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을 감동시킨 적이 있는가?
오월의 공기가 상쾌하다. 강원도 첩첩산중 휴양림은 별세계이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하루 신선놀음을 해 보았다. 언제까지나 이런 곳에서 살순 없을까?
세속을 떠나서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은 힐링이 된다. 자연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치유된다. 왜 그럴까? 사람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살다보면 즐거운 일보다 괴로운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하고 듣기 싫은 것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피해 도망쳐 나오면 사람으로부터 해방된다.
사람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을까? 자연에 있는 것처럼 사람과 함께 있으면 힐링될까? 안될 것도 없다. 감동이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힐링된다.
"당신은 타인에게 감동을 준 적이 있습니까?" 누군가 이렇게 물었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할까? 감동적인 삶을 산 자가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어떤 삶인가? 봉사하는 삶이다. 나누고 베푸는 삶이야말로 감동 주기에 충분하다.
나는 남을 감동케 한적이 있는가? 나는 감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어쩌면 지독한 이기주의자일지 모른다. 자신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헌신 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잡인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감동적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원인 없이 생겨날 수 없다. 부모로 부터 생겨 났다는 것은 생물학적 답변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지 생물학적 존재이유를 말한다면 허무주의자가 되기 쉽다. 마침내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았다. 그것은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접하고 나서 부터이다.
연기법을 접하고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업으로서 존재한 것이다. 나는 업으로서 존재이다. 이번 생만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이전 생에도, 이전의 이전 생에도 존재 했었다. 수없는 생을 살아 왔다. 나는 생물학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업으로서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눈을 감으면 우주가 파괴될 것이다. 내가 구축해 놓은 한세계가 파괴된다.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사악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나의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읽어 ‘이 세계에서 그 사람이 죽을 때, 그는 그것이 작용하는 대로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나는 분명히 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그의 마음이 사악하기 때문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세계의 어떤 뭇삶이 사악하다면,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It.12)
다음 생은 업이 작용하는대로 결정된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그 사람이 죽을 때, 그는 그것이 작용하는 대로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했다. 우리는 업생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경전적 근거가 있다.
업생으로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감동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나는 남을 감동시킨 적이 있는가?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2021-05-0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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