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함평에서 사촌모임 가졌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7. 7. 10:55

함평에서 사촌모임 가졌는데

 

 

김상윤 선생 사랑채에서 떠난 것은 오후 6시가 넘어서였다. 조강철 선생과 이계표 선생이 네 명이서 식사하자고 했다. 그러나 다음 일정이 있다. 함평 사촌 큰누님 집에 가야 한다. 다음날 제사를 위해서 일박해야 하는 곳이다

 

식사하라고 가라는 것을 한사코 뿌리쳤다. 담양 김상윤 선생 집에서 함평까지 38키로 50분가량 걸렸다. 비는 세차게 내렸다. 마치 나그네가 귀향하는 것처럼 터덜터덜 걸어 가는 것 같다. 다만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 달랐다.

 

제사는 이제 사촌모임이 되었다. 조부모와 백부모 제사를 한꺼번에 지내는 날 전국 각지에 사는 사촌들이 모인다10년 넘은 모임이 되었다. 그런데 갈수록 멤버가 줄어 든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에 작고한 분이 두 명이다. 모두 암으로 사망했다. 나이가 들어 죽었다고도 볼 수 있다.

 

사촌 큰누님 집에서 본가가 있는 곳까지는 멀지 않다. 차로 10분이내이다. 다음날 아침 본가로 향했다. 유년시절 추억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다. 해방 후에 지었다고 한다.

 

 

본가는 한국전쟁 때 용케 살아 남았다. 어른들 말에 따르면 밤에는 인공이었고, 낮에는 대한민국이었다고 한다. 어느 때 빨치산 소탕을 위해서 마을을 붙태웠는데 조부가 초가지붕 위에 물을 부어 놓아서 피해를 모면했다고 한다.

 

본가는 빈집이다. 일년에 한번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집이다. 제사 날자 잡는 것은 탄력적이다. 대개 6월달 일요일에 날을 잡는다. 올해의 경우 코로나로 인하여 늦추어졌다. 백신주사를 맞은 다음달로 정한 것이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사촌들이 속속 도착했다. 부부팀도 있다. 조카들은 보이지 않는다. 조카들이 올 때도 있지만 오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사촌모임이 되었다.

 

사촌들을 보면 반갑다. 일년에 한번 얼굴 보는 날이다. 마치 칠월칠석날에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일년에 한번 제사날에 만나는 것이다.

 

사촌을 보면 왜 반가울까? 그것은 유년시절부터 늘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사회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과 다르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나이 먹어 가면서 애사와 경사 등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피를 나눈 형제라는 것이다.

 

사촌은 일정 부분 디엔에이(DNA)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생김새도 비슷하고 정서도 비슷한 것 같다. 이는 타인들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우리 집안 씨인지 아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사촌모임에서 막내에 해당된다. 가장 나이 많은 형님과는 스무살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한사람 한사람 사라져 간다. 한명 한명 사라질 때마다 인생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리적 공간은 그대로인데 시간에 따라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또 십년, 이십년 지나다 보면 대부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불과 3년전까지만 해도 제사상을 직접 준비했으나 이제는 주문해서 차린다. 사촌 큰누님이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차릴 기운이 되지 않는다. 3년전에 매형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제사상을 주문하다 보니 가장 큰 변화는 성주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작은 상을 하나 더 차렸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이를 성주상이라고 한다. 일종의 땅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조상들은 언제부터 이 땅에서 산 것일까? 어느 때 이곳까지 내려 와서 살았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아마 오래 전에도 이 땅에서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땅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땅은 그대로 있지만 사람들은 수없이 오고 갔다. 땅은 이 모든 것을 지켜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래서 이 땅의 주인은 따로 있다.

 

이 땅은 소유한 자의 땅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땅이 있었을 때 땅의 주인도 있었을 것이다. 이를 땅의 신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성주상을 차리는 이유라고 본다.

 

땅의 신은 있을까? 사람들은 땅에도 신이 있는 것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대지의 신을 말한다. 땅을 의지해서 땅에서 농사지어 먹고 사는 사람들은 땅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주상을 차리는 것은 땅에 감사하는 최소한의 예의의 표시라고 보여 진다.

 

고향에 가면 늘 찾는 곳이 있다. 함평 예덕리 고분군을 말한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예전에는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언젠가 TV에서 예덕리 고분군에 대한 특집방송 하던 것을 보고서 존재를 알았다.

 

 

예덕리 고분군은 마한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마한의 소국이 있었던 곳으로 4세기부터 5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여러 기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가 50미터에 달한다. 전방후원형으로 영산강 유역의 마한문화권에서 발견된다. 놀랍게도 일본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예덕리 고분군은 어떤 성격일까? 최근 이계표 선생이 공유한 포스팅을 보니 국립광주박물관에서 특별전시회가 열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간은 2021719일부터 20211024일까지이다. 타이틀은 특별전함평 예덕리 신덕고분비밀의 공간, 숨겨진 열쇠이다. 유튜브에도 전시를 알리는 홍보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qzXxWrBHpI8 ) 45초 올려져 있다.

 

 

예덕리 신덕고분에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일본 고분과 연계하여 말하는 것 같다. 박물관 특별전 소개란을 보면 무덤의 모양이 일본 고분시대[古墳時代]의 주요 무덤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비슷하여 주목을 받았지만, 이러한 무덤이 조사된 바가 없어 그 정체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습니다.”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비밀의 공간, 숨겨진 열쇠)라는 설명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고향마을에 위대한 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 땅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산하대지는 그대로이지만 땅에 의지해서 수천년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땅은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고향마을에 가면 반드시 고분군을 찾는다.

 

제사상은 주문한 것이다.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그러나 법도의 파괴인 것만은 틀림없다. 더구나 성주상도 사라졌다. 앞으로 제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형님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사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제사상을 주문하고 조카들이 참여하지 않는 제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그러나 걱정만 할 뿐 대책이 없다. 내년에도 이런 식이 될 것 같다.

 

장손이 개신교인이라서 제사가 표류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시대가 변했다. 전국에 흩어져서 살고 있어서 모이기가 힘든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다음으로는 가치관이 변한 것이다. 옛날과 달리 씨족사회가 아니다. 제사를 모두 다 모실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년에 한번 모이게 되었다.

 

일년에 한번 본가에 가면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호랑가시나무이다. 십여년 전에는 아주 작은 나무이었으나 지금은 엄청나게 크게 자랐다. 작년과 비교해서 두 배 큰 것 같다. 괄목상대라는 말이 실감나는 것 같다. 어느 시점에 이르니 마치 가속도가 붙는 것 같다.

 

 

처음 호랑가시 나무를 보았을 때 누군가 캐 갈까 걱정했다. 빈집에 천연기념물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캐 갈 염려를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십년 이상 되다보니 이제 목대가 장딴지만큼이나 두꺼워졌다.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잘라 왔다. 동백나무 가지도 잘라 왔다. 사무실에 가져와서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마치 행운목 뿌리내리게 하는 것처럼 패트병 물속에 잠겨 놓는 것이다. 과연 호랑가시나무와 동백나무 줄기는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매년 참가하는 제사모임이다. 사촌모임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생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어느 모임에서든지 헌신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사촌모임에서도 준비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했다. 설거지를 도와주고 바닥을 닦는 등 나름대로 봉사를 했다. 여자들은 일만 하고 남자들은 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것은 예전에 없었던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다.

 

사촌중에서 방송국 피디(PD)출신이 있다. 나이가 여섯 살 차이가 난다. 페이스북친구이기도 하다. 모임이 끝나고 형님부부를 광주송정역까지 카풀해 드렸다. 형은 페이스북 글을 잘 보고 있다고 말했다.

 

몇 달전 형이 친구요청을 해서 깜짝 놀랐다. 한번도 좋아요추천이나 댓글이 없어서 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종종 본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형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글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런 형은 어렸을 적부터 경외의 대상이었다. 형은 많이 배우고 아는 것도 많아서 어른들과 대화에 참여했다. 또 대화를 하면 대화를 주도한다. 형의 말을 들으니 인정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올해 제사모임, 사촌모임이 끝났다.

 

 

2021-07-07

담마다사 이병욱