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교는 자애를 기반으로 하는 우정의 종교

담마다사 이병욱 2021. 6. 1. 06:57

불교는 자애를 기반으로 하는 우정의 종교


김우헌선생이 찾아왔다. 한달전에도 왔었다. 이번에는 김선생이 점심 사기로 약속했다.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차담으로 이어진다.

어디로 모셔야 할까? 일단 사무실 밖으로 나가 보았다. 안양아트센터 맞은편 샤브샤브집이 떠올랐다. 코로나 시기에 맞게 일인샤브샤브집이다. 이 집은 식당순례할 때 후기를 올린 바 있다. 접대할 때는 아는 집으로 가야 실패할 확률이 적다.

김우헌선생하고 식사하면 유쾌하다. 말이 척척 맞는 것 같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통적 화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주로 수행관련 이야기를 한다.

 


식사가 끝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이제 차담시간이다. 보이차로 했다. 언젠가 친구가 주고 간 것이다. 보이차가 진짜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맛은 있었다. 보이차 특유의 맛을 말한다. 그러나 무어니해도 대화의 맛이 최고이다. 보이차가 아무리 맛이 있기로 담마의 맛만 못하다. 그래서
가르침의 맛은 일체의 맛을 이긴다.” (Dhp.354)고 했다.


김우헌선생과 오후 5시까지 이야기 나누었다. 한달에 말할 것을 오늘 하루에 다 한것 같다.

김우헌선생은 나보다 세 살 더 많다. 그러나 친구처럼 지낸다. 나이가 더 많다고 하여 형이 되고, 나이가 더 적다고 하여 아우가 된다면 친구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불교에서는 나이와 관계없이, 성과 관계없이, 지위와 관계없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초기경전을 보면 부를 때 아위소(
āvuso)”라고 한다. 이 말은 벗이여또는 도반이여라는 말이다. 불교공동체 내에서는 모두 평등하기 때문이다.

도반은 도의 길을 함께 가는 친구를 말한다. 홀로 가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가면 힘이 날 것이다. 외국 출장 갈 때 홀로 가면 두렵지만 동료와 함께 가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부처님은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한다.”(S3.18)라고 했다.

도반은 반드시 친구사이만을 말하지 않는다. 스승도 도반이 될 수 있다. 이는 부처님이 세존을 좋은 벗으로 삼아”(S3.18)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진리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함께 하는 사람은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는 우정의 종교가 된다.

부처님은 우정을 강조했다. 이는 예불문이자 수호경인 멧따경(자애경, Sn.1.8)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이 자애의 마음을 내라고 했을 때 이는 우정을 뜻한다. 빠알리어 멧따(metta)는 우정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을 뜻하는 삐야(piya)와는 다른 것이다.

불교에서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우정을 뜻하는 자애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사랑을 뜻하는 빠알리어 삐야는 남녀간의 사랑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우정을 뜻하는 멧따는 친구간의 우애를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멧따가 우정의 뜻으로 사용되는 것은 자애수행에서도 볼 수 있다. 모든 존재에 대해 자애의 마음을 내야 하지만 두 가지 케이스는 제외된다. 하나는 배우자나 연인의 경우가 해당된다. 왜 그런가? 배우자나 연인에게 자애를 방사했을 때 애정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죽은 자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내서는 안된다. 감응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구도 친구나름이다. 친구도 있고 동료도 있고 도반도 있다. 도의 길로 간다면 도반이라 해야 할 것이다.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친구를 만들어 우정을 쌓아야 한다. 자애의 마음을 내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우정은 나이도 초월하고 성도 초월하고 지위도 초월한다. 같이 밥 먹고 차를 마시면 누구나 친구가 된다. 잡담보다 법담을 하면 도반이 된다.

부처님 가르침은 다양하다. 근본가르침도 있고 명상수행의 가르침도 있고 평등의 가르침도 있고 자애의 가르침도 있다. 이 중에 자애의 가르침은 우정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자애의 마음을 내야 한다. 그것도 차별없이 평등한 마음을 우주 끝까지 내야 한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친구로 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사랑보다 자애이다. 미래 오실 부처님은 멧떼이야 붓다(Metteyya Buddha:
彌勒佛)이다. 멧떼이야는 멧따를 어원으로 한다. 멧따가 자애를 뜻하기 때문에 미래불은 자애불(慈愛佛)이 된다. 사랑의 부처님이라기 보다는 자애의 부처님이다. 불교는 자애를 기반으로 하는 우정의 종교라고도 볼 수 있다.


2021-05-3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