고기 다진 것이 보인다. 이것이 이 집의 포인트임을 알 수 있었다. 단지 햄과 소시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고기 다진 덩어리가 있어서 맛이 더 있는 것 같다.
부대찌게는 얼큰했다. 매운 맛과 짠맛이 조화를 이루어 속이 확 풀어지는 듯하다. 양이 많은 것 같다.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먹을 수 있는지 의문했으나 결국 다 먹게 되었다. 밥도 다 비웠다. 다만 무우채, 콩나물, 어묵과 같은 밑반찬은 조금 남겼다.
식당에서는 홀로 오는 손님을 받으면 손해일 것이다. 점심이 대목인데 그래도 한테이블을 채울 수 있는 손님이 환영받는다. 이런 이유로 홀로 식사하기가 부담스럽다. 테이블을 차지 했으니 잘 먹어 주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 밥과 찌게를 깨끗이 비웠다. 이렇게 하기까지 아침을 먹지 않은 것이 효과를 보았다.
식당순례 갈 때는 아침을 비워야 한다. 아침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남길 수 있다. 이는 식당순례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 식당 주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남김없이 맛있게 먹어 주는 손님이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 놓친 것이 있다. 그것은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이다. 이 말을 해 주어야 더욱 더 힘을 받을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 이 말은 참 잘 만든 말 같다. 외로운 미식가가 아니라 고독한 미식가라고 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 홀로 있어서 외롭기도 하고 고독하기도 하다. 외롭다고 한다면 타인에게 의지하고 푼 것이다. 그러나 고독하다고 하면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고독한 미식가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법우는 코19 자비의 식당순례에 대한 글을 보고서 이노가시라 고로의 고독한 미식가가 연상된다고 했다. 그러나 미식가는 아니다. 먹는 것을 즐기며 맛집을 찾아 순례하지 않는다. 맛에 대한 갈애 때문이다.
맛에 대한 갈애는 모든 것의 근원이 된다. 이는 디가니까야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D27)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성겁기에 어떤 중생이 땅조각을 맛 보았을 때 “땅조각을 손으로 맛보자 그것에 매료되어 갈애가 엄습했다.”(D27.7)라고 했다. 어떻게 갈애가 엄습했을까? 이는 “혀 끝에 놓인 것만으로도 칠천 개의 미각신경이 퍼져나가 마음에 드는 상태가 되어 갈애가 생겨났다.”(Smv.865)로 설명된다.
한번 맛에 대한 갈애가 생겨나면 맛의 노예가 되기 쉽다. 그 맛을 못잊어서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불평등은 맛에 대한 갈애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시기를 맞이하여 식당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장소불문, 메뉴불문, 맛불문, 가격불문하고 사무실 주변 식당을 순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게 잘 먹었어도 두번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 아직 가 보아야 할 식당이 많기 때문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고독한 식당순례자’라 해야 할까?
2021-02-0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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