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임도(林道)를 따라 걸으니

담마다사 이병욱 2021. 7. 17. 09:59

임도(林道)를 따라 걸으니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새벽의 여명을 이대로 두고 볼 순 없다. 휴양림 영역 끝자락에 이르렀다. 넘어 가지 말라는 경고의 메세지가 보였다. 휴양림에서 늘 보던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마치 월담하듯이 가볍게 바리케이트를 넘었다. 차 하나 다닐 정도의 비포장 임도(林道)를 따라 올라갔다. 봉미산 가는 길이다.

오전 5시 반, 날은 벌써 훤하게 밝았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모든 것이 선명하다. 진한 초록이 절정이다. 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한 숲이다.

새벽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마스크를 벗었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리고 개울 소리는 요란하다. 누군가를 만나도 겁나지 않을 시간이다.

조금 있으면 찬란한 태양이 떠 오를 것이다. 새벽은 해 뜨기 전의 전조현상이다. 마치 브라흐마(Brahma)가 출현하기 전에 먼저 빛을 던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벗들이여, 광대한 빛이 생겨나고 광명이 생겨나는 징조들이 보이면, 하느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광대한 빛이 생겨나고 광명이 나타나는 것은 하느님이 나타나는 전조이기 때문입니다. (D18)”라고 했다.

브라흐마(하느님: 梵天)가 출현 할 때 전조현상은 빛이다. 원인 없이 결과 없다. 조건 없이 결과 없다. 어떤 현상에는 전조가 있다. 깨달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태양이 떠 오를 때 그 선구이자 전조가 되는 것은 바로 새벽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 생겨날 때 그 선구이자 전조가 되는 것은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 (S45.54)

방일하지 않는 것이 깨달음의 전조라고 했다. 늘 깨어 있는 것이다. 항상 사띠를 유지하는 것이다. 늘 부처님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팔정도의 실천으로 실현된다. 팔정도 실천의 전조는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 압빠마다가 깨달음의 전제 조건이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최후의 말씀에서 "압빠마데나 삼빠데타"라고 했다. "불방일정진!"을 말한다.

부처님 팔만사천 법문은 팔정도로 귀결된다. 팔정도의 핵심은 사띠이다. 사띠는 팔정도 실천의 전제조건이 된다. 그래서 팔만사천 법문은 한마디로 사띠가 된다. 이는 마하야나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 뜻을 가진 마음(心)과는 다른 것이다.

날이 완전히 밝았다. 30분 산행 했다. 더 이상 갈 수 없다. 이번에도 바리케이트가 있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마침내 해가 떠 올랐다. 아침 햇살에 초록의 잎파리가 빛을 발한다. 공기는 맑고 선선하다. 해가 중천에 뜨면 염천에 움직이기 힘들다. 지금이 딱 좋을 때이다.

산골짝 오두막에서 잠을 설쳤다. 자리를 박차고 밖에 나오니 상쾌하다. 아무도 없는 임도를 따라 걸으니 부지런한 자가 된 것 같다.

"방일하지 않음이 불사의 길이고
방일하는 것은 죽음의 길이니
방일하지 않은 사람은 죽지 않으며
방일한 사람은 죽은 자와 같다. (Dhp21)

2021-07-1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