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의 가르침

정법(正法)이 오래 머물게 하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1. 4. 2. 12:19

정법(正法)이 오래 머물게 하려면

 

 

무엇이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세상의 시작이 있으면 종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되기 마련이다.”(S56.11)라고 했다. 부처님 가르침은 어떨까?

 

부처님 가르침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 있다. 어느 시기가 되면 변질되어서 사라져 버린다. 인도에서 불교가 멸망한 것도 변질되어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정법은 살아 있다. 빠알리 삼장이 전승되어 오고, 팔정도 수행이 있고, 팔정도 수행으로 사향사과의 성자가 있다면 정법이 살아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팔정도 수행이 있기 때문이다. 팔정도 수행이 있다는 것은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음을 말한다. 이는 괴로움과 윤회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더 이상 윤회하지 않을 때 청정한 삶은 완성된다.

 

정법시대는 오래 가지 않는다. 인도에서 불교가 변질되어서 사라져 버렸듯이 정법도 오염되면 사라진다. 불교라고 하지만 무늬만 불교가 득세했을 때, 비법이 득세했을 때 정법은 사라진다. 다시 암흑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정법이 사라진 시대는 암흑의 시대나 다름없다. 사향사과와 열반이 없기 때문에 중생들은 윤회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부처가 출현한다. 한량없는 암흑의 시대가 지속되다가 어느 때 부처가 출현하면 또다시 정법시대가 된다. 윤회로부터 탈출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법이 머무는 기간은 매우 짧다. 영겁의 시간에서 본다면 잠시 번쩍하고 사라지는 빛과 같다.

 

과거 부처님이 출현한 이유는?

 

초기경전을 보면서 발견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석가모니 부처님 한분만 출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상윳따니까야 니다나상윳따’(S12)를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이 연기에 대한 가르침을 설한 것을 모아 놓은 묶음을 말한다. 과거에도 부처님이 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니다나상윳따를 보면 과거칠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과거에도 일곱 분의 부처님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91겁전에 비빳씬 부처님이 출현했고, 31겁전에 씨킨 부처님과 벳싸부 부처님이 출현했다. 그리고 현겁에 까꾸싼다 부처님과 꼬나까마나 부처님과 깟싸빠 부처님,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했다. 이렇게 해서 경전에서는 과거칠불이 등장한다.

 

과거 부처님을 보면 91겁 전에 비빳씬 부처님과 31겁전에 씨킨 부처님이 출현한 간극이 무려 30겁이나 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주가 30번 생겨났다가 파괴되는 기간에도 정법이 없었음을 말한다. 그런데 비빳씬 부처님을 포함하여 씨킨부처님과 벳싸부 부처님의 정법시대는 매우 짧았다는 것이다. 반면 현겁에 출현한 까꾸싼다 부처님과 꼬나까마나 부처님과 깟싸빠 부처님 시대의 정법은 길었다고 한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정법시대가 짧았던 이유는?

 

율장비구계가 있다. 출가한 스님들이 보는 책이지만 요즘은 재가자도 볼 수 있다. 빠알리 율장이 우리말로 직역되어서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율장비구계를 보면 정법이 오래 되었을 때와 오래 가지 않았을 때에 대한 설명이 있다.

 

과거 칠불중에서 비빳씬, 씨킨, 벳싸부 부처님 시대의 정법은 짧았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싸리뿟따여, 세존이신 비빳씬과 세존이신 씨킨과 세존이신 벳싸부께서는 제자들에게 상세하게 가르침을 설하는데 피곤을 몰랐다. 그들에게는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전생담, 미증유법, 교리문답이 거의 없었다. 제자들에게는 학습계율이 시설되지 않았고, 의무계율도 부과되지 않았다.”(Vin.III.8)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과거 부처님들이 연기법을 깨달아 제자들에게 법을 설했지만 경장과 율장으로 남아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단지 깨달은 것을 설한 것으로 그쳤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양한 방법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전승된 가르침을 보면 크게 경, 응송, 수기, 게송, 감흥어, 여시어, 전생담, 미증유법, 교리문답이라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를 구분교라고 한다.

 

부처님은 45년동안 구분교의 가르침을 설했다. 이는 이띠붓따까에서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밤부터, 잔여없는 열반의 세계로 완전한 열반에 든 밤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대화하고 말하고 설한 모든 것이 이와 같고, 다른 것과 같지 않다.”(It.122)라고 했다.

 

부처님은 깨달은 날 밤부터 열반의 밤에 이르기까지 설법했다. 이런 설법은 구분교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다. 그래서 정법이 사라지지 않고 전승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정법의 전승에는 한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계율이다. 율장의 전승을 말한다.

 

부처님은 계율을 설하기 위해서 과거부처님 이야기를 했다. 과거 세 분 부처님 시대 때는 경장과 율장 형태로 가르침이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법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음을 말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들 존귀한 부처님들과 그 아래서 깨달은 제자들이 멸한 뒤에, 그들은 나중에 여러 가지 이름, 여리 가지 성씨, 여러 가지 계급, 여러 가지 가문으로부터 출가하였는데, 그들이 그 청정한 삶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It.122)


부처님은 정법이 오래 지속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과거 세 분 부처님들이 가르침을 체계화 하지 않은 것으로 말씀하셨다. 깨달은 것을 단지 말로 전달 했고, 제자들은 단지 들은 것을 실천하여 깨달았으나 오래 가지 못했음을 말한다. 이는 가르침이 체계적으로 전달되지 못했음을 말한다.

 

귓속말 놀이하는 것처럼

 

오늘날 어떤 이들은 진리는 문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진리는 오로지 뜻과 마음으로만 전달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문자로 전승된 경전을 단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정도로 본다. 또한 문자로 쓰여진 모든 것은 모두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처님 제자들은 보고 들은 것을 암기하여 전승했다. 후대에 가서는 문자로 남겼다. 이런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도 아니고 방편도 아니다. 부처님 진리의 말씀 그 자체이다. 이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그 사이에 대화하고 말하고 설한 모든 것이 이와 같고, 다른 것과 같지 않다.”(It.122)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후대 사람들은 이 말을 왜곡하여 나는 한자도 설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진리는 언어로써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과 마음으로, 뜻에서 뜻에서 전승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후대로 내려갈수록 왜곡될 것이다. 마치 귓속말 놀이하는 것과 같다. 처음 전달한 말이 여러 사람을 거치면 전혀 다른 말이 되어 버리는 것과 같다.

 

묶어 놓지 않아서

 

과거 세 분 부처님의 정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는 경장과 율장 형태로 체계화하여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에서 뜻으로 사자상승 식으로 전승되었을 때 나중에 전혀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런 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싸리뿟따여, 예를 들어, 여러 가지 꽃들이 나무판 위에 실로 잘 묶지 않고 놓아두면, 그것들은 바람에 흩어지고 부서지고 해체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그것은 실로 묶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It.122)

 

 

부처님은 정법이 오래 지속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묶어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 세 분 부처님이 피곤을 모르고 가르침을 설했지만 이를 체계화시켜 놓지 않았을 때 몇 대만 지나면 변질되어서 사라져 버림을 말한다.

 

수범수제(隨犯隨制) 형식으로

 

과거 세 분 부처님의 정법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겁의 세 분 부처님의 정법은 오래 지속되었다. 이는 잘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겁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떠했을까?

 

율장비구계에서는 율장이 성립된 이유에 대하여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말로만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법조문처럼 만들어 놓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법부터 만드는 경우는 없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때 마다 하나하나 조항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싸리뿟따여, 여기 어떤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이 참모임 안에 나타날 때까지 스승은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시설하지 않고 의무계율을 부과하지 않는다. 싸리뿟따여, 여기 어떤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이 참모임 안에 나타날 때, 그때에 스승은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을 몰아내기 위해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시설하고 의무계율을 부과한다.”(Vin.III.10)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은 죄악을 짓는 것을 말한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비로서 조항이 만들어짐을 말한다. 이를 수범수제(隨犯隨制)라고 한다.

 

율장의 모든 조항은 수범수제형식을 따른다. 처음부터 계율을 만들어 따르도록 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는 참모임이 세월의 연륜에 도달하기까지 그때까지 여기 참모임에 어떤 번뇌를 일으키는 조건들은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부처님의 초기교단에서는 계율이 필요 없었다. 상근기의 수승한 수행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250명의 아라한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부분 아라한이 있었을 때 계율의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이 점차 주변으로 확산되고 먼 지방에서까지 구족계를 받게 되었을 때 하나, 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참모임(승가)이 연륜에 도달하기 전까지, 광대화에 도달하기 전까지, 극대화에 도달하기 전까지 계율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정법이 오래 지속되기를!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빠알리삼장이 전승되어 왔고, 팔정도 수행이 있고, 팔정도 수행으로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다면 정법시대이다. 정법시대가 오늘날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것은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체계적이다. 이는 니까야를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모두 다 연계되어 있다. 마치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 가는 것 같다. 이런 가르침은 문자로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실려 있는 빠알리삼장은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체계화했다. 가르침을 묶어 두지 않으면 모두 흩어져서 몇 대만 지나면 변질되어 사라져 버릴 것이다. 다행히도 체계화되어서 오늘날 삼장형태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생겨난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도 언젠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다음 부처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암흑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심이다. 문자로 전승되어 온 빠알리 삼장이 있기 때문이다. 정법이 오래 지속되기를!

 

 

2021-04-0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