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허허실실한 삶을 위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21. 5. 21. 07:17
허허실실한 삶을 위하여

틈과 여백이 있어야 한다. 틈과 여백이 없으면 꽉막힌 사람이 된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사람은 숨막힐 것이다. 나는 얼마나 여백이 있을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 있다. 꽉막힌 사람이다. 종종 길거리에서 볼 수 있다. 방송용 차량을 몰고 다니며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불편과 불쾌를 야기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조계사 앞에서 찬송가 부른 사람들이 있었다.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시위하듯이 집회를 가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에스앤에스에서 알았다. 어느 양심적인 기독교인이 이런 사실을 알리며 대리사과했다.

바이블을 한번 읽으면 배타적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바이블을 백번 읽으면 여유가 있다고 한다. 틈과 여백이 있는 것이다. 반야심경을 한번 읽으면 우쭐한다고 한다. 그러나 반야심경을 백번 읽으면 역시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고 한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하나만 아는 사람이다. 다른 것이 있음을 모른다. 다른 것이 있다면 틀렸다고 볼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많은 경을 외웠다. 라따나숫따(보석경), 멧따숫따(자애경), 망갈라숫따(축복경) 등 여러 경을 외웠다. 백번이 아니라 천번 이상 암송한 것이다. 나에게도 틈이 있는 것일까?

상대방의 종교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불교 말고 기독교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기독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바이블이 있기는 하지만 읽어 보지 않았다. 시편이 좋다고 하여 부분적으로 읽어 본 적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부정적이다. 고교시절 미션스쿨에서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일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불교가 최고의 종교라고 본다. 불교보다 더 나은 종교가 있다면 당장 옮겨 갈 것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강화되는 것 같다. 심오한 뜻을 이해 했을때 삐띠(희열)가 일어난다.

나의 삶은 불교가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의무적 글쓰기 하는데 있어서 경전 문구 인용하지 않은 때가 없다. 그래서인지 방대한 경전을 거의 섭렵하다시피 하게 되었다. 요즘은 예전에 썼던 것을 활용한다. 일종의 자기표절이다. 논문 쓰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표절에 표절을 거듭한다.

백번 읽는 것보다 한번 쓰는 것만 못하다. 백번 쓰는 것보다 한번 외는 것만 못하다. 백번 외는 것보다 한번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 지금 여기에서 사띠(sati)하면 팔만사천법문이 여기 있게 된다.

사띠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천지차이가 난다. 늘 사띠가 유지되고 있으면 불선법이 끼여들 틈이 없다. 불선법이 발생되는 순간 즉각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으면 성냄과 같은 불선법을 쳐낼수
있다.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으면 연민과 같은 선법은 증장된다. 이것이 수행이다.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틈이 있고 여백이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연기송의 전송이다. 이것은 저것이 있기에 존재한다. 저것이 없다면 이것도 없을 것이다.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남들이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남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교시절 트라우마가 있다. 종교로 인하여 고통받은 기억이 있어서 적대적이었다. 무조건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니 변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길거리전도사를 보면 그시절 기억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러나 사띠 앞에서는 무력하다. 사띠의 힘으로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앞에서 찬송가 부른 사람들도 사띠하면 무력화 된다. 예전에는 분노했지만 연민의 감정으로 바뀐다. 잘못된 견해를 가지면 일겁이 지나도 구제 받지 못한다고 했다.

여백이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틈이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만만하게 보아도 좋다. 어수룩하게 보여야 대하기 편할 것이다. 겉으로 허술해 보여도 내면은 단단해야 한다. 늘 사띠를 유지하고 있으면, 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 허허실실한 삶이다.

2021-05-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