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온갖 잡것들의 세계, 바다향기수목원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이용할 수 있다. 산에 가면 산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보는 순간 내 것이 된다. 잠시 눈으로 가지는 것이다. 하늘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다. 굳이 울타리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아, 좋다.”라거나 “참, 좋다.”라고 인식하는 순간 내 것이나 다름 없다.
2021년 6월 6일 대부도로 향했다. 안양에서 대부도 방아머리까지는 50여키로 거리로 불과 5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일요일 오전 일찍이라서 가능한 것이다.
대부도에 있는 ‘바다향기수목원’에 가기로 했다. 방아머리에서도 10키로를 더 가야한다. 섬이 10키로 이상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부도는 생각보다 큰 섬이다.
바다향기수목원에 도착했다. 대부도 거의 남단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작년엔가 와 보았던 곳이다. 아마 생겨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와 본 것 같다. 검색해 보니 2019년 5월에 개원했다. 이제 문을 연지 2년 밖에 되지 않는다,
바다향기수목원은 사설수목원이 아니다. 경기도 도립수목원이다. 그래서인지 규모도 크고 식물종류도 다양하다. 인터넷백과사전에 따르면, 30만평 대지에 식물은 천여 종류에 이르고 30만 개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수목원은 무료입장이다. 충분히 유료화가 가능함에도 무료입장을 시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마 홍보효과를 노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많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몰려 들 것이다. 그때 입장료 받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유월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 신록은 점점 짙푸르게 변해 간다. 무엇보다 갖가지 종류의 꽃이 있다는 것이다. 생전 보도 못한 꽃들과 생전 접하지 못한 갖가지 식물을 보니 마음도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꽃도 잎이 크고 원색을 좋아한다. 장미꽃 같은 것이다. 그러나 작고 흰 꽃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특히 야생화가 그렇다. 바다 해변가에 자라는 식물도 그렇다.
바다향기수목원은 바다 가까이에 있다. 그러다 보니 해변이나 모래, 갯벌에 자라는 식물도 있다. 이를 ‘모래언덕원’이라 해서 별도의 정원이 있다.
해변에서 자라는 식물 중에 해당화가 있다. 육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꽃이다. 지금 이맘때가 해당화철이다. 수목원에도 모래에서 자라는 해당화를 볼 수 있다.
해당화를 보면 낭만적인 생각이 든다. 아마 유행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해당화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본다. 온실의 화초와는 다른 것이다. 해변의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과 물기 없는 모래에서 자라난 해당화를 보면 민중의 삶을 보는 것 같다.
해변가 모래톱에서 자라는 식물들에게서 강인한 생명력을 본다.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민초를 보는 것 같다. 콩과의 해변야생식물에서 생활력 강한 산동네달동네 사람들을 연상한다.
크기가 30만평 되는 수목원은 무척 넓다. 모두 둘러보니 오전이 다 지나갔다. 다리는 아프고 힘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갖가지 종류의 식물과 꽃에 눈길을 주다 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는 것 같다. 비록 내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내것이 되는 것 같다.
수목원에 있으면 평화롭다. 유월의 찬란한 햇살 아래 이름 모를 갖가지 식물과 꽃들을 보면 화장세계가 따로 없다.
“세상은 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화장세계(華藏世界)이네.
크고 화려한 한종류의 꽃으로만
장엄된 세계가 아니네.
들에 가면 들꽃,
산에 가면 야생화,
온갖 이름 모를 갖가지 꽃들로
장엄된 잡화엄(雜華嚴)세계라네.
꽃은 형태와 빛깔은 달라도
대지에 뿌리 내리고 있다.
나무들 뿌리가 엉켜 있듯이,
온갖 잡꽃들은 대지를
어머니로 하고 있다.
세상은 온갖 사람들이
살아 가는 불국토라네.
생긴 모습이 다르듯이
성향 또한 모두 다르네.
잘난 자나 못난 자나,
귀한 자나 천한 자나,
모두 한 하늘아래에서
한공기를 마시며 살아간다.
가르침에 차별 없고
가르침 앞에 평등하다.
국토는 비구승만의 세상이 아니다.
비구니승, 우바이, 우바새도
함께 사는 사부대중의 세상이다.
오늘은 촛불 밝히는 날.
오늘은 정법 밝히는 날.
가르침의 바다에
사부대중 함께 모였네.”
2017년 시의 형태로 써 본 것을 옮긴 것이다. 그때 당시 조계종 적폐청산운동할 때 쓴 것이다.
화엄세계는 온갖 잡꽃으로 장엄된 세상이다. 이는 화엄경 속의 부처님이 삼매에 들었을 때 이 세상을 이렇게 묘사한 것이다.
이 세상에 오로지 장미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식상하게 될 것이다. 마치 매일 고기반찬만 나오는 것과 같다. 이 세상은 장미나 백합과 같은 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에 들에 이름 모를 야생화도 있다.
이 세상의 온갖 꽃들은 공통적으로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다. 대지를 어머니로 하고 있는 것이다. 장미이든 토끼풀꽃이든 어떤 것이든 공통적으로 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화엄경에서는 이 세상을 비로자나부처님의 한바탕 꿈으로 보고 있다.
꿈을 꾸면 꿈 속의 나는 꿈꾸는 자가 만들어 낸 것임을 알게 된다. 꿈을 꾸면 꿈속의 나와 꿈속의 기세간도 꿈꾸는 나가 만들어 낸 것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꿈속에서 세상은 꿈꾸는 나가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이 꿈속의 세상이라면 꿈꾸는 나가 있을 것이다. 이를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부처님의 삼매로 본다.
이 세상이 비로자나부처님의 한바탕 꿈이라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수목원의 화초 역시 비로자나부처님이 만들어낸 것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나도 화초도 산천초목도 모두 한뿌리가 된다. 화엄세계에서는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수목원에서 생명을 보았다. 수목원에서 평화로운 한 때를 보냈다. 인생에 있어서 이처럼 평화로울 때가 있을까? 만일 내가 전쟁의 시기에 태어나 전쟁터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언젠가 그런 때도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삶을 윤회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 저런 일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따사로운 햇살아래 생명의 향연을 즐기고 있다. 이를 오래토록 간직하고 싶어서 음악동영상을 만들었다. 제목은 ‘바다향기수목원 2021 06 06(https://www.youtube.com/watch?v=_johE_ETlW0 )’이다. 이미우이의 호프(Hope)를 배경음악으로 한 것이다. 맛보기로 보여주는 음악샘플을 다운 받아 만든 것이다. 불과 2분 밖에 되지 않는 유사동영상이다.
이 세상은 온갖 잡것들로 장엄된 세상이다. 크고 힘있는 자만의 세상이 아니다. 산동네달동네에서 잡초처럼 살아가는 민중들의 세상이기도 하다. 고귀한 가문에서 난 자, 많이 배운 자, 많이 가진 자들만의 세상이 아니다. 이 세상은 모두 한뿌리에서 나온 온갖 잡것들의 세상이다.
이세상은 온갖 잡것들의 세상이다. 잘난 자도 잡것이고 못난 자도 잡것이다. 잡꽃들로 장엄된 화장세계와 같다. 이 세상은 온갖 잡것들로 장엄된 잡화엄(雜花嚴)세상이다.
2021-06-0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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