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에 놀아나지 말자
또다시 선거철이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이지만 사람들은 사활을 거는 것 같다. 정당인뿐만아니라 지지하는 사람들도 둘로 나뉘어 대리전 양상이다. 과연 이번 선거결과는 어떻게 될까?
요즘 뉴스를 보지 않는다. 애써 피하려 한다. 다만 식사하러 갔을 때 식당TV는 어쩔 수 없다. 또 에스엔에스에서 전하는 단편적인 이야기도 피할 수 없다. 페이스북에서는 종종 견해를 밝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행위는 비겁한 것일까? 마치 불리하다고 엄마 치마폭에 숨는 아이와도 같다.
늘 패배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마다 매스컴을 의도적으로 멀리 했다. 이번에도 피하는 것을 보니 불리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제까지 연전연승했으니 이제 피로감도 있을 것이다. 언제 까지나 승리할 수 없다. 일종의 견재심리도 작동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내 주어도 대세에는 지장없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먹으면 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유튜브를 보면 "난리났다."라는 섬네일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표현문은 꽤나 인기있는 것 같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즐겨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어가 보면 별볼일 없다. 낚시성 제목임을 알게 된다.
낚시글이 있다. 독자를 낚이게 하려면 네이밍에 달려 있다. 제목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조회수가 다르다. "난리났다."라는 표현과 함께 자극적 제목을 달았을 때 낚이기 쉽다. 이미지 조작에 놀아나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는 후보의 진실을 알 수 없다. 불리한 것은 숨기고 유리한 것은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래가지고서는 그 사람의 실체를 알 수 없다.
사람들은 그 사람 이미지를 보고서 투표한다. 미남에다 키도 훤칠하고 더구나 변호사이면 호감을 갖는다. 선거에서 이미 반은 접고 가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잘못이 있다고 해도 문제 되지 않는다. 한번 각인된 이미지가 이를 상쇄한다. 결정적 한방이 나오지 않는한 되게 되어 있다. 이미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선거때가 되면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정적이기 쉽다. 이성의 힘은 약하고 감정의 힘은 강하다. 감정에 호소하면 쉽게 휘둘린다. 이른바 국민정서에 호소하면 먹혀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무릎꿇은 사진을 볼 수 있다. 또 "살려 주십시오."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정치인의 이미지에 놀아난다. 잔뜩 포장된 이미지에 어느 것이 본래 모습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까도까도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지율 1위를 유지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미지 전략이 먹혀 들어가는 계층이 있음을 말한다.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텔 1층에 매점이 있다. 사무용품과 먹을 것 등을 파는 작은 가게이다. 가게에 종종 가 보면 항상 종편방송이 켜져 있다. 가게 주인은 하루종일 종편만 보는 것 같다. 결과는 뻔한 것이다. 손님과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엿들었는데 "역시나"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반신반의 한 것도 반복해서 듣다보면 확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미지에 놀아나고 있다. 아니 이미지 조작에 놀아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지가 덧씌워지면 평범한 사람도 비범한 사람이 된다. 학력이 좋으면 이미지도 좋아진다. 박사 타이틀이라도 있으면 달리 보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경력이 좋으면 능력 있어 보인다. 국가가 인정하는 공인자격증이 있으면 이미지에 도움된다. 그래서일까 정치인들의 이력을 보면 꼬리표가 길다.
그사람의 계행이 바른지는 함께 살아 보아야 알 수 있다. 그것도 오랜세월 함께 살아 보아야 한다. 낮에 한말 다르고 밤에 행위하는 것이 다르다면 계행이 엉망인 사람일 것이다.
그사람이 정직한지는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도 오랜세월 함께 살아야 알 수 있다. 지난번 말한 것과 이번에 말한 것이 다르다면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그사람이 견고한지는 위기가 닥쳤을 때 알 수 있다. 그것도 오랜세월 함께 살아야 알 수 있다. 물에 빠졌을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없다면 견고한 기반이 없는 사람이다.
그사람이 지혜로운지는 대화해보면 알 수 있다. 그것도 오랜세월 함께 살아야 알 수 있다. 토론하다 보면 그 사람의 밑천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사람에 대하여 알고자 한다면 직접 대면해 보아야 한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이다. 오랜세월 함께 해 보아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신문과 방송만 보고 판단하려 한다면 실수할 수 있다. 불리한 것은 감추고 유리한 것은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포장된 것이다. 이미지에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어서 진짜 얼굴을 알 수 없다.
그 정치인은 잘 생기고 키도 훤칠하고 학력과 경력도 좋다. 무엇보다 젊은 이미지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런 호감이 작용해서일까 지난 선거 때 이겼다. 이미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이미지는 감정에 호소한다. 좋은 이미지는 호감을 유발한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인은 아나운서, 변호사 등이 하면 딱 알맞을 것 같다. 일단 이미지에서 반은 접고 들어간다. 그 사람의 실력이나 능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이미지로 대통령 된 사람도 있다.
이미지전략은 감정 또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는 무의식에 호소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왜 그런가? 무의식은 의식 보다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도 세다. 이와 같은 의식과 무의식은 코끼리를 탄 사람의 비유로 설명될 수 있다.
사람은 작고 코끼리는 크다. 사람은 언어적 기능이 있어서 사유할 수 있다. 그래서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코끼리는 언어적 기능이 없어서 사유할 수 없다. 오로지 본능에 의존한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감각적 욕망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감정적이다.
코끼리 등에 탄 사람은 코끼리를 조종한다. 평소에는 말을 잘 듣지만 한번 뒤틀리면 통제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어찌할 수 없다. 힘으로는 코끼리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인들이 감정 또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은 무의식을 자극하는 것과 같다. 동물적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성보다는 비교할 수 없는 파워가 있기 때문에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치인의 이미지 전략에 잘 먹혀 들어간다. 외적인 이미지로 포장하여 감정 또는 감성을 공략하면 무의식이 꿈틀 거린다. 무의식은 힘이 센 코끼리 같아서 코끼리 등에 탄 인간의 이성을 압도해 버린다. 마치 식욕과 성욕에 지배 받는 것과 같다. 배고프면 허기가 져서 아무생각이 나지 않는 것과 같고 매혹적인 대상을 보았을 때 온 마음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정치인들은 이미지 조작의 마술사들이다. 그들은 공격포인트를 알고 있다. 이성 보다는 주로 감성에 호소한다. 이는 무의식을 자극하는 것이다. 의식 너머 저편에 있는 마음의 그림자를 건드리는 것이다. 마치 코끼끼를 발광하게 하는 것과 같다. 코끼리에게 술을 먹이는 것과 같다. 동물적 본능을 자극하여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부동산은 어느 시기에서나 핫이슈이다. 마치 언제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다. 선거전문가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국민감정을 자극한다. 국민정서법에 호소 하는 것이다. 무의식 저편에 있는 그림자를 끌어내는 것이다.
무의식의 그림자가 의식을 압도했을때 이성은 마비되고 감정 또는 감정이 지배한다. 동물적 본능이 발현되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신문과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자극한다. 유튜브에서는 "난리났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낚고자 한다. 정치인들은 사람을 동물로 만들고자 한다. 사람들은 선거철만 되면 이미지에 놀아난다. 이미지에 놀아나지 말자.
2021-04-0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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