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남에게 보시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보시 하는 것

담마다사 이병욱 2021. 3. 23. 10:02

남에게 보시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보시 하는 것

 

 

2월 첫번째 금요니까야 강독모임에서 다섯 개의 경을 합송했다. 뒤에 세 개의 경은 보시에 대한 것이다. 이를 하나로 묶어서 정리하고자 한다.

 

보시는 왜 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자신에게 하는 것이 된다. 남에게 보시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명백히 증명된다.

 

삼십삼천 환희동산(nandana)에서

 

보시와 관련하여 쑤마나의 경’(A5.31)이 있다. 금요모임 교재 생활속의 명상수행에서는 보시하는 자와 보시하지 않는 자의 차이는 어떠한가?’라고 되어 있다. 법수가 다섯 이므로 다섯 가지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쑤마나여, 신으로 태어난 존재로서 그 보시하는 자는 다른 보시하지 않는 자를 다섯 가지 점에서 능가합니다. , 천상의 수명, 천상의 용모, 천상의 행복, 천상의 명성, 천상의 권세입니다.”(A5.31)

 

 

부처님 가르침에 시계생천(施戒生天)이라는 말이 있다. 보시하고 지계하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이다. 천상에서 신으로 태어난 존재는 어느 천상에 태어날까? 초기경전을 보면 대부분 삼십삼천이다. 이는 그러면 서른 셋 하늘나라에 머물며 오랜 세월 신들과 사귀며 즐기라.”(A5.34)라는 게송으로 알 수 있다.

 

삼십삼천은 욕계천상이다. 보시공덕을 지으면 삼십삼천에 태어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환희동산이 있다. 이는 세상에 죽어서 스스로 빛나며 환희의 숲을 거닌다.”(A5.34)라는 게송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 환희동산은 어떤 곳일까? 이어지는 게송을 보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을 갖추고 그들은 거기서 환희하고 기뻐하며 즐긴다.”(A5.34)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환희동산(nandana)은 오로지 기쁨만 있는 곳이다. 또한 앗차라(accharā)라 불리우는 요정이 시중을 들고 있다. 이런 환희동산에 대하여 영예로운 서른셋 신들의 하늘나라의 하늘사람이 살고 있는 환희의 동산을 보지 못한 사람은 행복을 알지 못하네.”(S1.11)라고 했다.

 

보시공덕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천상이다. 그중에서도 욕계 삼십삼천이다. 삼십삼천의 환희동산에서 행복은 인간의 행복과 비교되지 않는다. 왕권을 가진 것과 비교되지 않는다. 인간의 백년은 하늘의 반나절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하늘나라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천상의 수명, 천상의 용모, 천상의 행복, 천상의 명성, 천상의 권세를 말한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보시를 해서 천상에 태어나면 최상이다. 그러나 천상에 태어나지 않아도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높은 지위의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는 보시하는 자와 보시하지 않는 자의 차이에 대한 것이다. 이런 차별은 인간의 수명, 인간의 용모, 인간의 행복, 인간의 명성, 인간의 권세”(A5.31)를 말한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다. 오래 사는 것이다. 여기에 더 바라면 건강하게 오래 서는 것이다. 더 바라면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이렇게 바라고 바라다보면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그것은 수명, 용모, 행복, 명성, 권세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장로가 보시하는 자에게 아유 완노 수캉 발랑(āyu vaṇṇo sukha bala)”(Dhp.109)이라고 축원해 주는 것이다. 이 말은 “장수하고 아름답고 즐겁고 건강하기를!”라는 뜻이다.

 

법구경에서 축원문은 장수, 용모, 행복, 건강에 대한 것이다. 이른바 사대축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수명, 용모, 행복, 명성, 권세라 하여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다. 공통된 것은 수명, 용모, 행복이다. 법구경에서는 건강이 있고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명성과 권세가 있다. 이를 모두 합하면 보시하여 인간으로서 얻게 되는 과보는 수명, 용모, 행복, 건강, 명성, 권세라고 해야 할 것이다.

 

출가해서도 차별하는 보시공덕

 

보시공덕은 천상에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지위가 높은 존재로 태어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출가해서도 보시공덕에 대한 과보가 나타난다. 이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쑤마나여, 출가한 자로서 그 보시하는 자는 다른 보시하지 않는 자를 다섯 가지 점에서 능가합니다. , 구걸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지만, 구걸만으로도 많은 의복을 향유합니다. 구걸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지만, 구걸만으로도 많은 음식을을 향유합니다. 구걸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지만, 구걸만으로도 많은 와좌구를 향유합니다. 구걸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지만, 구걸만으로도 많은 필수약을 향유합니다.”(A5.31)

 

 

출가자는 탁발해서 살아간다. 일종의 구걸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어떤 출가자는 음식을 잘 얻어먹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출가자는 음식을 잘 얻어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별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경에 따르면 그가 출가하기 전에 보시한 공덕의 차별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가 출가하기 전에 많은 보시를 했다면 출가해서도 입을 것, 먹을 것, 잠잘 곳, 의약품 등 사대필수품을 잘 조달 되어 도와 과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보시를 잘해서 출가한 수행승은 사대필수품 조달에 문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살면, 그들은 항상 그에게 마음에 드는 신체적 활동으로 대하고”(A5.31)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보시하기를 즐겨 하는 사람은 수행승이 되어도 동료 수행자들수부터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으로 존중받음을 말한다.

 

출가한 수행자가 아라한이 되었다면 보시공덕에 차별이 있을까? 아라한이 되었음에도 어느 아라한은 음식을 적게 타오고 어느 아라한은 음식을 많이 타오는 차별이 있을까? 이에 대하여 해탈과 해탈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A5.31)라고 했다.

 

아라한이 되면 사대필수품 조달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 왜 그럴까? 아라한은 복전이기 때문이다. 아라한이 되기 이전까지는 출가하기 전의 보시공덕이 영향을 줄 수 있으나 아라한이 되면 이런 차별은 없어짐을 말한다.

 

즉각적 과보로 나타나는 보시공덕

 

보시하는 자와 보시하지 않는 자는 차별이 있다. 그가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수명, 용모, 행복, 명성, 권세에 있어서 차별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인간세상에서 오래 살고, 용모가 아름답고, 행복하고, 명예도 있고, 권력도 누리고 산다면 그는 과거 전생에 커다란 보시공덕을 지었음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보시 공덕은 천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가 출가한다면 사대필수품 조달이 쉽고 동료수행자들로부터도 존중을 받을 것이다.

 

보시공덕은 다음 생에서나 과보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즉시 과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씨하여, 보시하는 자와 후원하는 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호의를 받습니다. 씨하여, 보시하는 자와 후원하는 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호의를 받는데, 그것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보시의 과보입니다.”(A5.34)

 

 

부처님은 씨하 장군에게 네 가지 즉각적 보시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했다. 그것은 1)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호의를 받는 것이고, 2) 선한 참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고, 3) 훌륭한 명성이 퍼져 나가는 것이고, 4) 어느 모임에서든지 두려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법수가 다섯 이므로 다섯 번째 보시공덕은 미래에 대한 것이다. 이는 보시하는 자에 대하여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납니다.”(A5.34)라고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다.

 

부처님은 보시공덕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과보 네 가지와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과보 한가지에 대해서 말씀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보시를 하면 이세상에서도 행복하고 저세상에서도 행복함을 말한다. 이는 법구경에서 선행을 하면, 두곳에서 즐거워하니 이 세상에서도 즐거워하고 저 세상에서도 즐거워한다.”(Dhp.18)라고 했다.

 

보시에도 타이밍이

 

보시에도 타이밍이 있다. 함께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할 때 구두 끈 매고 있다면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 절에 갈 때는 보시금을 지참해야 한다. 선원에서 집중수행 했다면 나올 때 보시금을 내야 한다. 이는 의무적 사항은 아니다. 하나의 미덕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때에 맞는 보시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손님이 올 때에 보시를 베풀고, 떠날 때에 보시를 베풀고, 병들었을 때에 보시를 베풀고, 굶주렸을 때에 보시를 베풀고, 햇곡식과 햇열매가 있을 때에 먼저 계행을 갖춘 자에게 베푸는 것이다.”(A5.36)

 

 

손님이 올 때 보시를 베풀고 떠날 때에 보시를 베풀라고 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손님이 올 때 차라도 대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에게 여비를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절이나 선원에서는 가능할지 모른다.

 

집중수행하면 선원에서 일주일 이상 머무는 것이 보통이다. 입소할 때 보시금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절이나 선원은 재가자들의 보시에 의해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집중수행을 마치고 돌아 갈 때 역시 보시금을 내는 것이 좋다. 일종의 감사의 보시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올 때에 보시를 베풀고, 떠날 때에 보시를 베푼다.”라는 말은 타당하다.

 

을지로 굴다리 노숙자 봉사

 

보시하면 즉각적인 과보가 따른다고 했다. 보시는 먼 미래나 내생에 대한 과보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선생은 금요니까야강독모임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었다.

 

전재성 선생은 요즘 번역일로 바쁘다. 현재 자따까를 번역중에 있다. 그런데 종종 힘을 받을 필요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을지로 굴다리에 있는 노숙자 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을지로 굴다리 노숙자 봉사는 잘 알고 있다. 20171월과 2월 두 달 동안 봉사를 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김광하 선생이 주도하는 봉사단체 작은손길에 참여한 것이다. 그때 전재성 선생도 봉사를 하고 있었다. 거의 20년 가까이 봉사를 한 것이다.

 

 

김광하 선생의 봉사단체 작은손길은 20173월에 공식적으로 회향되었다. 그럼에도 최근 전재성 선생이 을지로 굴다리로 찾아 간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에 대하여 생활의 힘이 되고자라고 말했다. 보시를 하면 힘이 생겨남을 말한다.

 

전재성 선생은 강독모임에서 보시에도 철학이 있어야 함을 말했다. 이는 보시가 단지 준다는 생각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만일 일방적으로 주기만 한다면 시혜가 될 것이다. 이는 주는 자와 받는 자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된다. 그래서 주는 자는 우월적 자만에 빠질 것이고, 받는 자는 열등적 자만에 빠질지 모른다. 이는 불공평한 것이다.

 

전재성 선생은 보시를 할 때 베푼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항상 예로 드는 것이 수행승들이여,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대들은 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도 한때 저러한 사람이었다.’라고 관찰해야 한다.”(S15.11)라는 가르침을 들었다. 이런 태도를 가져야 보시하는 자나 보시 받는 자나 공평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노숙자를 대할 때 어떤 태도를 가질까? 어떤 이들은 게을러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준다고 했을 때 이는 시혜의 개념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우월적 자만에 따른 보시를 말한다. 그러나 같은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전혀 다른 보시가 된다. 한량없는 윤회에서 언젠가 나도 저와 같은 사람이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잘 나간다고 하더라도 언제 저와 같은 사람이 될지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노숙자에 대한 보시는 자신에 대한 보시도 되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 노숙자가 되었을 때 과거 자신이 보시한 것을 얻어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전재성 선생은 최근 몇 주 을지로 굴다리로 간다고 했다. 과거 김광하선생이 주도한 봉사단체 작은 손길이 봉사활동 했던 곳이다. 지금도 굴다리에서는 어느 봉사단체에서 먹을 것 등을 봉사하고 있다. 전재성 선생은 타봉사단체에 참여해서 독자적으로 준비한 것을 보시한다고 했다. 그것은 마스크라고 했다. 코로나시기에 노숙자들도 마스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시하고 나면 개운하다고 했다.

 

 

전재성 선생에 따르면, 번역하다가 지치거나 잘 되지 않을 때 굴다리에 가서 보시하고 나면 힘을 받는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보시는 타인에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보시는 자신에게 하는 것이 된다. 보시를 통해서 현상황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이 암담하거나 지겹거나 절망에 빠졌을 때 보시하고 지계하고 인욕함으로써 초월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남에게 보시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보시 하는 것

 

보시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초기경전에서는 보시에 대한 수많은 가르침이 있다. 법사들은 보시에 대하여 수많은 이야기를 한다. 보시하면 큰 공덕을 쌓는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시계생천이다. 보시하고 지계하면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삼십삼천 환희동산에 태어난다고 했다.

 

보시공덕은 내생의 일일까? 보시의 과보는 내생에나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지금 누군가 인간으로서 수명, 용모, 행복, 명성, 권세를 누리고 있다면 과거전생에 보시공덕을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보시공덕은 지금 여기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서 ‘1)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호의를 받는 것이고, 2) 선한 참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고, 3) 훌륭한 명성이 퍼져 나가는 것이고, 4) 어느 모임에서든지 두려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것’(A5.34)이라고 했다.

 

보시공덕이 즉각적이라는 것은 보시로 인하여 힘을 받는 것을 말한다. 보시했을 때 그 충만한 마음으로 인하여 일이 잘 풀린다면 즉각적 과보를 받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일이 꼬일 때, 무언가 되는 일이 없을 때 보시해야 한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고 보시하고 나면 개운할 것이다. 그리고 충만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즉각적 결과를 가져오는 보시가 된다. 결국 보시는 자신에게 하는 것이 된다.

 

보시는 남에게 하는 것이지만 보시를 통해서 마음이 충만해졌다면 보시는 자기자신에게 하는 것이 된다. 보시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하는 것이 되어서 자신이 혜택을 보게 된다. 남에게 보시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보시 하는 것이 된다.

 

 

관대하고 인색을 여읜

지혜로운 자는 때맞춰 보시한다.

고귀한 님, 진실한 님,

거룩한 님에게 때맞춰 보시된 것

정신이 청정하면,

그가 베푸는 것은 광대한 것이네.

 

그것에 기뻐하고 기꺼이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베품도 적지 않아

공덕을 나누어 가지네.

 

보시된 것이 커다란 열매를 거두는 곳에

기꺼운 마음으로 보시하라.

공덕은 저 세상에서

뭇삶들의 의지처가 되리.”(A5.36)

 

 

2021-03-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