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19 자비의 식당순례 12탄, 쌍둥이 자매의 가정식백반
“혼자 지금 안됩니다. 자리 없어요.” 이 말 한마디에 식당을 나왔다. 점심메뉴로 쭈꾸미볶음비빔밥을 먹고자 식당에 들어 갔으나 이 말 한마디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안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마 점심대목을 맞이하여 나홀로 테이블 차지하는 것이 못마땅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오가 되기 전에 식당에 들어 갔으니 이런 소리 들을 만했다.
식당밖으로 나왔다. 이른바 목이 좋은 식당이다. 명학역에서 가깝고 먹자골목 안에 있기 때문에 자리세도 많이 나올 것이다. 점심 때 손님을 받기 위해 나홀로 손님을 내쫓을 정도라면 코로나시기에도 장사가 잘 되는가 보다.
어디로 가야 할까? 밖에 나오니 추운 날씨에 얼굴이 차갑게 느껴진다. 어디에 가서든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내 돈 주고 먹는 것임에도 나홀로 손님이라 하여 받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점심시간을 피해서 늦게 들어 갔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로를 건넜다. 안양아트센터 앞에 있는 이면도로에 가고자 했다. 그곳에 가정식백반집이 있다. 한끼에 5천원 하는 곳이다. 나홀로 가도 먹을 수 있다. 사무실 주변에 나홀로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부페식 식당은 세 군데 있다. 수백명이 먹을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있고 백명 가까이 먹을 수 있는 곳도 있고 삼사십명 먹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모두 가 본 곳이다. 그러나 아트센터 앞에 있는 가정식백반집은 한번도 가 보지 않았다.
식당이름은 가정식백반이다. 이리저리 보아도 가정식백반이다. 가정식백반이 상호가 될 수 있을까? 계산서에는 다른 이름이 있는 것일까?
가정식백반집을 들어 갈 뻔했다. 아니 들어 갔다가 나왔다. 반년전의 일이다. 지하에 있는 백반집에 들어 갔다가 나온 것이 못내 미안했다. 여주인에게 미안했다. 손님을 상냥하게 맞이하는 것을 뒤로 하고 내빼듯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하라서 어두컴컴한 것이 이유였다. 지하에 있어서 음식 맛도 별로 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백반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5천원짜리 음식이 거기서 거기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들어가자 마자 나왔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몹시 미안했다. 언젠가는 들어 가서 먹기로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 되었다.
코로나19 자비의 식당순례이다. 사무실 근처 식당은 모조리 한번쯤 가보고자 한 것이다. 오늘 선택한 식당은 가정식백반집이다. 가격 5천원짜리 한식부페식당이다. 일부로 찾았다. 미안해서 찾았다. 마치 탁발승이 공양보시자를 일부로 찾아 가듯이 들어간 것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탁발공양에 대하여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가장 감명 깊은 이야기를 보았다. 그것은 마하깟싸빠 존자의 공양에 대한 것이다. 테라가타에 이런 게송이 있다.
“처소에서 내려와서 나는,
시내로 탁발하러 들어왔다.
음식을 먹고 있는 나병환자를 보고
공손하게 그의 곁에 섰다.”(Thag.1060)
“문드러진 손으로 그는,
나에게 그의 음식의 일부를 건넸다.
음식의 일부를 발우에 던질 때에
그의 손가락도 그 곳에 떨어졌다.”(Thag.1061)
“담장의 아래에서 나는,
그 음식을 한주먹 먹었는데,
먹으면서도 먹고나서도
나에게 혐오가 일어나지 않았다.” (Thag.1062)
마하깟싸빠 존자는 ‘두타제일(dhutavadanaṃ aggo)’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부처님의 전법제자로도 알려져 있다.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었을 때 결집을 주도했었다.
존자는 일부로 문둥병환자에게 다가갔다. 존자가 세상에서 천대받는 문둥이에게 가까이 간 것은 어떤 이유일까? 주석에 따르면 “그 나병환자에게 크나큰 성취를 얻게 하기 위해 걸식을 청원하는 자로 맛있는 탁발음식을 보시하는 자에게 가는 것처럼 다가갔다.”(ThagA.III.139)라고 했다.
존자는 일부로 문둥병환자에게 밥을 얻어 먹으로 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공손하게 서 있었다. 그러자 문둥병환자는 밥을 건넸다. 어디서 밥이 난 것일까? 그도 역시 밥을 빌었다. 홀로 먹으려고 하다가 존자가 공손히 앞에 서 있자 발우에 밥을 넣어 준 것이다. 이런 케이스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혼자 먹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시에 인색한 자들이 있다. 어쩌다가 보시를 해도 마치 자신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까워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장 불쌍한 문둥병환자는 빌어 온 밥을 존자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는 문둥병환자에게는 공덕이 된다.
문둥병환자가 발우에 밥을 넣을 때 문드러진 손가락이 떨어졌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당황했을 것 같다. 그러나 깟싸빠존자는 게의치 않았다. 이에 대하여 “나에게 혐오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일반사람은 문둥병환자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썩어 문드러진 손가락이 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어갈까? 아마 대부분 구토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마하깟싸빠존자는 태연했다. 문둥병환자에게 공덕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문둥병환자의 공덕은 얼마나 클까? 이는 라따나경에서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님들이 있어, 참사람으로 칭찬받으니, 바른 길로 가신 님의 제자로서 공양 받을 만하며, 그들에게 보시하면 크나큰 과보를 받습니다.”(Stn.227)알 수 있다. 사쌍팔배의 성자에게 보시하면 그 과보는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다. 하물며 번뇌가 다한 아라한에게 보시하면 그 공덕은 얼마나 큰 것일까?
문둥병환자는 아라한에게 한끼 공양을 했다. 발우에 썩어 문들어진 손가락이 들어가긴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공덕 있는 보시가 되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장 불쌍한 자가 가장 청정한 삶을 사는 성자에게 보시했기 때문이다. 마하깟싸빠 존자는 문둥병환자에게 보시공덕의 기회를 주기 위해 공손히 서 있었던 것이다.
마하깟싸빠존자는 태연하게 식사를 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신통의 힘이라고 했다. 이는 “혐오스러운 것에 대하여 혐오스럽지 않은 것처럼 혐오스럽지 않은 지각이 일어나는, 고귀한 신통의 탁월성에 도달했기 때문에, 장로는 그것을 먹는데 혐오를 일으키지 않았다.” (ThagA.III.139)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가정식백반집은 지하에 있다. 식당으로서 입지조건은 좋지 않다. 식당은 1층에 있어야 장사가 잘될 것이다. 2층이나 지하에 있으면 오르거나 내려가는 수고가 있기 때문에 기피할 것이다. 더구나 지하는 어두컴컴한 이미지가 있어서 음식점으로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테이블이 열 개도 안되는 작은 식당이다. 점심시간임에도 먹는 사람은 세 명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주인이 반겨 준다. 반년 전에 들어 갔다 나갔을 때 보았던 바로 그 여주인이다.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동그란 식판을 찾으려고 두리번 거리자 “오빠, 여기에요”라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오빠’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아까 쭈꾸미집에서 쫓겨난 것이 보상받는 듯하다.
동그란 큰 접시 식판에 이것저것 반찬을 조금씩 담았다. 남기면 안되기 때문에 조금씩 담은 것이다. 국은 미역국이다. 고등어구이도 있다. 전형적인 가정식백반이다.
반찬을 세어 보니 7가지다. 그 중에서 열무김치는 잘 익어서 깊은 맛이 난다. 김치도 묵은지로 역시 깊은 맛이 난다. 콩나물도 그렇고 무우채무침도 그렇다. 깻잎도 간이 적당히 배겨 있다. 밥도 적당히 질어서 부담이 없다. 정말 집에서 먹는 것 같다. 그래서 가정식백반이라 했을 것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남기면 실례일 것 같아 반찬을 조금씩 가져 간 것도 이유가 된다. 미역국은 부드럽고 간도 적당하다. 모든 음식이 부드럽고 맛깔나고 깊은 맛이 있다. 이제까지 가정식백반을 이곳저곳에서 먹어 보았지만 이집처럼 그윽한 것 같지 않다.
마지막으로 숭늉이 나왔다. 밥풀때기가 들어가 있는 따뜻한 숭늉이다. 집에서 먹는 숭늉과 맛이 같다. 또 요구르트도 제공되었다. 5천원짜리 메뉴로는 과분한 것 같다. 이렇게 막퍼주고서도 남는 것이 있을까?
식당은 세 가지를 조건으로 한다. 맛과 청결과 서비스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일 것이다. 가정식백반집은 맛에 있어서는 합격점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무엇보다 서비스가 좋다. 쌍둥이 자매가 운영하고 있는데 밥을 퍼주고, 국을 떠 주고, 숭늉을 가져다주는 등 손님을 극진하게 모시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반년 전에 단지 지하에 있다는 이유로 들어갔다가 앉지도 않고 곧바로 나왔다. 지하는 불결하고 맛이 없을 것 같은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들어가서 먹음으로써 이런 우려는 깨끗이 해소되었다.
반년 전에 기피했던 식당에 일부러 들어 갔다. 마치 마하깟싸빠 존자가 문둥병환자에게 다가가서 얻어먹듯이, 일부로 지하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미안한 마음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계산을 할 때 일부로 큰 소리로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감사합니다.”라고 답례한다.
가정식백반집은 맛도 좋고 서비스도 좋았다. 중년 쌍둥이 자매의 친절이 무엇보다 좋았다. 앞으로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 중에는 다시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사무실 주변 식당을 다 둘러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자주 방문하려 한다. 고독한 식당순례자가 모처럼 잘 얻어먹은 것 같다.
2021-02-19
담마다사 이병욱
'음식절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전을 만들어 보았는데 (0) | 2021.03.01 |
---|---|
점심 하나 먹은 것 가지고 글을, 코19 자비의 식당순례 13탄 추어탕 (0) | 2021.02.22 |
코19 자비의 식당순례 11탄, 포차식당의 돼지국밥 (0) | 2021.02.13 |
사랑보다 우정 (0) | 2021.02.09 |
코19 자비의 식당순례 10탄, 고독한 식당순례자가 맛본 부대찌게 (0) | 2021.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