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전설 김상윤 선생을 만나다
국립5.18묘지 참배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담양에 있는 김상윤 선생 집이다. 마침 점심시간이다. 어디서 먹어야 할까? 광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시내로 갔다.
식사를 마치고 담양으로 향했다. 불과 30여분 밖에 되지 않는다. 빗줄기는 거세다. 마치 탱크를 모는 것 같다. 우중에도 거침없이 나가는 것을 보니 탱크가 연상되었다.
네비가 가자는 대로 갔다. 들길 따라 가다 보니 잘 정돈된 마을에 도착했다. 집도 반듯하고 주변 풍광도 좋아서 살만한 곳이다. 주차장에서 조강철 선생과 이계표 선생을 만났다. 오늘 김상윤 선생 댁에서 함께 하기 위해 온 것이다.
김상윤 선생은 페이스북에서 알았다. 페이스북하다 보니 자동연결된 것이다. 소설 ‘광주 아리랑’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름이 같아서 “혹시”하며 물어보았다. 전설 속의 인물이 맞았다. 김상윤 선생을 살아 있는 전설로 보고 있다.
선생은 항쟁에 직접 참여는 하지는 않았다. 5.18이 나기 전에 사전구속되어 상무대영창에서 고난의 시기를 보냈다. 더구나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도 했다. 선생은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징역을 살기도 했다. 또한 윤상원 열사를 의식화시킨 정신적 멘토이기도 하다.
김상윤 선생은 48년생으로 73세의 나이다. 나이로 보아 노인인데 전혀 그런 느낌이 나지 않는다. 청년 같은 느낌이다. 책에서 본 20-30대의 활동 때문일까? 젊은 시절의 이미지가 있어서 청년으로 보이는 것 같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노인 티가 나지 않는다. 꽉 막힌 보수의 이미지가 아니라 겸허하게 경청할 줄 아는 겸청의 이미지가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같다.
소설에서 본 살아 있는 전설과 관계를 맺고 싶었다. 존경의 의미로 선물을 보냈다. 답례로서 책을 하나 보내 주었다. ‘녹두서점의 오월’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저자는 세 명이다. 김상윤 선생과 처 정현애 선생, 그리고 동생 김상집 선생이 공동저자로 되어 있다. 가족이 한 서점을 중심으로 하여 5.18을 겪은 것을 기록한 책이다. 현재 김상윤 선생 가족 중에는 5.18 유공자가 6명이라고 한다.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살아 있는 전설을 보고자 한 것이다. 허락을 해 줄지 궁금했다. 선생이 만나는 사람들은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천한 블로거를 만나줄지 알 수 없었다. 선생은 마침 7월 3일 토요일 오후에는 약속이 없다고 했다. 함께 와도 좋다고 했다. 누구랑 함께 가야 할까?
광주는 잘 모른다. 함평에서 국민학교 1학년 때 전학와서 3학년 때 서울로 떠났기 때문에 오래 전 기억만 남아 있다. 광주에 사촌도 살고 조카들도 살지만 갈 일이 별로 없다. 이번에 함평에서 합동제사가 있는 날이라 평소 존경하던 분, 만나고 싶었던 분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서 1박2일 일정을 잡았다.
이계표 선생과 조강철 선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두 분은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생각지도 않은 것이다. 다들 바쁘게 살기 때 반반의 확률을 기대했다. 그럼에도 두 분이 동참해 준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얼굴 보고 허락해 준 것은 아닐까? 평소에 잘 하려고 노력했는데 잘 보아 주어서 그런 것일까? 사실 두 분은 광주에 가면 꼭 뵙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이계표 선생은 페이스북에서 알았다. 2017년 페이스북을 처음 시작했었는데 가장 많은 ‘좋아요’ 추천과 가장 많은 댓글을 달아 주었다. 이에 감사의 마음으로 선물을 보냈다. 그랬더니 ‘윤상원 펑전’을 보내 주었다.
조강철 선생은 안면이 있다. 김동수 열사 추모제 때 두 번 만난 적이 있어서 이번에 만나면 세 번째가 된다. 또 조강철 선생은 정평불 회원이기도 하다. 정의평화불교연대(정펑불) 사무총장 소임을 볼 때 모셔왔다.
세 명이서 모여서 함께 김상윤 선생 사랑채로 들어 갔다. 페이스북 사진에서 늘 보던 곳이다. 삼면 벽에 책으로 가득한 곳을 말한다. 탁자와 의자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에는 방바닥에 앉는 것 보다 의자에 앉는 문화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사랑채에는 음악이 흘렀다. 평소 음악을 사랑하는 것을 글을 통해 알고 있었다. 수많은 엘피음반도 소유하고 있고 오래된 음반을 모으는 것도 취미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흘러나오는 노래는 이미우이 음악이었다. 선물로 보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생은 과일과 과자 등 먹을 것도 준비해 놓았다. 당연히 차도 준비되었다. 선생은 손님 맞을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초면에 해야 할 이야기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생각해 둔 것은 없다. 전설을 만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차를 마시다 보면 어떤 이야기이든지 하게 되어 있다. 커피를 마시면 30분 이내에 일어서야 하지만 차담을 하게 되면 3시간 하게 된다. 차는 무한리필이 되기 때문이다. 차에 맡겨 두기로 했다.
김상윤 선생은 주로 듣는 타입같다. 잘 경청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천천히 말씀하신다. 이런 것은 리더에게서 볼 수 있다.
리더 덕목 중의 하나는 잘 경청하는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경청한다고 하여 ‘겸청(兼聽)’이라고 한다. 이런 리더의 덕목은 경전에도 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핫타까 알라바까의 경’(A8.24)이 있다. 일종의 리더십에 대한 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 사섭법과 함께 리더의 덕목 8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알라바까에게는 500명의 재가자가 따랐다. 일종의 재가의 리더이다. 오늘날 선거에 나간다면 당선될 것이다. 무엇이 그를 따르게 만들었을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네 가지 원리를 말했다. 보시하는 것(布施), 사랑스럽게 말하는 것(愛語), 유익한 행위를 하는 것(利行), 동등한 배려(同事)를 말한다. 이것은 다름아닌 사섭법이다. 사섭법은 대승불교에서 육바라밀과 함께 주요한 실천덕목 중의 하나이다.
네 번째 항목 동등한 배려는 무엇을 말할까? 한마디로 ‘눈높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아이와 대화할 때 자세를 낮추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눈높이로 대화하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동등한 배려이다. 잘난 자나 못난 자나, 귀한 자나 천한 자나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배려한다면 리더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리더는 덕목이 있어야 한다. 경에서는 1)믿음이 있는 것, 2)계행을 지키는 것, 3)부끄러움을 아는 것, 4)창피함을 아는 것, 5)많이 배운 것, 6)관대한 것, 7)지혜를 갖춘 것, 8)겸손한 것을 들었다. 이와 같은 8가지 덕목 중에서 최상은 겸손일 것이다. 겸허하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했을 때 덕목중의 덕목이 된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3시 부터 시작해서 6시가 넘어서 끝났다. 사랑채에서는 계속 음악이 흘러나왔다. 차가 비면 차를 따라 주고 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조강철 선생은 5.18 당시 황금동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공수에게 걸려 죽도록 맞았는데 황금동 아가씨들이 비명을 질러 주어서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5.18 이야기로 흘러 갔다.
김상윤 선생으로부터 5.18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도 들었다. 책에는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한다. 궁금한 것도 물어보았다. 다시 5.18과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것이다. 선생은 솔직하게 자신 없다고 말했다. 이는 누구나 갖고 있는 심정일 것이다. 왜 그런가? 이 세상에서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980년 오월 광주에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시민들이 죽음으로써 맞선 것이다. 이와 같은 집단적 숭고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재작년 2019년 김동수 열사 추모제가 조선대에서 열렸다. 그때 지선스님은 추모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지식인은 실천이 약하다는 것이다.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하층민이라고 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세계 혁명의 역사를 보면 죽은 자들은 하층민이었음을 말한다.
지선스님은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을 비판했다. 이론만 있고 말로만 하는 지식인을 말한다. 그래서 역사를 이끌어 가는 주체는 지식인이 아니라 하층민중이라고 했다. 광주에서 사건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오늘날 5.18에 대하여 공식적으로는 민주화운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민중항쟁이라는 말에 더 친숙하다. 실제로 민중이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녹두서점의 오월’이나 ‘윤상원 평전’을 보면 지식인에 대해 비판적이다.
항쟁기간 증에 재야운동권은 숨어 버렸고 학생지도부는 잠적해 버렸다. 불의에 맞서 목숨을 건 사람들은 이 땅에서 천대받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김상윤 선생은 “룸펜 프로레타리아가 광주를 지켰습니다.”라고 말했다.
혁명은 노동자와 농민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직화된 계급을 말한다. 이를 기본계급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80년 5월 광주에서는 기본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구두닦이, 식당종업원, 재수생, 고교생, 심지어 넝마주이와 황금동 아가씨도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는 조직화와 무관한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정의를 말한다. 정의에 대한 책도 많다. 정의란 무엇일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것이 정의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했을 때 분노하지 않을 자 없을 것이다. 더구나 말리는 노인마저 폭행했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옆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갈 때 가만 있어야 할까? 자위권 차원에서라도 저항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의는 책에 있지 않다. 생생한 삶의 현장에 정의가 있다. 모두 공분했을 때 그것이 정의가 된다. 80년 5월 시민들이 무장을 한 것도 자신과 시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행위였다.
지식인들은 왜 나서지 못했을까?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처자식이 있다면 선뜻 나서지 못할 것이다. 자신 하나만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나서지 못한다.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처자식이 있고 기반이 있는 지식인은 나서기 힘들다. 처자식 없는 젊은 사람들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래서일까 전세계적으로 혁명은 젊은 사람들이 했다. 광주혁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스무살 안팍의 젊은이들 희생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상윤 선생은 70년대와 80년대 가혹한 시기를 살았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이후의 삶은 평범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있는 대로 세상을 배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위를 맡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있는 대로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화두처럼 다가온다. 아마 하심을 말하는 것 같다. 광장에서 혁명을 하여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만 자신을 혁명하여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후자가 아닐까?
2021-07-0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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