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절제

코19 자비의 식당순례 11탄, 포차식당의 돼지국밥

담마다사 이병욱 2021. 2. 13. 15:11

코19 자비의 식당순례 11탄, 포차식당의 돼지국밥

 

 

오늘은 무얼 먹어야 할까? 고독한 미식가처럼 거리를 배회했다. 만안구청과 명학역, 안양아트센터 벨트 안에 있는 식당을 찾아서 두 번 돌았다. 마침내 한 곳에 멈추어 섰다. 간판을 보니 논산훈련소 포차이다.

 

식당이름이 왜 포차일까? 포장마차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가게가 있는 포차식당이다. 포차라는 말이 들어가서일까 술 손님들이 즐겨 찾는 것 같다. 명학역 먹자골목 안에 있는 포차집으로 들어 갔다.

 

설 연휴 사흘째이다. 어제 설날에는 집에 있었다. 오늘은 밖으로 나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향하는 곳은 사무실이다. 일인사무실을 놀려 둘 수 없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풀가동해야 한다. 하루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집에 있을 수 없다. 눈만 뜨면 일어나서 부리나케 달려오는 곳이다.

 

오전에는 밀린 일을 했다. 업무와 관련된 일은 아니다. 예전에 쓴 글을 다운 받아 놓았다. 2017년에 쓴 글이다.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으로 진흙속의연꽃카테고리에 있는 것이다.

 

블로그에 올려 놓은 글을 모두 저장해 놓고자 한다. 15년 동안 쓴 글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이를 별도로 저장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다운받아 저장하고 있다. 앞으로 다운 받아야 할 카테고리가 많다.

 

설날 다음 날이어서 인지 식당가에는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더 많다. 그럼에도 문을 연 곳이 있다. 포차식당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이 집을 몇 년 전에 와 본 적이 있었다. 고객을 접대한다고 데리고 간 곳이다. 19 자비의 식당순례를 맞이하여 이번이 두 번째이다.

 

 

순대국밥이 주종목이다. 그러나 돼지국밥도 있고 내장국밥도 있다. 특이하게도 술국이라는 메뉴도 있다. 모두 7천원이다. 식당은 크지 않다. 테이블도 6인용 네 개 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만족한 것은 일인용 테이블도 있다는 것이다. 창측에 있어서 창을 바로 보고 앉아 있게 되어 있다. 혼밥하는 사람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 저녁에 혼술하는 사람도 애용할 것 같다.

 

늘 혼자 먹기 때문에 고독한 식당순례자가 되었다. 테이블을 차지 하고 있으면 늘 미안한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혼밥용 식탁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에 주인의 탁월한 영업감각을 느낀다. 그래서인지점심대목을 맞이하여 테이블에 손님이 모두 다 차 있다.

 

주문을 받았다. 후덕한 모습의 여주인이 무엇으로 하겠는지 물었다. 순대국밥과 돼지국밥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먼저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았다. 순대가 들어가면 순대국밥이고, 순대가 들어가지 않으면 돼지국밥이라고 했다. 돼지국밥으로 시켰다.

 

돼지국밥이 나왔다. 뚝배기에 흰육수가 펄펄 끓고 있다. 반찬도 먹음직 하다. 듬성듬성 썰어 놓은 무우는 간이 잘 배어 있어서 씹을수록 맛이 난다. 양파와 고추 를 초고추장으로 버무려 놓았는데 초고추장 특유의 맛이 국밥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돼지국밥은 느끼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새우젓이 한 숟가락 있다. 또한 풋고추를 양념된장에 찍어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반찬은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다. 주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혼밥하는 사람을 받는 것은 손해일 것이다. 한테이블에서 여러 명이 먹어야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홀로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 같다.

 

돼지국밥을 깨끗이 비웠다. 국물하나 남기지 않았다. 경기도용 재난지원금으로 계산했다. 그러고 보니 또 잊어 먹은 것이 하나 있다. 주인에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해야 하나 놓친 것이다. 혼밥하며 반찬 먹은 것 생각하면 말로라도 보답을 했어야 했다.

 

혼밥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상윳따니까야에 나오는 아들고기의 경’ (S12.63)에 대한 것이다. 돼지국밥 안에 들어가 있는 고기를 먹을 때 아들고기를 생각한 것이다.

 

황야를 횡단하는 부부가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사막을 지나갔는데 도중에 먹을 것이 떨어졌다. 부부는 고민했다. 이 사막을 무사히 건너 가려면 먹을 것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경에 따르면, 부부는 우리들의 적은 양식은 다 떨어져버렸지만 아직 황야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우리 모두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귀한 아들을 죽여서 말린고기나 꼬챙이에 꽨 고기를 만들어 아들의 고기를 먹으면서 황야를 빠져나가는 것이 어떨까?”(S12.63)라고 했다.

 

어떻게 아들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그것도 아이를 죽여서 먹이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러나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위하여 희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이를 희생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한 상황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특히 자신의 생명과 관계된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고자 할 것이다.

 

부부는 눈물로 아이를 죽여서 아들고기를 먹었다. 아들고기를 먹은 힘으로 마침내 황야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아들고기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을까? 이는 그들은 놀이 삼아 자양분을 먹을 수 있는가? 그들은 취해서 자양분을 먹을 수 있는가? 그들은 진수성찬으로 자양분을 먹을 수 있는가? 그들은 영양을 위해 자양분을 먹을 수 있는가?”(S12.63)라며 묻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허기가 지면 밥을 먹는다. 매 끼니때마다 밥을 먹는다. 특히 고기를 먹을 때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어떤 이는 술안주가 생각나서 술과 함께 즐길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놀이 삼아(davāya), 취해서(madāya), 진수성찬으로 (maṇḍanāya), 영양을 위해(vibhūsanāya) 먹는다면 윤회의 원인이 된다고 했다. 이는 이미 태어난 뭇삶의 섭생을 위하거나, 혹은 다시 태어남을 원하는 뭇삶의 보양을 위해 존재한다.” (S12.63)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청정도론에 음식에 대한 혐오적 지각의 수행(āhāre paikkūla-saññā)’이 있다. 이는 40가지 사마타명상주제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 어떻게 음식혐오수행을 하는가?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아들고기를 먹는 것처럼 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사막을 건너려고 하는 자가 아들의 고기를 먹는 것처럼, 허영을 여의고 괴로움을 건너기 위해서만 음식을 먹는다.”(Vism.11.26)라고 했다.

 

음식혐오수행은 한마디로 음식먹는 것을 즐기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언급된 대로 놀이 삼아(davāya), 취해서(madāya), 진수성찬으로(maṇḍanāya), 영양을 위해(vibhūsanāya) 먹는다면 음식을 즐기는 것이 된다.

 

술을 마시는 것도 음식을 즐기는 것이 된다. 술을 마시면 취하게 되는데 취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본다. 즐거워서 마셔도 즐기는 것이고, 괴로워서 마셔도 즐기는 것이 된다. 술은 이래 저래 즐기며 마시는 것이 된다. 그래서 취해서(madāya)”마시지 말라고 했다. 오계에서 불음주계를 넣은 것은 음주가 만악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윤회하는 삶의 원인이 된다.

 

즐기는 삶은 윤회의 원인이 된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초전법륜경에서 그것은 바로 쾌락과 탐욕을 갖추고 여기저기에 환희하며 미래의 존재를 일으키는 갈애이다.”(S56.11)라는 집성제의 가르침으로도 알 수 있다.

 

먹는 것, 마시는 것을 즐기면 윤회의 원인이 된다. 계속 윤회하는 삶을 살려거든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것을 즐기는 삶을 살면 된다. 반면 윤회를 끊고자 한다면 음식절제를 해야 한다. 몸에 기름칠하는 정도로 먹으라고 했다. 해탈과 열반을 실현하기 위하여 몸을 유지할 정도만 먹으라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과 고기, 술을 마시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마다 아들고기를 생각하라고 했다. 부부가 아들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먹으면서 외 아들아, 어디에 있니? 외아들아, 어디에 있니?”(S12.63)라며 가슴을 후려치며 먹는 모습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음식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어야 함을 말한다. 즐기면서 음식을 먹으면 세세생생 윤회하는 삶을 살고, 음식절제하면서 먹으면 윤회를 끊는 삶이 된다. 나는 오늘 돼지국밥을 즐기면서 먹은 것인가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 먹은 것인가?

 

 

식당은 시끌벅적 했다. 설날 다음날 대부분 식당이 문을 닫았음에도 문을 연 식당이 몇 개 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무엇보다 포차식당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낮부터 낮술을 든 사람들이 많다. 세 테이블에서 술판이 벌어진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일까 어떤 이는 큰 소리로 떠든다. 밥 먹으면서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소주병이 식탁에 가득하다. 주로 술 손님이 포차식당을 찾는 것 같다.

 

밥을 먹는 동안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코로나 비말(飛沫)’이라도 튀어나온다면 감염되고 말 것이다. 마스크를 벗고 조용히 식사하면 좋으련만 술이 들어가자 술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고독한 식당순례자는 밥을 신속히 먹고 포차식당에서 빠져나왔다.

 

 

2021-02-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